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 망월산악회 
| 제목 | 남아메리카 여행수첩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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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준흥(51) [ 2378jhyi@hanmail.net ] |
| 작성일 | 2002-07-05 |
제 6일(화) 페루 쿠즈코 - 맞추피추 성벽의 한글이름
이른 아침식사 후 맞추피추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오래된 마을이 있다며 잠시 내려서 구경하고 가잔다. 가이드도 마을이름을 모른다. 작은 마을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듯 을씨년스럽다. 마을 중심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 하차하니 원주민 장사꾼이 몰려든다. 길은 돌로 된 보도블럭이 깔려 있고 광장 옆으로 고산지에 흔치 않을 것 같은 돌로 된 수로에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있다. 멀리 다른 곳에서 끌어 온 것이라 했다. 바로 옆 깍아지른 듯한 산중턱(경사가 80도를 넘는 것 같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북한의 대남방송 스피커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공동묘지란다. 올라가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 저런 곳에 어떻게 무덤을 만들었을까. 이곳의 장묘방식은 풍장이란다. 시신을 노천에 놓아두어 부패가 끝난 뒤 뼈를 추려서 산중턱 묘지에 묻는단다.
맞추피추 행 기차를 타는 역에 도착. 역사나 프랫폼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기차역과 꼭 같다. 역시 장사꾼 떼가 모여든다. 옥수수를 팔고 있는데 알이 매우 굵고 알이 박힌 줄이 듬성듬성하다. 맛은 어떨까? 가이드가 몇 개 사서 나누어주며 먹어보란다. 우리나라 옥수수랑 맛은 마찬가지다.
기차는 한 칸의 길이가 우리나라 열차의 반 정도이며 칸과 칸을 옮겨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선로의 경사와 굴곡이 심해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열차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열차란다. 열차에는 제복을 입은 남녀 승무원이 한 조가 되어 음료수를 제공하고 기념품 판매도 한다. 영어도 통한다. 여승무원은 스페인계의 피가 섞인 듯 여기 와서본 여자들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다. 이 열차는 내국인은 탈 수 없으며 내국인이 탈 수 있는 열차와 화물열차가 별도로 있단다. 각 열차가 하루 두 번씩 총 6번 다니며 길이 워낙 험하여 기차 이외의 교통수단은 없단다.
맞추피추 역.
역에서 맞추피추 요새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약1 km정도 되는 길 주변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와 식당뿐이다. 가게에서 파는 상품은 알파카 털로 만든 의류, 모포, 머플러 등과 산뽀니아, 팬프룻 같은 악기가 주종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인디오는 얼굴이 좀 깨끗한 편이다. 그래도 좀 씻어서 그렇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씻고 안 씻고 차이가 그렇게 클 수 있나 싶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엄청난 경사면에 닦아놓은 거의 180도로 꺾어진 지그재그 길을 13번을 꺾어 올라가니 깎아지른 산꼭대기 위에 돌로 축조된 요새가 나타난다. 이 길을 만들기 전에는 절벽을 끼고 60cm정도 되는 좁은 길밖에 없었다한다.
우와 ! 세상에 이런 곳이...
요새 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경치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요새가 들어선 산은 80。가 넘을 듯한 경사로 되어있고 그 산 까마득히 아래로 아마존강 상류 줄기가 계곡을 이루며 무서운 기세로 흙탕물을 휘돌아 치고 있다.
그리고 이 요새는 계곡건너 더 높게 깎아지른 산들로 둘러 싸여 있다.
이산들은 몇 겹의 구름을 허리에 걸치고 그 웅장한 자태를 감추었다 보여줬다 하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새삼 숙연해진다.
왜? 어떻게 이런 곳에 요새를 지었을까?
외침에 대비하여 축조해 놓았으며 서기1000년 무렵부터 약500년 간 사람이 살았다한다. 5000명 정도가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1500년 무렵 이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한다. 이들이 무슨 이유로 일시에, 어디로 이동했는 지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단다. 요새의 흔적에는 신전과 주거 가옥에 경작지도 있고 운동장으로 보이는 넓은 광장까지 있다. 신전을 축조한 석조기술은 쿠즈코의 그것과 동일하다. 1960년대 한 고고학자의 각고의 노력 끝에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지진과 비바람으로 크게 훼손된 상태였으며 아직도 복원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한다.
요새의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는 중 돌로 된 담장에 선명하게 한글로 새긴 이름 석자가 눈에 띤다.
아!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인가? 멀리 지구 반대쪽 낮선 곳에서 한글을 보았음에도 반가운 마음보다 한국사람이 저지른 짓임을 다른 나라 사람이 알까봐 얼굴이 화끈해져 온다.
아무리 경치가 좋다 하여도 남의 나라에 와서까지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는 건 무슨 심보일까?
매표소가 있는 버스 승차장 옆의 하나뿐인 식당에서 점심.
길옆에서 가스버너를 가져와 스파게티를 끓여 먹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샌드위치를 가져와 먹는 사람들도 있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하루 3000명 정도 온단다. 그때면 지금보다 엄청나게 혼잡하단다. 3000명이 많다니 설악산은 수십만인데... 하기야 이 요새에 수만 명이 올라서면 사람에 밀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
다시 열차를 타고 쿠즈코 행.
5시간이나 걸린다하여 모두들 지루할까봐 걱정한다.
쿠즈코시 외곽 경사진 지역에서는 우리나라 태백선(중앙선인가?)처럼 열차가 앞뒤를 바꾸어가며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이 지역은 서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부산의 산복도로 근처보다 경사가 더 심하다.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가난에 찌든 우리네 달동네 주민의 생활을 연상케 한다.
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호텔로 가는 도중 시장을 통과한다. 시장다운 활기는 있어 보이나 이곳 역시 아직도 어려운 이곳 사람의 생활수준을 가늠하기에 충분하였다.
쿠즈코의 사보이 호텔.
긴 여정에 피로가 엄습해오는데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아려와서다. 술을 한 잔하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제 7일(수) 페루 리마 - 포르노 박물관
오늘밤에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야 한다.
8시 쿠즈코 공항 출발, 리마 행 비행기내.
안데스산맥을 넘으며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구름을 뚫고 여기저기 솟아 있는 만년설을 품은 산봉우리들... 비행기 고도가 산봉우리보다 그리 높지 않은 듯 산들이 바로 아래에 보인다. 대단한 산들이다.
리마 도착.
이제부터 그 지긋지긋한 호흡곤란에서 해방이다. 날씨가 더워 모두들 한두 겹의 옷을 벗는다.
멕시코에서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에 와서 새벽에 말도나도로 바로 출발해버려 볼 수 없었던 리마 시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리마 길거리는 한국산 자동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티코가 가장 많이 눈에 띠고 씨에로 에스페로등 대우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엑센트 등 현대차와 프라이드등 기아차도 심심찮게 보인다. 대우차가 많은 건 김우중 회장과 후지모리가 매우 친한 사이여서 그렇단다.
7월에 페루 대통령선거가 있단다. 지금이 2월인데 벌써부터 거리에는 선거낙서가 많이 보인다. 거의가 후지모리의 이름과 정당표시다. 정당표시 위에 가위표를 해놓은 그림이 많다. 반대당이 해꼬지해 놓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다. 여기서는 투표할 때 투표용지에 정당표시가 되어 있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표시에 가위 표시를 한단다.
후지모리가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은 2선만 하게 해놓고 자신은 예외가 될 수 있게 해 두었단다. 박정희 닮았다. 그래도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전망된단다.
오전의 공식일정을 끝내고 황금박물관이라 불리는 사설박물관으로 이동.
개인사업가가 70년 동안 모은 유물들이 종류와 갯수에서 국립박물관을 훨씬 능가한다고 한다. 여기에 소장된 무기류만으로도 2개 사단(여단 이랬나?)을 완전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란다.
아즈텍 문명의 유물인 토기가 매우 재밌다. 주전자 등 생활에 필요한 그릇의 뚜껑이나 손잡이에 장식해놓은 조각이 요즘의 포르노물과 다를 바 없다. 남녀의 다양한 체위의 성교모습 뿐만 아니라 호모, 獸姦, 그룹섹스 등 포르노에 관한 한 없는 게 없다. 신기한 일이다. 포르노의 원조가 스웨덴인 줄 알았더니 아닐세...
미이라도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머리카락과 얼굴형태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수백 년 전 사람이 환생한 듯 착각이 될 정도다. 그 외에도 금붙이, 직물류, 무기... 없는 게 없으며, 수량이 엄청난데도 전시 공간이 좁아, 박물관이 아니라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청룡도(장검의 몸체에 청룡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도 볼 수 있었다.
시내 기념품 가게가 집결해 있는 곳에 안내되었다. 여기는 정부에서 계획적으로 조성해 놓은 집단 상가로 호객행위도 없고 바가지도 없는 것 같다. 에누리도 거의 안 된다. 여기서 살걸... 페루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특산품이나 관광상품은 여기에 다 있는 것 같다.
페루 리마의 해변.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태평양이다. 여기는 우리나라 해운대쯤 되는 해수욕장이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꽤있다. 내가 어릴 때 보던 해운대 해수욕장의 풍경과 비슷해 보인다.
백사장 옆으로 포구와 함께 수산시장이 있다. 도시규모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어시장이다. 숭어 가오리 전어 병어 등이 눈에 뜨이고 공벌레 비슷한 갑각류가 보인다. 총무가 바닷가재, 숭어 등을 산다. 저녁에 회로 먹을 거란다. 생각보다 싸지 않다.
해변가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동안 길 건너 디스코텍 안의 남녀와 우리 일행간에 서로 춤추는 시늉, 들어오라는 손짓, 한바탕 웃음이 오고 갔다. 디스코텍 안의 남녀는 대부분 십대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단다. 4-50대 중년여자가 십대의 남자아이와 함께 사는 경우도 많단다. 13살 정도 어린 여자아이가 임신한 경우도 많고, 15세 이상이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단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한국식당을 찾았다. 삼겹살에 회에 아주 진수성찬으로 차렸다. 밤새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술을 좀 먹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대부분 그렇듯이 여기 식당에도 한국관광객을 위하여 해구신과 칠레특산이라는 장미씨앗기름을 갖다 놓고 판다.
리마공항에서 새벽 0시 30분 비행기로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단다. 비행기편을 너무 힘들게 짜놨다. 싼 표를 구하다보니 그렇겠지....
이날 술 때문에 말라리아 예방약은 못 먹고 말았다.
제 8일(목) 아르헨티나 - 쇼핑지옥
칠레 산티아고 공항.
꽤 크고 깨끗해 보여 페루에 비하면 훨씬 잘사는 나라인 듯하다. 지금이 몇 시인지 조차 모르겠다. 공항 내 대기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청했다. P실장이나 L의장도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 항상 Business class만 타고 다니던 어르신네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서너 시간은 그러고 뒤척인 것 같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행 비행기.
창 밖의 경치가 볼 만하다.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엄한 봉우리들을 지나더니 끝도 없이 펼쳐진 대평원이 나온다. 저것이 팜파스겠지.... 몇 시간을 가도 평원은 끝날 줄 모른다. 평원을 지나는 길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시야 안에서 완전히 직선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시간으로 오전 11시쯤 된 것 같다. 시차를 몰라 비행기를 몇 시간을 탔는지 계산이 안 된다. 계산해 보기도 싫다. 모두들 피곤하고 꼬질꼬질해 보인다. 다들 공항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뒤척였으니 그럴 수밖에... 호텔에 먼저 들러 간단히 샤워. 현지가이드가 유학생으로 착해 보인다.
현지 식당.
시내 고급 주택가의 규모가 꽤 큰 뷔페식당으로 주말이면 문밖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잘되는 식당이란다. 평일이고 시간이 2시쯤인데도 식당 안엔 손님이 많이 있다. 모두들 백인이다. 아르헨티나가 백인의 나라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피부색이 다른 우리 일행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꼴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나라사람들은 자기네는 이웃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백인국가이며 유럽에 속하는 나라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한다.
시내관광.
아르헨티나는 역사가 오래지 않아 오래된 유적 같은 것이 거의 없다. 가이드는 별것도 아닌 것들을 열심히 설명한다.
대통령 궁.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제목이 에비타 였던가?)에서 에비타가 국민에게 연설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단다. 이런 정도가 명소가 될 수밖에 없는 나라인 것 같다. 대통령 궁 앞 광장에는 시위대가 모여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 범죄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란다. 이 나라에서는 크게 벌어진 범죄치고 제대로 해결되는 게 거의 없단다. 정치권과 범죄조직의 결탁 의혹이 있는 사건이 많단다. 우리나라도 비슷한데... 도심은 매우 넓고 공원 등 녹지가 많아 쾌적해 보인다. 도심의 3분의 1이 공원이란다.
보카(Boca)구장.
마라도나가 소속되어 있던 프로축구팀의 홈구장. 이곳에서 경기가 있는 날 이곳 주변의 거리는 광란의 거리로 변한단다.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체 경찰이 총동원된단다. 이런 곳도 관광코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근처 탱고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항구 주변 마을.(동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태리계의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밤이면 거리에 늘어선 바에서 탱고공연을 볼 수 있단다. 이 거리의 집들은 모두 빨강 파랑 노랑 등 조잡한 원색으로 칠해져있다. 가이드는 이 곳에서의 탱고공연이 볼만하다며 관람을 추천하였으나 다들 쉬고싶은 생각뿐.
도심 번화가에서 쇼핑할 시간을 주어 둘러보니 모든 것들이 너무 비싸다. 이전에 이 나라는 외국인에게 쇼핑천국으로 유명한 나라였으나 몇 년 전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릴 때 페소 대 달러 환율을 강제로 1:1로 고정시켜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쇼핑지옥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이런 억지 통화정책 때문에 이 나라사람조차도 자기네 화폐인 페소화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단다.
이 날은 정말 곤하게 푹 잤다.
제 9일(금) 브라질 - 아! 이과수폭포
아침에 집에 전화를 하니 보경이가 받는다. 역시 귀여운 딸이다. 오래 통화를 하고 싶었으나 통화료 역시 살인적으로 비싼 곳이라 길게 할 수가 없다. 서울과는 12시간 차이로 지구 위의 정반대 쪽이다.
호텔 앞 도심묘지(레콜레타)
공동묘지가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더 재밌는 것은 묘지가 난장이의 주택처럼 예쁘게 지어져 있다. 수백 채는 될 것 같다. 구획정리도 도시계획한 것처럼 잘 되어있다. 시신을 땅속에 파묻지 앉고 실내에 관 채 모셔 두고있다. 때문에 여길 들어서면 시신 썩는 냄새가 많이 난다.
에바 페론, 국모로서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인 에비타(에바 페론의 애칭)의 묘에 꽃이 가장 많이 꽂혀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내선 공항.
이과수공항으로 가기 위해 왔다. 국제선 공항과는 차로 40분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셔틀을 이용할 경우 40$을 받는 다고 한다. 도둑놈들...
이과수공항.
브라질인줄 알았더니 아직 아르헨. 이과수시는 브라질에 있으나 이과수 공항은 아르헨티나에 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은 강 위의 다리 한가운데를 노란색 선으로 표시해 놓은 게 전부다.
이과수시.
이과수폭포 때문에 유명해진 관광도시다. 날씨가 매우 덥다. 브라질답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 국경 근처 식당에서의 점심식사는 음식의 종류도 많고 양이 엄청나다. 처음 보는 요리에 고기며, 과일... 어떻게 먹으려고 이렇게 많이 주문했냐니까 이 식당은 기본이 그 정도란다. 이 곳에서는 다 먹지 않고 남기는 걸 교양있는 것으로 간주한단다. 아르헨티나도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이곳 근처에 세계에서 외채가 가장 많은 세 나라가 모두 모여 있다. 이들 나라를 외채국 ABC라고 한단다. 아르헨(A), 브라질(B), 칠레(C). 그래도 외채 때문에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IMF에서도 이 나라에는 자꾸 돈을 빌려 준단다. 부존자원이 워낙 많으니까... 부러운 나라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브라질의 대통령이 새로 선출됐는데 미국에 대해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이름은 모르겠다.) 미국 정부에서 이 사람의 버릇을 들이려고 외채를 빨리 갚으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브라질 정부에서는 외채상환을 위해 아마존강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여기에서 벌목한 나무를 팔아서 갚겠다고 했다.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밀림을 없애게 놔둘 수 없었던 거다. 전 세계의 환경단체와 UN이 미국을 질타했다. 결국 미국은 부채의 일부를 탕감해주고 상환기간도 연장해주었다.
브라질은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란다. 인종차별은 매우 큰 범죄에 해당되어 인종차별에 해당되는 범죄는 보석신청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단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혼혈의 종류가 가장 다양한 나라가 브라질이란다. 이 점은 이웃의 아르헨티나의 인종차별주의와 매우 다른 점이다.
뭔가 모르게 브라질에는 정이 가고 아르헨에는 오래 있고 싶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브라질을 대변하는 3가지를 꼽으라면 축구, 삼바축제, 커피이다.
바로 그 삼바축제가 다음주부터 열린단다. 축제준비를 위해 거리 곳곳에 무대를 만들고 있는 게 보인다. 일주일만 늦게 왔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축제기간동안 시내 길거리나 바에서 만난 여자는 처녀와 유부녀를 불문하고 아무나 데려가 잘 수 있으며 남편들도 이 기간동안은 자기 마누라가 외간남자와 자도 아무 말 않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단다. 축제기간동안 광란의 밤이 이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으나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이과수폭포.
세계최대의 폭포.
폭포, 또 폭포... 주변에 온통 폭포뿐이다.
상상을 초월한 대자연이 여기에 펼쳐져 있었다. 폭포의 갯수가 물 양에 따라 350-400개쯤 된단다.
숨이 막힐 듯 펼쳐진 폭포의 장관과 거기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굉음에 압도되고 만다.
맞추피추에서 느꼈던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한다.
감동이라는 말 이외에 이 느낌을 나타낼 어휘가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느끼는 감동을 필설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문인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보려고, 지구 반대 쪽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구나.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과수폭포의 75%가 아르헨 쪽이고 나머지가 브라질 쪽이어서 오히려 브라질 쪽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단다. 폭포아래 들어가 샤워를 할 각오를 하란다.
폭포 아래 보트관광, 옵션사항으로 50$씩 이다. 카메라, 지갑 등을 쌀 비닐을 나누어준다. 선장은 일부러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로 배를 몰아 들어간다. 모두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물이 많을 때는 물살이 세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젖은 옷을 입은 채 저녁식사.
고기는 지천이다. 먹기 싫다고 할 때까지 종업원이 다양한 바비큐를 들고 와서 계속 준다. 물론 현지인들은 쉽게 드나들기 어려운 고급식당이다.
Hotel International.
꽤 고급호텔이다. 로비에서 체구가 큰 여자가 손님들을 위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성량도 크고 들을 만 하다. 우리 일행이 박수를 치며 앵콜을 청하니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계속 불러 댄다.
밤에는 삼바쇼 관람팀과 술 마시는 팀으로 구분하여 취향대로 가기로 했다. P실장이 내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삼바쇼를 갈 생각이라니까 자기랑 L의장이랑 술 마시러 가잔다. 웬일일까? 어쩔 수 없군... 술값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이과수 시내의 한 클럽으로 갔다. 안을 들어가니 어지간한 중고등학교 실내체육관 만하다. 전면의 초대형 화면에는 리오 축제 동영상이 계속 비춰지고 가운데 플로어를 중심으로 테이블이 수도 없이 많으며, 아가씨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또 그들 사이의 혼혈종... 종류도 많고 수도 많다. 술값은 시버스리걸 1병이 100$이고 안주는 홀 바깥에 있는 매점에서 따로 사다 먹으면 된단다. 여자가 필요하면 무대에서 춤추던 댄서도 좋고 플로어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거나 홀에서 어정거리는 아가씨를 아무나 골라서 손목을 잡고 오면 테이블로 따라 온단다. 데려와서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보내고 다시 골라오면 된단다. 팁은 별도로 없고 2차 갈 때만 주면 된단다. 그게 100$이고 방 값 50$는 별도라 했다.(여기서 말한 가격들은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말이 안 통하다보니 신뢰감이 안 가는 가이드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었다.)
L의장이 나더러 달러 가진 게 얼마냐고 묻는다. 여행의 막바지라 많이 있을 턱이 없다. 혹시 해서 총무에게 빌려온 200$가 전부였다. 내놓으란다. 이 사람들 그거 받고는 술도 마시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방 값 아끼려고 호텔로 갔단다. 방은 하나고 사람은 둘인데... 트윈룸이라 괜찮다며 같이 갔단다. 시켜놓은 양주는 나 혼자 다 마시고 왔다.
다음날 아침 P실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도 못하고 내 앞에서만 방방 떴다. 가이드에게 속았다고. 가이드가 아가씨 값을 미리 달래서 주었더니 자기 팁으로 챙겨버렸단다. 아가씨 값은 후불이더란다. 가이드가 후불로 만들어놨는지도 모를 일이다. L의장은 그나마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는 것 같다.
제 10일(토) 산티아고 - 큰 사건
오늘부터는 귀국길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다.
일정표를 보니 여기서부터 서울까지 39시간이 걸리고 날수로 사흘이 걸린다. 비행기 스케쥴을 최악으로 짜놓은 것 같다. 이과수공항 - 부에노스아이레스 - 산티아고 - LA - 서울.
상파울루에서 서울직항을 이용하면 12시간 이상 단축될 텐데...
커피를 사러 수퍼마켓에 들렀다. 종류가 워낙 많아 어떤 걸 사야할지 알 수가 없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한국사람 입맛에 맞을 거라는 종류로 몇 봉지 샀더니 부피가 만만찮다.
아르헨티나로 다시 국경을 넘어와 이과수폭포의 아르헨쪽 한 군데를 들러봤다.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으로 수량이 가장 많은 폭포란다. 배를 타고 간다. 여기는 이과수폭포 위쪽 강이며 위쪽에서 폭포를 볼 수 있단다. 폭포가 잘 보이는 곳에 선착장과 전망대를 만들어놨다. 과연 엄청난 수량이다. 한 곳에서 일시에 이렇게 많은 물이 쏟아져 내려가다니... 팔당댐이 터져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다. 내려다보니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박 과장이 여기 남미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이 실감난다고 한다. 나 역시 동감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앞으로는 창피해서 우리의 자연을 금수강산 어쩌고 하며 외국인에게 자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동의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맞추피추와 같은 대단한 유적도 없으며 이과수 같은 대자연 경관도 가지고 있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도 동감하기 어렵다.
유적으로서의 맞추피추는 강화도나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굴욕의 현장에 지나지 않는다. 있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이러한 유적을 남길 필요가 없는 역사를 가진 게 더 자랑스럽지 않을까?
여기서 보는 대자연의 웅장함 또한 큰마음 먹고 찾아가면 볼 수 있는 구경거리로 어느 곳에든 존재하면 그만이지 보기 좋다고 그것이 꼭 우리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 땅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딱 맞는 금강산과 설악산과 제주도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가. 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우리 땅에 안데스산맥과 이과수폭포와 그랜드캐년 같은 대자연 경관이 있거나, 우리 땅이 기름지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넓은 땅 이였다면 지금과 같은 우리민족의 번영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대자연과 함께 사는 민족이 그 자연에 짓눌려 살거나 자연이 주는 혜택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존은 그 속에 사는 사람을 아직도 원시인으로 붙잡아 두고 있으며 안데스는 인디오를 희망이 없는 민족으로 만든 것도 그 한 예이다. 넓고 기름진 땅 또한 힘센 민족의 쟁탈전 속에서 처음 살았던 민족이 계속 그 땅 모두를 지키며 살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미국의 경우가 그러하며 미국인은 그 땅이 만든 사람이 아닌 척박한 땅 유럽에서 건너간 침략자다.
우리 땅은 우리를 짓누르지도 않았고 그 속에 안주하며 살아가게 하지도 않았으며, 계속적인 침략 속에서도 우리민족이 지켜낼 만큼 크기도 적당하지 않은가.
통일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남의 땅의 대자연을 돌아보고 새삼 우리 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과수공항.
지금부터 서울로 출발이다.
그러나 고생길이 될게 뻔하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것만도 힘든 일일텐데 비행기를 갈아 탈 때마다 3-6시간 씩 공항에서 머물러야 한다니 걱정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갈아탄 산티아고 행 비행기내.
큰 사건, 최대의 사건 !!!
P실장, 기내 화장실에서의 흡연으로 산티아고 공항에 24시간 억류 !!!
기장의 증언에 의하면 P실장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후 그 사실을 나무라는 여승무원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우며 조롱하였다는 것. 그러고도 나중엔 담배 피운 사실을 부인하더라는 것. 그래서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면 경찰에 넘기겠단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한 것 같다.
P실장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이를 안 여자승무원이 주의를 주자 겸연쩍은 웃음을 띄우고 손짓으로 알았다는 시늉을 했다.
승무원은 이것을 자기를 비웃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승무원은 이 사실을 기장에게 보고했고 기장이 나와서 P실장에게 뭐라고 화난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일이 심각해 졌다고 생각한 P실장은 영어가 되는 이 과장을 불렀다.
흡연 사실을 부인하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P실장은 이 과장에게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이 과장은 시키는 대로 이 사람은 담배를 안 피웠다고 통역을 했다.
이를 듣고 더욱 화가 난 기장은 산티아고 공항 경찰에게 인계하겠다고 결정했다.
산티아고 공항.
도착하자마자 공항경찰 두 사람이 올라 왔다. 승무원의 설명과 우리측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P실장에게 여권 등 중요한 물품을 챙겨서 따라오란다. 24시간 억류한 후 다음날 비행기로 보내 주겠단다. 일행 중 통역 가능한 사람이 함께 남겠다고 하였으나 허용되지 않았다. 여권, 비행기표, 현금, 신용카드 등을 챙겨 주었다. 수행비서는 P실장더러 대사관에 연락하라고 일러 준다. 대사관에 연락했다 국내에 알려지면 고위공직자가 품위손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P실장이 연행되어 나가는 순간까지 L의장은 자는 척하고 있다. 사람이 저럴 수가...
제 11일(일) 지루한 항로
LA 공항에 도착하여 대한항공 직원에게 산티아고에 억류된 P실장 건을 상의했다. 그 직원은 지금까지 기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인신구금한 사례가 어느 항공사에서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전망하기 어렵다고 한다. 관련법도 자국법을 따르기 때문에 그것도 잘 모르고... 사방으로 연락을 취해보려 하였지만 일요일이어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수행비서도 포기하고 제 볼일에 열중이다.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걱정해봤자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일까? 그 사건은 잊어버린 듯 또다시 쇼핑에 열을 올린다. 피곤하지도 않은가?
미국비자 없는 사람은 또다시 공항직원의 감시를 받는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서울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 12일(월) 드디어 서울
드디어 서울이다.
마중 나온 P실장 부하직원들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이다.
우리 회사에서 마중 나와준 직원이 가져온 겨울잠바로 갈아입고 귀가를 서둘렀다.
빨리 가자! 마려워 죽겠다.
p.s : 하루 늦게 귀국한 P실장 말에 의하면 주칠레 한국대사관직원에게 대접 잘 받고 칠레 구경까지 하고 왔답니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식사 후 맞추피추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오래된 마을이 있다며 잠시 내려서 구경하고 가잔다. 가이드도 마을이름을 모른다. 작은 마을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듯 을씨년스럽다. 마을 중심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 하차하니 원주민 장사꾼이 몰려든다. 길은 돌로 된 보도블럭이 깔려 있고 광장 옆으로 고산지에 흔치 않을 것 같은 돌로 된 수로에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있다. 멀리 다른 곳에서 끌어 온 것이라 했다. 바로 옆 깍아지른 듯한 산중턱(경사가 80도를 넘는 것 같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북한의 대남방송 스피커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공동묘지란다. 올라가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 저런 곳에 어떻게 무덤을 만들었을까. 이곳의 장묘방식은 풍장이란다. 시신을 노천에 놓아두어 부패가 끝난 뒤 뼈를 추려서 산중턱 묘지에 묻는단다.
맞추피추 행 기차를 타는 역에 도착. 역사나 프랫폼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기차역과 꼭 같다. 역시 장사꾼 떼가 모여든다. 옥수수를 팔고 있는데 알이 매우 굵고 알이 박힌 줄이 듬성듬성하다. 맛은 어떨까? 가이드가 몇 개 사서 나누어주며 먹어보란다. 우리나라 옥수수랑 맛은 마찬가지다.
기차는 한 칸의 길이가 우리나라 열차의 반 정도이며 칸과 칸을 옮겨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선로의 경사와 굴곡이 심해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열차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열차란다. 열차에는 제복을 입은 남녀 승무원이 한 조가 되어 음료수를 제공하고 기념품 판매도 한다. 영어도 통한다. 여승무원은 스페인계의 피가 섞인 듯 여기 와서본 여자들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다. 이 열차는 내국인은 탈 수 없으며 내국인이 탈 수 있는 열차와 화물열차가 별도로 있단다. 각 열차가 하루 두 번씩 총 6번 다니며 길이 워낙 험하여 기차 이외의 교통수단은 없단다.
맞추피추 역.
역에서 맞추피추 요새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약1 km정도 되는 길 주변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와 식당뿐이다. 가게에서 파는 상품은 알파카 털로 만든 의류, 모포, 머플러 등과 산뽀니아, 팬프룻 같은 악기가 주종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인디오는 얼굴이 좀 깨끗한 편이다. 그래도 좀 씻어서 그렇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씻고 안 씻고 차이가 그렇게 클 수 있나 싶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엄청난 경사면에 닦아놓은 거의 180도로 꺾어진 지그재그 길을 13번을 꺾어 올라가니 깎아지른 산꼭대기 위에 돌로 축조된 요새가 나타난다. 이 길을 만들기 전에는 절벽을 끼고 60cm정도 되는 좁은 길밖에 없었다한다.
우와 ! 세상에 이런 곳이...
요새 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경치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요새가 들어선 산은 80。가 넘을 듯한 경사로 되어있고 그 산 까마득히 아래로 아마존강 상류 줄기가 계곡을 이루며 무서운 기세로 흙탕물을 휘돌아 치고 있다.
그리고 이 요새는 계곡건너 더 높게 깎아지른 산들로 둘러 싸여 있다.
이산들은 몇 겹의 구름을 허리에 걸치고 그 웅장한 자태를 감추었다 보여줬다 하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새삼 숙연해진다.
왜? 어떻게 이런 곳에 요새를 지었을까?
외침에 대비하여 축조해 놓았으며 서기1000년 무렵부터 약500년 간 사람이 살았다한다. 5000명 정도가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1500년 무렵 이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한다. 이들이 무슨 이유로 일시에, 어디로 이동했는 지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단다. 요새의 흔적에는 신전과 주거 가옥에 경작지도 있고 운동장으로 보이는 넓은 광장까지 있다. 신전을 축조한 석조기술은 쿠즈코의 그것과 동일하다. 1960년대 한 고고학자의 각고의 노력 끝에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지진과 비바람으로 크게 훼손된 상태였으며 아직도 복원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한다.
요새의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는 중 돌로 된 담장에 선명하게 한글로 새긴 이름 석자가 눈에 띤다.
아!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인가? 멀리 지구 반대쪽 낮선 곳에서 한글을 보았음에도 반가운 마음보다 한국사람이 저지른 짓임을 다른 나라 사람이 알까봐 얼굴이 화끈해져 온다.
아무리 경치가 좋다 하여도 남의 나라에 와서까지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는 건 무슨 심보일까?
매표소가 있는 버스 승차장 옆의 하나뿐인 식당에서 점심.
길옆에서 가스버너를 가져와 스파게티를 끓여 먹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샌드위치를 가져와 먹는 사람들도 있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하루 3000명 정도 온단다. 그때면 지금보다 엄청나게 혼잡하단다. 3000명이 많다니 설악산은 수십만인데... 하기야 이 요새에 수만 명이 올라서면 사람에 밀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
다시 열차를 타고 쿠즈코 행.
5시간이나 걸린다하여 모두들 지루할까봐 걱정한다.
쿠즈코시 외곽 경사진 지역에서는 우리나라 태백선(중앙선인가?)처럼 열차가 앞뒤를 바꾸어가며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이 지역은 서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부산의 산복도로 근처보다 경사가 더 심하다.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가난에 찌든 우리네 달동네 주민의 생활을 연상케 한다.
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호텔로 가는 도중 시장을 통과한다. 시장다운 활기는 있어 보이나 이곳 역시 아직도 어려운 이곳 사람의 생활수준을 가늠하기에 충분하였다.
쿠즈코의 사보이 호텔.
긴 여정에 피로가 엄습해오는데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아려와서다. 술을 한 잔하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제 7일(수) 페루 리마 - 포르노 박물관
오늘밤에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야 한다.
8시 쿠즈코 공항 출발, 리마 행 비행기내.
안데스산맥을 넘으며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구름을 뚫고 여기저기 솟아 있는 만년설을 품은 산봉우리들... 비행기 고도가 산봉우리보다 그리 높지 않은 듯 산들이 바로 아래에 보인다. 대단한 산들이다.
리마 도착.
이제부터 그 지긋지긋한 호흡곤란에서 해방이다. 날씨가 더워 모두들 한두 겹의 옷을 벗는다.
멕시코에서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에 와서 새벽에 말도나도로 바로 출발해버려 볼 수 없었던 리마 시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리마 길거리는 한국산 자동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티코가 가장 많이 눈에 띠고 씨에로 에스페로등 대우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엑센트 등 현대차와 프라이드등 기아차도 심심찮게 보인다. 대우차가 많은 건 김우중 회장과 후지모리가 매우 친한 사이여서 그렇단다.
7월에 페루 대통령선거가 있단다. 지금이 2월인데 벌써부터 거리에는 선거낙서가 많이 보인다. 거의가 후지모리의 이름과 정당표시다. 정당표시 위에 가위표를 해놓은 그림이 많다. 반대당이 해꼬지해 놓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다. 여기서는 투표할 때 투표용지에 정당표시가 되어 있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표시에 가위 표시를 한단다.
후지모리가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은 2선만 하게 해놓고 자신은 예외가 될 수 있게 해 두었단다. 박정희 닮았다. 그래도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전망된단다.
오전의 공식일정을 끝내고 황금박물관이라 불리는 사설박물관으로 이동.
개인사업가가 70년 동안 모은 유물들이 종류와 갯수에서 국립박물관을 훨씬 능가한다고 한다. 여기에 소장된 무기류만으로도 2개 사단(여단 이랬나?)을 완전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란다.
아즈텍 문명의 유물인 토기가 매우 재밌다. 주전자 등 생활에 필요한 그릇의 뚜껑이나 손잡이에 장식해놓은 조각이 요즘의 포르노물과 다를 바 없다. 남녀의 다양한 체위의 성교모습 뿐만 아니라 호모, 獸姦, 그룹섹스 등 포르노에 관한 한 없는 게 없다. 신기한 일이다. 포르노의 원조가 스웨덴인 줄 알았더니 아닐세...
미이라도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머리카락과 얼굴형태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수백 년 전 사람이 환생한 듯 착각이 될 정도다. 그 외에도 금붙이, 직물류, 무기... 없는 게 없으며, 수량이 엄청난데도 전시 공간이 좁아, 박물관이 아니라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청룡도(장검의 몸체에 청룡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도 볼 수 있었다.
시내 기념품 가게가 집결해 있는 곳에 안내되었다. 여기는 정부에서 계획적으로 조성해 놓은 집단 상가로 호객행위도 없고 바가지도 없는 것 같다. 에누리도 거의 안 된다. 여기서 살걸... 페루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특산품이나 관광상품은 여기에 다 있는 것 같다.
페루 리마의 해변.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태평양이다. 여기는 우리나라 해운대쯤 되는 해수욕장이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꽤있다. 내가 어릴 때 보던 해운대 해수욕장의 풍경과 비슷해 보인다.
백사장 옆으로 포구와 함께 수산시장이 있다. 도시규모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어시장이다. 숭어 가오리 전어 병어 등이 눈에 뜨이고 공벌레 비슷한 갑각류가 보인다. 총무가 바닷가재, 숭어 등을 산다. 저녁에 회로 먹을 거란다. 생각보다 싸지 않다.
해변가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동안 길 건너 디스코텍 안의 남녀와 우리 일행간에 서로 춤추는 시늉, 들어오라는 손짓, 한바탕 웃음이 오고 갔다. 디스코텍 안의 남녀는 대부분 십대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단다. 4-50대 중년여자가 십대의 남자아이와 함께 사는 경우도 많단다. 13살 정도 어린 여자아이가 임신한 경우도 많고, 15세 이상이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단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한국식당을 찾았다. 삼겹살에 회에 아주 진수성찬으로 차렸다. 밤새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술을 좀 먹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대부분 그렇듯이 여기 식당에도 한국관광객을 위하여 해구신과 칠레특산이라는 장미씨앗기름을 갖다 놓고 판다.
리마공항에서 새벽 0시 30분 비행기로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단다. 비행기편을 너무 힘들게 짜놨다. 싼 표를 구하다보니 그렇겠지....
이날 술 때문에 말라리아 예방약은 못 먹고 말았다.
제 8일(목) 아르헨티나 - 쇼핑지옥
칠레 산티아고 공항.
꽤 크고 깨끗해 보여 페루에 비하면 훨씬 잘사는 나라인 듯하다. 지금이 몇 시인지 조차 모르겠다. 공항 내 대기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청했다. P실장이나 L의장도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 항상 Business class만 타고 다니던 어르신네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서너 시간은 그러고 뒤척인 것 같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행 비행기.
창 밖의 경치가 볼 만하다.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엄한 봉우리들을 지나더니 끝도 없이 펼쳐진 대평원이 나온다. 저것이 팜파스겠지.... 몇 시간을 가도 평원은 끝날 줄 모른다. 평원을 지나는 길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시야 안에서 완전히 직선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시간으로 오전 11시쯤 된 것 같다. 시차를 몰라 비행기를 몇 시간을 탔는지 계산이 안 된다. 계산해 보기도 싫다. 모두들 피곤하고 꼬질꼬질해 보인다. 다들 공항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뒤척였으니 그럴 수밖에... 호텔에 먼저 들러 간단히 샤워. 현지가이드가 유학생으로 착해 보인다.
현지 식당.
시내 고급 주택가의 규모가 꽤 큰 뷔페식당으로 주말이면 문밖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잘되는 식당이란다. 평일이고 시간이 2시쯤인데도 식당 안엔 손님이 많이 있다. 모두들 백인이다. 아르헨티나가 백인의 나라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피부색이 다른 우리 일행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꼴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나라사람들은 자기네는 이웃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백인국가이며 유럽에 속하는 나라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한다.
시내관광.
아르헨티나는 역사가 오래지 않아 오래된 유적 같은 것이 거의 없다. 가이드는 별것도 아닌 것들을 열심히 설명한다.
대통령 궁.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제목이 에비타 였던가?)에서 에비타가 국민에게 연설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단다. 이런 정도가 명소가 될 수밖에 없는 나라인 것 같다. 대통령 궁 앞 광장에는 시위대가 모여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 범죄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란다. 이 나라에서는 크게 벌어진 범죄치고 제대로 해결되는 게 거의 없단다. 정치권과 범죄조직의 결탁 의혹이 있는 사건이 많단다. 우리나라도 비슷한데... 도심은 매우 넓고 공원 등 녹지가 많아 쾌적해 보인다. 도심의 3분의 1이 공원이란다.
보카(Boca)구장.
마라도나가 소속되어 있던 프로축구팀의 홈구장. 이곳에서 경기가 있는 날 이곳 주변의 거리는 광란의 거리로 변한단다.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체 경찰이 총동원된단다. 이런 곳도 관광코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근처 탱고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항구 주변 마을.(동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태리계의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밤이면 거리에 늘어선 바에서 탱고공연을 볼 수 있단다. 이 거리의 집들은 모두 빨강 파랑 노랑 등 조잡한 원색으로 칠해져있다. 가이드는 이 곳에서의 탱고공연이 볼만하다며 관람을 추천하였으나 다들 쉬고싶은 생각뿐.
도심 번화가에서 쇼핑할 시간을 주어 둘러보니 모든 것들이 너무 비싸다. 이전에 이 나라는 외국인에게 쇼핑천국으로 유명한 나라였으나 몇 년 전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릴 때 페소 대 달러 환율을 강제로 1:1로 고정시켜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쇼핑지옥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이런 억지 통화정책 때문에 이 나라사람조차도 자기네 화폐인 페소화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단다.
이 날은 정말 곤하게 푹 잤다.
제 9일(금) 브라질 - 아! 이과수폭포
아침에 집에 전화를 하니 보경이가 받는다. 역시 귀여운 딸이다. 오래 통화를 하고 싶었으나 통화료 역시 살인적으로 비싼 곳이라 길게 할 수가 없다. 서울과는 12시간 차이로 지구 위의 정반대 쪽이다.
호텔 앞 도심묘지(레콜레타)
공동묘지가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더 재밌는 것은 묘지가 난장이의 주택처럼 예쁘게 지어져 있다. 수백 채는 될 것 같다. 구획정리도 도시계획한 것처럼 잘 되어있다. 시신을 땅속에 파묻지 앉고 실내에 관 채 모셔 두고있다. 때문에 여길 들어서면 시신 썩는 냄새가 많이 난다.
에바 페론, 국모로서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인 에비타(에바 페론의 애칭)의 묘에 꽃이 가장 많이 꽂혀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내선 공항.
이과수공항으로 가기 위해 왔다. 국제선 공항과는 차로 40분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셔틀을 이용할 경우 40$을 받는 다고 한다. 도둑놈들...
이과수공항.
브라질인줄 알았더니 아직 아르헨. 이과수시는 브라질에 있으나 이과수 공항은 아르헨티나에 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은 강 위의 다리 한가운데를 노란색 선으로 표시해 놓은 게 전부다.
이과수시.
이과수폭포 때문에 유명해진 관광도시다. 날씨가 매우 덥다. 브라질답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 국경 근처 식당에서의 점심식사는 음식의 종류도 많고 양이 엄청나다. 처음 보는 요리에 고기며, 과일... 어떻게 먹으려고 이렇게 많이 주문했냐니까 이 식당은 기본이 그 정도란다. 이 곳에서는 다 먹지 않고 남기는 걸 교양있는 것으로 간주한단다. 아르헨티나도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이곳 근처에 세계에서 외채가 가장 많은 세 나라가 모두 모여 있다. 이들 나라를 외채국 ABC라고 한단다. 아르헨(A), 브라질(B), 칠레(C). 그래도 외채 때문에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IMF에서도 이 나라에는 자꾸 돈을 빌려 준단다. 부존자원이 워낙 많으니까... 부러운 나라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브라질의 대통령이 새로 선출됐는데 미국에 대해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이름은 모르겠다.) 미국 정부에서 이 사람의 버릇을 들이려고 외채를 빨리 갚으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브라질 정부에서는 외채상환을 위해 아마존강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여기에서 벌목한 나무를 팔아서 갚겠다고 했다.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밀림을 없애게 놔둘 수 없었던 거다. 전 세계의 환경단체와 UN이 미국을 질타했다. 결국 미국은 부채의 일부를 탕감해주고 상환기간도 연장해주었다.
브라질은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란다. 인종차별은 매우 큰 범죄에 해당되어 인종차별에 해당되는 범죄는 보석신청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단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혼혈의 종류가 가장 다양한 나라가 브라질이란다. 이 점은 이웃의 아르헨티나의 인종차별주의와 매우 다른 점이다.
뭔가 모르게 브라질에는 정이 가고 아르헨에는 오래 있고 싶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브라질을 대변하는 3가지를 꼽으라면 축구, 삼바축제, 커피이다.
바로 그 삼바축제가 다음주부터 열린단다. 축제준비를 위해 거리 곳곳에 무대를 만들고 있는 게 보인다. 일주일만 늦게 왔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축제기간동안 시내 길거리나 바에서 만난 여자는 처녀와 유부녀를 불문하고 아무나 데려가 잘 수 있으며 남편들도 이 기간동안은 자기 마누라가 외간남자와 자도 아무 말 않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단다. 축제기간동안 광란의 밤이 이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으나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이과수폭포.
세계최대의 폭포.
폭포, 또 폭포... 주변에 온통 폭포뿐이다.
상상을 초월한 대자연이 여기에 펼쳐져 있었다. 폭포의 갯수가 물 양에 따라 350-400개쯤 된단다.
숨이 막힐 듯 펼쳐진 폭포의 장관과 거기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굉음에 압도되고 만다.
맞추피추에서 느꼈던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한다.
감동이라는 말 이외에 이 느낌을 나타낼 어휘가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느끼는 감동을 필설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문인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보려고, 지구 반대 쪽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구나.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과수폭포의 75%가 아르헨 쪽이고 나머지가 브라질 쪽이어서 오히려 브라질 쪽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단다. 폭포아래 들어가 샤워를 할 각오를 하란다.
폭포 아래 보트관광, 옵션사항으로 50$씩 이다. 카메라, 지갑 등을 쌀 비닐을 나누어준다. 선장은 일부러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로 배를 몰아 들어간다. 모두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물이 많을 때는 물살이 세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젖은 옷을 입은 채 저녁식사.
고기는 지천이다. 먹기 싫다고 할 때까지 종업원이 다양한 바비큐를 들고 와서 계속 준다. 물론 현지인들은 쉽게 드나들기 어려운 고급식당이다.
Hotel International.
꽤 고급호텔이다. 로비에서 체구가 큰 여자가 손님들을 위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성량도 크고 들을 만 하다. 우리 일행이 박수를 치며 앵콜을 청하니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계속 불러 댄다.
밤에는 삼바쇼 관람팀과 술 마시는 팀으로 구분하여 취향대로 가기로 했다. P실장이 내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삼바쇼를 갈 생각이라니까 자기랑 L의장이랑 술 마시러 가잔다. 웬일일까? 어쩔 수 없군... 술값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이과수 시내의 한 클럽으로 갔다. 안을 들어가니 어지간한 중고등학교 실내체육관 만하다. 전면의 초대형 화면에는 리오 축제 동영상이 계속 비춰지고 가운데 플로어를 중심으로 테이블이 수도 없이 많으며, 아가씨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또 그들 사이의 혼혈종... 종류도 많고 수도 많다. 술값은 시버스리걸 1병이 100$이고 안주는 홀 바깥에 있는 매점에서 따로 사다 먹으면 된단다. 여자가 필요하면 무대에서 춤추던 댄서도 좋고 플로어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거나 홀에서 어정거리는 아가씨를 아무나 골라서 손목을 잡고 오면 테이블로 따라 온단다. 데려와서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보내고 다시 골라오면 된단다. 팁은 별도로 없고 2차 갈 때만 주면 된단다. 그게 100$이고 방 값 50$는 별도라 했다.(여기서 말한 가격들은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말이 안 통하다보니 신뢰감이 안 가는 가이드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었다.)
L의장이 나더러 달러 가진 게 얼마냐고 묻는다. 여행의 막바지라 많이 있을 턱이 없다. 혹시 해서 총무에게 빌려온 200$가 전부였다. 내놓으란다. 이 사람들 그거 받고는 술도 마시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방 값 아끼려고 호텔로 갔단다. 방은 하나고 사람은 둘인데... 트윈룸이라 괜찮다며 같이 갔단다. 시켜놓은 양주는 나 혼자 다 마시고 왔다.
다음날 아침 P실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도 못하고 내 앞에서만 방방 떴다. 가이드에게 속았다고. 가이드가 아가씨 값을 미리 달래서 주었더니 자기 팁으로 챙겨버렸단다. 아가씨 값은 후불이더란다. 가이드가 후불로 만들어놨는지도 모를 일이다. L의장은 그나마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는 것 같다.
제 10일(토) 산티아고 - 큰 사건
오늘부터는 귀국길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다.
일정표를 보니 여기서부터 서울까지 39시간이 걸리고 날수로 사흘이 걸린다. 비행기 스케쥴을 최악으로 짜놓은 것 같다. 이과수공항 - 부에노스아이레스 - 산티아고 - LA - 서울.
상파울루에서 서울직항을 이용하면 12시간 이상 단축될 텐데...
커피를 사러 수퍼마켓에 들렀다. 종류가 워낙 많아 어떤 걸 사야할지 알 수가 없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한국사람 입맛에 맞을 거라는 종류로 몇 봉지 샀더니 부피가 만만찮다.
아르헨티나로 다시 국경을 넘어와 이과수폭포의 아르헨쪽 한 군데를 들러봤다.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으로 수량이 가장 많은 폭포란다. 배를 타고 간다. 여기는 이과수폭포 위쪽 강이며 위쪽에서 폭포를 볼 수 있단다. 폭포가 잘 보이는 곳에 선착장과 전망대를 만들어놨다. 과연 엄청난 수량이다. 한 곳에서 일시에 이렇게 많은 물이 쏟아져 내려가다니... 팔당댐이 터져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다. 내려다보니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박 과장이 여기 남미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이 실감난다고 한다. 나 역시 동감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앞으로는 창피해서 우리의 자연을 금수강산 어쩌고 하며 외국인에게 자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동의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맞추피추와 같은 대단한 유적도 없으며 이과수 같은 대자연 경관도 가지고 있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도 동감하기 어렵다.
유적으로서의 맞추피추는 강화도나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굴욕의 현장에 지나지 않는다. 있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이러한 유적을 남길 필요가 없는 역사를 가진 게 더 자랑스럽지 않을까?
여기서 보는 대자연의 웅장함 또한 큰마음 먹고 찾아가면 볼 수 있는 구경거리로 어느 곳에든 존재하면 그만이지 보기 좋다고 그것이 꼭 우리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 땅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딱 맞는 금강산과 설악산과 제주도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가. 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우리 땅에 안데스산맥과 이과수폭포와 그랜드캐년 같은 대자연 경관이 있거나, 우리 땅이 기름지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넓은 땅 이였다면 지금과 같은 우리민족의 번영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대자연과 함께 사는 민족이 그 자연에 짓눌려 살거나 자연이 주는 혜택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존은 그 속에 사는 사람을 아직도 원시인으로 붙잡아 두고 있으며 안데스는 인디오를 희망이 없는 민족으로 만든 것도 그 한 예이다. 넓고 기름진 땅 또한 힘센 민족의 쟁탈전 속에서 처음 살았던 민족이 계속 그 땅 모두를 지키며 살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미국의 경우가 그러하며 미국인은 그 땅이 만든 사람이 아닌 척박한 땅 유럽에서 건너간 침략자다.
우리 땅은 우리를 짓누르지도 않았고 그 속에 안주하며 살아가게 하지도 않았으며, 계속적인 침략 속에서도 우리민족이 지켜낼 만큼 크기도 적당하지 않은가.
통일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남의 땅의 대자연을 돌아보고 새삼 우리 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과수공항.
지금부터 서울로 출발이다.
그러나 고생길이 될게 뻔하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것만도 힘든 일일텐데 비행기를 갈아 탈 때마다 3-6시간 씩 공항에서 머물러야 한다니 걱정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갈아탄 산티아고 행 비행기내.
큰 사건, 최대의 사건 !!!
P실장, 기내 화장실에서의 흡연으로 산티아고 공항에 24시간 억류 !!!
기장의 증언에 의하면 P실장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후 그 사실을 나무라는 여승무원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우며 조롱하였다는 것. 그러고도 나중엔 담배 피운 사실을 부인하더라는 것. 그래서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면 경찰에 넘기겠단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한 것 같다.
P실장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이를 안 여자승무원이 주의를 주자 겸연쩍은 웃음을 띄우고 손짓으로 알았다는 시늉을 했다.
승무원은 이것을 자기를 비웃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승무원은 이 사실을 기장에게 보고했고 기장이 나와서 P실장에게 뭐라고 화난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일이 심각해 졌다고 생각한 P실장은 영어가 되는 이 과장을 불렀다.
흡연 사실을 부인하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P실장은 이 과장에게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이 과장은 시키는 대로 이 사람은 담배를 안 피웠다고 통역을 했다.
이를 듣고 더욱 화가 난 기장은 산티아고 공항 경찰에게 인계하겠다고 결정했다.
산티아고 공항.
도착하자마자 공항경찰 두 사람이 올라 왔다. 승무원의 설명과 우리측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P실장에게 여권 등 중요한 물품을 챙겨서 따라오란다. 24시간 억류한 후 다음날 비행기로 보내 주겠단다. 일행 중 통역 가능한 사람이 함께 남겠다고 하였으나 허용되지 않았다. 여권, 비행기표, 현금, 신용카드 등을 챙겨 주었다. 수행비서는 P실장더러 대사관에 연락하라고 일러 준다. 대사관에 연락했다 국내에 알려지면 고위공직자가 품위손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P실장이 연행되어 나가는 순간까지 L의장은 자는 척하고 있다. 사람이 저럴 수가...
제 11일(일) 지루한 항로
LA 공항에 도착하여 대한항공 직원에게 산티아고에 억류된 P실장 건을 상의했다. 그 직원은 지금까지 기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인신구금한 사례가 어느 항공사에서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전망하기 어렵다고 한다. 관련법도 자국법을 따르기 때문에 그것도 잘 모르고... 사방으로 연락을 취해보려 하였지만 일요일이어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수행비서도 포기하고 제 볼일에 열중이다.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걱정해봤자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일까? 그 사건은 잊어버린 듯 또다시 쇼핑에 열을 올린다. 피곤하지도 않은가?
미국비자 없는 사람은 또다시 공항직원의 감시를 받는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서울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 12일(월) 드디어 서울
드디어 서울이다.
마중 나온 P실장 부하직원들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이다.
우리 회사에서 마중 나와준 직원이 가져온 겨울잠바로 갈아입고 귀가를 서둘렀다.
빨리 가자! 마려워 죽겠다.
p.s : 하루 늦게 귀국한 P실장 말에 의하면 주칠레 한국대사관직원에게 대접 잘 받고 칠레 구경까지 하고 왔답니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