망월산악회 회원이라면 대부분 상식적으로 알고 계실 내용인데다 산행경험이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조언을 한다는 게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이치원 후배의 심정이 바로 작년에 제가 겪었던 막막함 일 것 같아 그냥 있기 어려워 낯뜨거움을 무릎쓰고 몇자 적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 중에 틀렸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여러 선후배님들이 지적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산행에 대한 준비는 추위와 눈에 이길 수 있도록 대비를 하면 될 겁니다.

첫째, 추위에 대한 대비는 개인 특성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특성이란 땀을 많이 흘리느냐 아니냐에 따른 차이를 말합니다.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 사람은 평상시에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에 면내의와 면남방 울스웨터 순으로 입고 겉에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윈드쟈켓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이런 사람은 의류에 크게 신경 쓰지않고 집에 있는 따뜻한 옷을 챙겨입고 다녀도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영화나 사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스위스 사람들의 복장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혹한이나 휴식시에 껴입을 수 있는 오버복은 무게나 부피가 적은 것으로 따로 준비하는 게 좋을 거구요. 집에서 입던 오리털파카 같은 것도 좋습니다.

제 같은 경우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인데 작년 겨울 이렇게 입고 소백산 갔다가 쪄죽을 뻔했습니다. 하도 갑갑해서 울스웨터를 벗어버리니 안쪽에 입은 면남방에서 가마솥 증기같은 김이 피어오르더군요. 남방을 벗고 짜보니 물이 소오줌 싸듯이 흘러 나왔댔습니다.
면은 땀을 잘 흡수하기는 하나 수분을 섬유 속에 붙잡고만 있어서 땀이 많은 사람은 금새 젖어버립니다. 안쪽에 입은 옷이 땀에 젖어버리면 피부의 호흡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땀이 식을 때 체온을 심하게 떨어뜨리게 되므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겉에 입은 울스웨터는 수분증발을 방해하므로 땀이 많은 사람에게는 절대금물입니다. 단, 장시간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을 때는 속의 젖은 옷을 갈아입고 울 스웨터를 입으면 보온에는 왔다입니다.
따라서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돈이 좀 들더라도 소위 말하는 기능성 의류를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문제는 기능성 의류라는 게 하도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서 무엇을 사야할지 헷갈립니다.

우선 속에 입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속옷은 일단 땀을 잘 흡수해야합니다. 그러나 면처럼 흡수만 해서 수분을 붙잡고만 있으면 땀 많은 사람에게는 감당이 안됩니다. 외부로 발산시키거나 빨리 말라야합니다. 잘알고 있겠지만 이런 기능을 가진 섬유 중 가장 유명한 게 쿨맥스(Cool Max)입니다. 요즘은 수퍼 드라이(Super Dry)니 뭐니 하면서 쿨맥스보다 성능이 좋다는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나 제 경험으로는 쿨맥스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새로 나왔다는 것은 당연히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쿨맥스 런닝 팬티도 있고 티셔츠나 남방도 많습니다.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놈은 보온성이 별로라는 점입니다.

한 꺼풀 밖으로 나갑니다.
겨울에 쿨맥스 의류 겉에 가장 많이 입는 것으로 폴라 텍(Polar Tec ?)이라고도 하는 파일(Pile)류의 섬유가 있는 데. 이름이 폴라플리스(Polar Fleece), 마이크로플리스(Micro Fleece) 같이 플리스 어쩌구 저쩌구 하는 놈들이 그 것입니다. 이 놈은 보온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땀을 외부로 배출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섬유의 직조가 부드러워서 그런지 피부에 직접 닿으면 섬유보푸라기가 땀과 엉켜서 쥐똥처럼 돌돌 말리는 등 좋지가 않아 속에 쿨맥스 의류 등을 받쳐입는 게 보통입니다. 제가 이 놈으로 만든 지퍼티를 맨살에 입고 산행을 해 봤는데, 집에 와서 벗어보니 겨드랑이랑 뱃가죽 여기저기에 때덩어리 같은 게 엉겨 붙어 있더라고요. 또 한가지 이놈의 단점은 바람을 막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놈으로 만든 옷은 오버복안에 입는 내피용 자켓이 대부분이지만 지퍼티로 만들어 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산행 중에는 이정도 복장에 얇은 윈드쟈켓이나 조끼를 입었다 벗었다하며 체온을 조절해 주면 되지만 매우 추울 때나 휴식 중에는 감당이 어려워 오버복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껍데기 오버복입니다.
오버복 용 섬유의 대표주자는 역시 고어텍스(Gore Tex)입니다. 몸 쪽의 수증기는 밖으로 배출해주고 외부의 물과 바람을 완벽하게 막아 준다고 하는 섬유입니다. 가격이 무지 비쌉니다. 2 레이어(Layer)는 보통 20만원 대, 3레이어는 30∼50만원 대입니다. 2레이어와 3레이어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생략합니다만 비싼 3레이어가 성능면에서 우수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 경우 2레이어 자켓을 쓰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불만 없습니다. 고어텍스 말고도 같은 기능을 가진 섬유로 우리나라에서 개발됐다는 힐텍스 같은 것이 있고, 등산복 메이커마다 제각기 이름을 달리하여 비슷한 기능의 의류가 나오고 있으므로 사려고 할 때 눈여겨봐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땀을 별로 흘리지 않는 사람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가격이 훨씬 싼 방수, 방풍의류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기능성 의류를 입을 때 가장 주의 해야할 점은 세탁입니다. 이놈은 다른 빨래와 함께 세제넣고 세탁기로 돌려버리면 방수기능이 싹없어져 버립니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로는 세탁에 신경쓰며 잘 입는다고 해도 몇 년 지나면 기능이 눈에 띠게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겨울용 남방(울은 안됨)하나 정도 배낭에 넣어 두었다가 추우면 오버복 안에 껴입으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도 추위가 감당이 안된다고 생각되면 우모복이라고 하는 놈을 준비해야합니다. 우모복이 무엇이냐고요? 오리털 파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 경우 산행경력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 겨울산의 당일이나 무박산행에서는 필요가 없더라고요. 부피가 커서 들고 다니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비박을 해야하는 경우 등은 반드시 있어야겠지요.

다음은 바지입니다.
겨울 산 특히 눈 산에 청바지나 면바지는 좋지않습니다. 물을 잘 빨아들이고 잘 마르지 않으니까요. 이건 땀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공통사항입니다. 보통의 등산바지면 되고 추우면 등산용 내복(하이보론가 뭔가하는 것으로 세라믹을 함유하여 적외선을 방출한다는 놈인데 보온성이 상당합니다)하나 껴입으면 더 이상 필요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되면 오버 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눈 대비에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바지 살 때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일반 등산바지에 방수가 된다고 물을 뿌려서 시험해서 보여주는 것에 절대 속지 마세요. 대부분의 등산바지는 제품출하시 발수(물을 튕겨 내는 작용) 코팅을 해놓아 처음에는 약간의 물을 뿌려도 묻지 않으나 많이 뿌리면 젖어버리며 그나마 세탁 한번하고 나면 끝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일반등산바지는 방수 기능이 대부분 없습니다. 쉘러바지는 발수기능이 오래가므로 약한 비에는 걱정이 없다고 하지만 제가 입어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망월산악회에도 쉘러바지 입으신 분들이 많던데 성능을 좀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장갑은 필수입니다. 스키용 장갑이 왔다입니다. 눈에도 걱정이 없으니까요. 정도에 따라 귀마개 코덮개까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요런 건 은행강도용 복면모자 하나로 해결할 수도 있고요.

둘째, 눈에 대한 대비입니다.
우선 방수가 되는 등산화가 필수입니다. 방수가 안되는 등산화라도 산행 전에 방수 스프레이를 뿌려두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심하게 젖지만 않으면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방수되는 신발이라도 방수효과를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경우나 오래 신어서 방수기능이 저하된 경우에는 방수 스프레이를 쓰는 게 좋구요.
다음은 아이젠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4발 짜리보다 6발 짜리가 덜 미끄러져서 더 좋은 것 같은 데 그건 개인 취향인 것 같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탈부착이 수월하고 걷는 도중 벗겨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착용이 되는 걸로 골라야 한다는 겁니다. 눈바닥이라 앉을 데도 마땅찮은데 자꾸 벗겨지면 짜증 엄청납니다.

다음은 스패츠인데요. 발목에서 등산화 속으로 들어가는 눈을 막는 용도입니다. 이것 또한 탈부착 수월한 게 최곱니다. 고어텍스로 된 비싼 게 구태여 필요할까요? 스패츠치고 방수 안되는 놈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류입니다.
일단 방수가 되는 의류가 있어야 합니다. 상의는 위에서 말한 오버복의 대부분은 방수가 되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바지가 문젭니다. 이런 바지를 오버트라우저(Over Trousers)라 하여 일반바지 겉에 겹쳐입는 것으로 나오는데, 고어텍스 등 방수투습 기능을 가진 천으로 만든 것은 좋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고 방수만 되는 바지는 속에 습기가 차서 심할 경우 안입느니만 못한 경우도 있답니다. 그렇다고 자주 입기나 한다면 큰마음 먹고 사겠지만 겨울산을 가도 꼭 필요한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 싼 것은 대부분 바지 옆 재봉선에 자크가 없어서 입고 벗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작년 겨울 눈 산을 4번을 갔었는데 심하게 눈보라쳐서 그 놈이 아쉬웠던 때는 한번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도 사방이 트인 능선길을 걸을 때가 문제지 숲속을 걸을 때는 하체에 그다지 많은 눈이 때리지는 않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치마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비닐을 준비해 와야겠다고. 비닐로 치마를 만들어 허리에 두르면 입고 벗기 편하고 배낭 속에 넣어도 오버트라우저보다 훨씬 가볍고 부피도 작을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그렇게 해 볼 생각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다니는 산행을 기준으로 하였고, 극한 조건을 가정한 최상의 안전을 위해서나, 전문산행을 위해서는 부족할 것이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겁니다.

이젠 사러 갑시다.
빠진 게 있는 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 정도 상식만 가지고 등산용품점에 가도 장사꾼의 농간에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코오롱, 에코로바, 노스페이스등의 메이커 매장에는 안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런 곳에 있는 똑 같은 물건이 남대문 가게에 가면 거의 다 있습니다. 가격도 일단은 20% 싸게 부릅니다. 더 싸게 사는 건 개인의 능력일 거구요.
추천해드리고 싶은 곳은 인터넷의 등산용품 전문 사이트입니다. 거기를 방문해보면 남대문이나 동대문도 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송창환 선배님이 알려드린 www.Okoutdoor.com이 아주 싸면서 좋은 물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곳은 매장도 있어 직접 방문하면 입어보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 외 www.mountain119.com의 특가상품 코너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며 ,
www.interpeak.co.kr에서는 가끔 기획상품으로 자체에서 만들어 매우 싸게 팔기도 합니다.
옷을 살 때 충고해주고 싶은 것은 메이커보다 원단의 종류를 먼저 생각하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등산의류 제조업체에서 원단을 직접 생산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메이커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은 디자인 뿐이기 때문입니다. 메이커 없는 제품이라 할지라도 같은 원단의 제품을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면 그게 실속있지 않을까요? 메이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