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을 출발한 봉고차는 생각보단 긴 시간을 달려 6시 30분에야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오면서 아침을 꼭 먹어야하는 나는 오색온천쪽에 가면 무슨 요깃거리가 있을 거라 주장했지만
한계령을 오르며 동해로부터 붉게 일어나는 일출의 조짐에 얼른 한계령 능선을 올라 일출을  
보고 싶은 일행의 바람과 나의 기대로 그냥 올라 왔는데 세상은 언제나 부지런한 사람이 있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동을 파는 간이 차량 식당이 있어 나는 넘 반가웠다 정작 무얼 먹어야 한다던 나는 어제 먹은 술과 산행 걱정으로 우동을 남겼는데 일행들은 싹싹 그릇을 비웠다. 이런
처음부터 뭔가 밀리는 느낌이 좀 찜찜하다. 어제 술을 좀 자제할 걸......

06:50 - 한계령 휴게소 출발
한계령 휴게소 계단을 올라 매표소에서 확인을 받은 후(10월1일~10월31일까진 한계령코스만 하루에 450명으로 입산객을 제한하므로 사전예약을 해야한다) 조금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손이 시럽다 일행들은 장갑을 다들 끼는데 아, 나는 아직 초보구나 싶었다.  잠깐 이런저런 생각에 산을 올려다보았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중턱부터 하얀 것이 아닌가 눈이 내렸나 이가을에 눈이라니 덜컥 겁도 났지만 너무 좋아 얼른 보고 싶어서 열심히 올랐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상고대였다.  눈꽃에는 3종류가 있는데 눈이 나뭇가지에 내려서 생긴 설화, 이 눈이 햇볕에 녹으며 다시 얼어서 생긴 빙화, 안개가 바람타고 가지에 붙으면서 생겨나는 상고대(무상)로 나뉜다 들었다. 나는 이 상고대를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이 망월산악회의 고대산 산행에서다 정말 거의 10cm에 가깝게 길게 매어달린 상고대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좀 비약하면 그 칼날같은 상고대에 베여 죽고 싶었다.
잠시 주변경관에 빠져있던 우리는 대청봉을 오르는 시간을 보고 하산코스를 정하자하고 열심히 길을 재촉했다 한계령코스는 처음부터 능선을 타는지라 경치가 참 좋다 귀떼기청봉과의 갈림길에서 나는 아! 아! 감탄사를 연발했다 비록 동쪽으론 구름이 있어 일출을 볼 수 없었지만 설악산을 오르며 이렇게 좋은 날씨를 만난 건 큰 행운 이었다. 남으론 중턱부터 하얀 점봉산과 남설악의 비경 서쪽으론 귀떼기청봉과 멀리 얼굴을 구름에 숨기고 있는 가리산이 있고 북으로 운해에 잠긴 내설악의 아름다움이란 오! 설악, 설악, 설악...... 이렇게 계속 부르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09:40 - 끝청도착
끝청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고 우리는 경치 보는 것을 조금은 자제하자며 발길을 재촉했지만 어찌 한발한발 떼어 놓기가 아쉬웠다

10:05 - 중청대피소 도착
10:20 - 대청봉 도착
내가 알고 있던 대청봉의 높이를 수정해야 했다 1707m 로 알았었는데 1708m 로 씌어져 있다
사진한방씩 박고 어찌 술꾼이 정상주 한잔 없으리오 배낭속에 꼭꼭 숨겨둔 매실주를 꺼내어 한잔씩 돌리니 일행들 한결같이 감사의 인사와 행복한 얼굴들이 된다
정말 이날 내가 몇 번을 했을지 모르는 “우리는 오늘 땡잡았다” 라는 말을 연발하며 멀리 동해와 속초시, 영랑호가 발아래요 외설악의 저 장대함이란 내가 이 땅에 있어 건강해서, 이 멋진 풍경을 내 힘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산신령께 무사 산행을 빌었다.
대청을 내려온 우리는 중청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물을 사며 공룡능선으로 하산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대답해주고 싶지 않은 눈치다 권장하는 코스가 아니라나 어쩌나, 야튼 그래도 갈려면 얼마나 걸리냐니 희운각 1시간 공룡능선 5시간 마등령해서 비선대 2시간 설악동 1시간  도합 9시간은 걸린다했다. 아, 어쩌지 20년전에 한번 가봤다는 일행 한사람을 따라 모험을 해야 하나 요즈음은 6시면 어두운데 시간상 금강굴 근처부턴 야간산행이 될텐데 난 헤드랜턴이 있지만 세사람은 손전등 하나밖인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한쌍이 가져온 전등은 고장나 있었다)
이재곤선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산은 절대 무리하믄 안된데이 겸손해야 한데이” 그래서 나는 반대했다 그냥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자했다 그런데 일행의 반대가 만만찮다 한계령에서 대청까지 5시간 30분으로 나와 있는데 3시간35분만에 왔으니 나머지도 그리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그래 나도 공룡능선이 가고 싶었다 설악산을 여러번 왔지만 한번도 탈 기회가 없어 공룡능선 얘기만 나오면 괜히 주눅들었던 생각이 나며 도전하고 싶어졌다 올라오면서 보니 일행모두가 걸음이 빠르다 특히 걱정했던 홍일점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 해보는거야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으니까 그래 결심했어!

11:20 - 중청대피소 출발
소청을 거쳐 희운각으로 내려오는데 내리막길이 장난이 아니다 오르는 사람들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하다 전에 이 길을 어떻게 올랐지? 두 번 다 안개속이라 그저 앞만보고 올랐던 기억밖엔 없다 오늘은 땡잡은거다

12:05 -  희운각 도착
초코렛,영양갱등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서 바로 출발 조금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은 편한 나무계단으로 유혹했고  왼쪽은 공룡능선이란 표지판에 “이 코스는 험준한 코스로서 추락사고등 산악사고가 빈번하므로 악천후시 산행을 금해주십시오” 벌써 겁부터 난다 하지만 난 망월산악회 회원이야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공룡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이다. 벌써 조금씩 지친 다리는 “야 뭐 그리 힘들게 산행을 할려고 그래”라며 나를 유혹했지만 난 할거야 하고 힘을 모아 올랐다. 처음으로 능선에 올라섰을 때 다시 한번 오! 설악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내설악과 외설악 멀리 울산바위와 화채능선이 펼쳐지고 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그것도 잠깐 가야할 길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앞에 보이는 저 여러개의 암봉들을 모두 넘어가야 한다니 숨이 막혔다 허나 어쩌랴 가야할 길이라면......      걸음을 제촉했다

13:40 - 1275봉 도착
부산에서 왔다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고향말이 얼마나 반갑든지 나도 부산 동래고 출신이라고 말하며 망월산악회 선후배님들과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모두가 보고 싶었다
나한봉을 향해가는데 이제부턴 내려가는게 즐겁지가 않다 내려가면 간만큼 또 올라야 하니 아예 내려가기가 싫어진다 인생도 그렇겠구나 싶은게 이 힘든 와중에도 산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치는구나 싶어 겸허해진다. 나한봉을 어렵게 지났다 정말 공룡의 등같이 얼마나 삼각봉들이 많은지 이름도 잘 지었다 싶었다. 단지 각 봉우리마다에서 바라보는 절경이란 어찌 말로 다하리까!

14:45 - 마등령 도착
공룡능선이 끝나는 지점이다. 공룡능선 처음에서 본 푯말이 여기도 있었다 ("이 코스는......) 왼쪽으로 가면 오세암으로 해서 백담사로 갈 수 있다. 힘들었던 생각은 저리가고 아쉬움마저 남는다. 다음엔 공룡능선만 하루종일 타면서 이 설악을 즐기리라 다짐했다

15:00 - 마등령 정상 도착
잠시 쉬면서 남은 간식과 물도 다 먹었다. 다들 말은 안했지만 모두 긴장하고 서로 폐가 될까봐 숨겨온 아픔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홍일점 한분은 정말 놀라웠다 선생님인데 자주 산에는 간다지만 어떻게 힘들다 소리 한번 안하고 저렇게 따라올 수 있을까 조금 질리기까지 했다 재곤이선배 형수님이 생각나며 이사람 형수님하고 한번 붙여줘야지 생각하며 속으로 혼자 웃었다.
나도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 느낌이 좋질 않다.
이제부턴 내리막만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도 풀리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 듯 하는 것이
한걸음 옮겨 놓기가 어렵다.
중간에 몇 팀을 만났는데  우리의 산행시간을 얘기하면 다들 좀 놀라는 눈치였다 좋은 말로 "날아다니세요" 했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신선이 되 것 같아 보였지만 힘들어하는 표정들이 역역하다.
공룡능선도 그렇게 잘 왔는데 내리막길에서 몇 번을 넘어질 뻔했고 나뭇가지에도 부딪히고 영 비몽사몽이다 금강굴 조금 못 와서는 그저 앉고 싶었다 그런데 설악은 그런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주셨다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나를 반겼고 멀리 물소리까지 어서오라 나를 불렀다. 그래도 무릎의 통증은 가중되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술꾼의 저력은 나오는 법인가 문득 비선대에 가면 막 구운 파전과 시원한 동동주가 있지 그래 바로 그거야, 얼마전 비선대에 왔을 때만해도 이런 곳에 장사를 하다니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를 잡아서 너무 싫다 했었는데 마지막 힘든 나의 다리를 옮겨 놓은 건 순전히 비선대의 파전과 동동주였다

16:40 - 비선대 도착
비선대 가게를 들어서며 나는 배낭 내려놓을 생각도 않고 계산대로 바로가 술과 파전부터 시켰다. 안주 기다릴 여유없이 동동주부터 한잔 원쌋, 오! 이 맛이야 설악 산신령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저께 온 비로 물은 제법 많았고 그 맑기란 명경지수가 이렇구나 싶은게 아예 푸르기까지 했다. 또한 늘상 있던 세수하고 발닮구고 있는 사람들이 없어 좋다 아마 하 그런 사람이 많아 아예 못내려 가게 줄을 쳐놓은 듯 보였다. 놀러온 사람들에겐 좀 섭섭한 일일 것이나 잘된 일이다.
금강굴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풍경은 세계 제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17:50 - 설악동 도착
산행을 마치며 참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갔다 정말 아무 탈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어 감사하였으며 이번 산행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자칫 내 마음에 생겨나는 자만심이 앞으로의 산행을 그르치지 않게 하자고 다짐했다. 언제나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망월산악회 여러 동문님들께 감사드리며 정말 꼭 한번 같이 이 코스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의 그렇고 그런 산행기를 읽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멀리 매표소에서 신흥사 일주문쪽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등산객들 사이로 남편을 찾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입니다.
참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동고야! 김진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