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쯤 전 남미 4개국 출장을 갔을 때 틈틈이 수첩에 적어둔 것을 한데 모은 글입니다.
내용이 업무보다 관광에 더 치중되어 있는 데다 일행들의 좋지 못한 행적들이 포함되어 있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도 못하고 컴퓨터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세월도 많이 지났거니와, 망월산악회에서는 이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시라고 올립니다. 한번에 올리기에는 너무 긴 것 같아서 두 번에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입니다.
참고로, 일행은 모두 12명 이였으며 이중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저와 스페인어 통역을 위해 동행한 여행사 직원뿐 이였습니다. 이 글을 옮기면서 공무에 관련된 부분과 미풍양속을 해치는 내용은 가급적 삭제했습니다.
시점이 2년 몇 개월 이전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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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일(목) 출발

감기가 지독하다. 생애 최장거리여행을 앞두고 심한 감기에 걸리다니 이런 고약한 경우가 있나. 남미는 지금이 여름이라 심한 기온 차 때문에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운 곳으로 가니 오히려 나아질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구 반대 쪽 남아메리카를 내 돈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을 놓칠 수야 없지. 일인당 출장비가 6백만원이 넘는단다. business class를 이용하는 사람은 천만원 정도고...

김포공항 세종호텔 커피샾.
약속 시간인 1시 정각인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나보다. 1시 20분에서야 이번 여행의 총무를 맡고 있는 P실장 수행비서와 여행사 직원이 나타나 비행기표를 나누어주고 각자 알아서 타고 가서 LA공항에서 만나잔다.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다 챙겨야할 사람이 많아서 인사는 뒤에 나눠야겠단다. 그럴 수도 있겠지... 비행기 기내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일행인 것 같은데 서로 인사가 없었던 터라 말 한 마디 없이 LA까지 갔다. 이 사람도 나처럼 어지간히 붙임성이 없는 모양이다.

LA 공항 도착(오전 10시경).
미국비자 없는 사람들이 곤욕을 치렀다. 다른 나라로 가는 통과승객도 모두 내려 입국검사와 세관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자가 없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떠날 때까지 공항직원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출발 전 미국비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3개월이 남았다. 비자가 없는 3명에게 공항직원이 따라 붙어 화장실까지 따라 다닌다.
오후 1시10분 LA출발 멕시코시티 행. 기내에서 내내 잠만 잤다. 감기약 기운일까?

멕시코시티 공항.
현지 가이드가 마중 나왔다. 모두들 시장하여 식당(서울회관)부터 들러 식사를 하고 호텔로 직행.
멕시코시티는 해발 2000m이상의 고원지대이며 인구 2200백만 정도인 도시라 한다.
Nikko호텔. 꽤 큰 편...
모두들 피곤한 표정이 역력하다. 6개방에 분산배치, 박 과장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감기 때문에 귀찮게 해드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제 2일(금) 멕시코 - 데킬라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2시 반. 같이 자는 사람이 깰까봐 말똥말똥 뜬눈으로 누워서 한 시간쯤 보냈다. 시차를 적응하려면 며칠 걸릴텐데... 박 과장도 잠이 깬 것 같아서 로비에 내려가 집에 전화를 했다. 서울은 저녁 7시. 마누라랑 아이들이 내 감기 때문에 걱정해준다. 가슴이 찡해온다. 집 떠나서 몸 아프면 이렇게 마음이 여려지는구나...
아침식사 때 전화불편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대부분 외국을 많이 다녀보지 않았는지 한국으로 전화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내 전화카드를 빌려줄까 생각도 했으나 요금이 걱정되어 박 과장에게만 카드를 주어 전화를 하게 해주었다.

오전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점심은 멕시코 민속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뷔페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식사도중 테이블 중간 공터에서 민속춤 공연도 한다. 음식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듯 다들 먹지를 못한다.

세계 최대의 피라밋이 멕시코에 있단다.
태양의 신전이 그 중에 가장 크단다.
사각뿔 모양은 이집트의 피라밋과 같으나 이집트에서는 무덤으로 만들어 졌으나 여기의 것은 태양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전으로 태양에 가능한 가까이 가기 위해 높게 만들어 졌으며 가운데 계단도 있다. 높이가 68m(원래는 71m였으나 풍우에 깎여 나가 낮아 졌다함)이며 물론 스핑크스는 없다. 우측으로 규모는 작으나 비슷한 모양을 한 '달의 신전'이 있고 달의 신전에서부터 시작하여 태양의 신전 앞을 지나는 길이 춘분날 태양의 궤적과 일치한다고 한다. 멕시코에 이런 신전이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민속품 판매장을 들러 멕시코하면 떠오르는 술 데킬라(tequila) 주조과정을 구경하고 시음했다. 데킬라 마시는 방법이 특이하다. 볶은 소금 같은 것을 왼쪽 엄지손가락 쪽 손등에 올려놓고 술 한 모금 마시고 손등의 소금을 빨아먹는다. 안주는 푸른색의 새끼 오렌지가 가장 좋단다.

멕시코에서 유명한 몇 가지.
  마게이 - 데킬라와 뿔께의 재료로 쓰는 선인장의 일종
  뿔게 - 마게이로 만든 술로 도수가 낮으며 막걸리에 물 탄 것처럼 생긴 술
  녹발 - 알로에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피부등 여러 방면에 약효가 탁월한 선인장의 일종

저녁식사 후 자유시간. 일행 몇 명과 어울려 악사의 거리로 유명한 가리발디 광장으로 향했다. 멕시코 전통의상이나 군복같은 공연복에 하나같이 챙이 넓은 멕시코식 모자를 쓰고 광장에 모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개 부부나 연인들이 이들의 고객으로 20$ 정도를 주면 한 팀이 그들만을 위해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무드를 잡아준다.
악사의 거리 바로 옆의 클럽. GUADALAJARA de Noche-과달라자라(멕시코 지방의 지명)의 밤.
멕시코식 나이트클럽인 셈이다. 데킬라(Tequila)를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다. 어떤 음악이 나오니 플로어의 모든 손님들이 똑같은 스텝으로 포크댄스 같은 춤을 춘다.(허슬인 것 같다) 여기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스텝인 모양이다. 저쪽에 한국인 아줌마 하나가(나중에 알고 보니 LA 교민이었다) 스텝도 모르면서 플로어에 올라가 막춤을 추며 전체 모양새를 망쳐놓고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춤과 노래의 공연이 이어져 제법 볼만하다. 부담이 적지 않았으나(1인당 50US$) 즐거운 시간이었다.
12시쯤 호텔에 도착. 내일은 페루의 리마로 출발해야 한다.

제 3일(토) 멕시코 - 국립박물관

아침 식사 때 만난 모두들의 표정이 밝다. 어제 밤 클럽에서의 일이 재미있었다고... 나 역시 어제에 비해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 과장은 어제 좀 과음한 듯 해장국을 찾는다. 곰탕국물 비슷한 스프를 발견하고는 즐거워한다. 오늘도 꽤 힘든 일정이 될 듯하다.

멕시코 국립박물관.
올림픽공원만큼 큰 공원의 한 섹터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멕시코에서는 자칭 세계 3대 박물관이라 한단다. 박물관 안쪽 전시실로 둘러싸인 큰 마당에 기둥 하나로 3000평 가량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기둥하나로 이 큰 지붕을 받치고도 비바람에 끄떡 않는 현대건축의 불가사의라고들 한다나... 구조물 지붕주위에 건물들을  바짝 붙여 배치시켜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해놓고는 불가사의라니. 누가 봐도 웃겠다.
전시물의 대부분이 아즈텍, 마야 문명에 대한 것이다.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박물관이 크긴 크다. 다리가 아프다. 가이드 말로는 멕시코의 쿤칸 지방이 세계적 휴양지로 유명하단다. 멕시코시티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단다. 거기를 가볼 수 있었으면...
멕시코를 기념할 만한 선물로 살만한 것들이 없다. 조잡한 은제 팔지, 목걸이 밖에... 박물관 기념품점에서 멕시코 소개책자를 하나 샀다. 대부분 사진들로 채워져 있는데 인쇄상태가 북한수준정도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들러서 멕시코 국기 문양이 있는 열쇠고리 2개를 샀다. 보경이가 부탁했던 건데 좋아할까?

3시 공항 도착. 5시에 페루 행 비행기를 탈 거란다.  공항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일행 중 한 명이 공항면세점에서 올림프스 자동카메라를 샀다고 자랑한다.(300$) 국내에서 사는 것보다 싸지 않은 것 같다. P실장은 금박으로 새겨 붙인 성모액자를 사고는 이렇게 화려한 성모상이 어디 있냐고 여러 사람에게 자랑한다. 내가 보기에는 조잡해 보이는데...
다들 시간만 나면 가게로 뛰어들어 물건 사는데 열중이다. 질도 좋지 않고 가격도 우리나라보다 비싸다고 이야기해줘도 무작정 사댄다. 나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하다. 세대차일까?  
총무가 가이드 팁이나 술값 등 공통경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고 걱정한다.

페루 리마 행 5시 출발 AM070편 5시간 40분 소요예정. 만만찮은 거리다.
멕시코시티 공항의 boarding pass에 표기된 gate번호는 탑승게이트가 아니라 탑승게이트를 최종 확인하는 장소란다. 공항시스템의 문제로 탑승게이트가 너무 자주 바뀌어 그렇게 됐단다. 우리도 19번 게이트에 가서 4시 40분 경 24번 게이트로 확정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리로 가야 했다. 이런 사실도 모르는 외국인이 말도 안 통하는 경우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럽 어느 도시에선 가도 그랬던 것 같다.
기내에 손님이 별로 없어 의자 3개의 팔걸이를 올리고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밤 10시 40분 페루시간 11시 40분 리마 도착.
페루는 우리나라 60-70년대를 생각하면 된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거리에 여자들이 도열해 있다. 창녀들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일제단속을 하는데도 그때 뿐 금방 다시 나와 있단다. 정부에서도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있는 터라 심하게 단속할 수가 없단다. 심한 빈부격차가 이 나라의 큰 문제란다.
페루의 국토는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서부 해안지역 : 수도 리마를 중심으로 스페인계 백인이 많이 산다.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 : 잉카의 고도 쿠즈코가 중심 도시이며 옛부터 인디오족이 살던 곳이다.
 동부 밀림지역 : 아마존 상류지역으로 아마존 원주민이 대부분이다.
내일 우리가 가게될 말도나도(Maldonado)는 아마존 상류의 밀림지대로 관광지로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인으로는 우리가 첫 번째 단체 관광객이란다.
내일은 5시 40분에 말도나도 행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새벽부터 설쳐야 한다.

제 4일(일) 페루 말도나도 - 아마존의 폭우

4시 반에야 wake up call이 울렸다.
서둘러 준비하여 식당으로 내려가니 식사시간이 3분밖에 없단다. 밀림지역이라 더울 것으로 예상하고 반바지를 입고 내려왔는데 반바지차림은 나 혼자...  급하게 한쪽 구석에 가서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5시 40분 비행기를 6시에 탔다. 여기서는 3-40분 늦는 게 예사라 탈 수 있었다.
Aero Continente, 100% 페루 자본이라고 비행기 밖에 써놓았다. 기종은 보잉727, 우리나라나 유럽 국내선에도 흔히 있는 기종이나 매우 낡았다. 후지모리의 선거공약 때문에 억지춘향으로 만든 항공사란다.
지정좌석이 없다. 앞쪽의 business class는 구분을 하지만 일반석은 먼저 탄 사람이 장땡이다. 손님이 많으면 입석도 태운단다. 기내에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난다. 승무원이 연신 방향제를 뿌리고 다닌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는 중인데도 승무원이 복도를 후다닥 뛰어 다닌다.
옆자리의 아가씨(아줌마인지도 모른다)가 우리네 30년 전 시골 아가씨를 연상케 한다. 꺼칠한 피부에, 염색이 불량한 노란 원피스, 입술 루즈가 볼까지 번져 있다. 거울을 안보고 화장을 했나보다.
중간 기착지인 쿠즈코에 착륙했다. 여기는 말도나도를 갔다가 다시 올 거란다. 앞 쪽 bussiness석에 앉은 P실장 등 어르신 세분이 벌써 내렸단다. 가이드가 뒤쫓아가서 데려왔다. 고지대인 듯 숨이 막힌다.

손님을 갈아 태우고 한시간 가량을 더가서 목적지인 말도나도공항에 도착.
정말 시골 공항이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말고는 공항에 비행기가 한 대도 없다. 공항 활주로에 개 두 마리가 한가로이 데이트하고 있다. 하루에 비행기 두 대가 왔다가는 것이 모두란다. 공항직원의 하루업무는 그걸로 끝이어서 남는 시간에 여행사 일을 겸업하는 사람이 많단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가 사람과 짐을 다시 싣고 출발하고 난 뒤에야 우리 짐을 풀어준다. 공항 주변에 건물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질 않는다.
공항을 출발해 호텔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말도나도시의 풍경은 영화에서 보던 베트남의 시골마을을 연상케 한다. 이 곳은 페루 내륙 밀림지역의 대표적인 도시로 주민들의 생김새는 TV에서 자주 보던 아마존강 원주민 그대로다. 얼굴이 가슴에 붙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목이 짧은 게 특징이며, 얼굴은 무척 순박해 보인다. 밀림 깊은 곳을 가면 아직도 원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단다. 거리에 오토바이는 많이 보이나 자동차는 별로 없다.
L의장이 가로수에 누렇게 익은 야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걸 보고 아는 체 하다 야자가 아니라 코코넛이라는 가이드 말에 머쓱해진다.

호텔(Don Carlos Puerito Maldonado).
예약이 되어 있지도 않다. 원래 밀림 속의 lodge(오두막집, 하숙)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으나 이 호텔에서 묵기로 계획을 변경했단다.
호텔건물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집처럼 생겼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일시에 투숙한 적이 별로 없었던 듯 창고에서 침대를 꺼내와 조립하느라 법석이다. 뒤뜰에는 수영장도 있고 그 옆에 이곳의 상징인 색깔이 화려한 앵무새 2마리가 묶여 있다.

여장을 풀고 lodge로 출발.
아마존강변 선착장에서 모터가 달린 카누를 탔다. 배 주인이 멀리 하늘을 가리키며 우리가 가야할 곳에 비가 많이 오고 있으니 갈건 지 말건 지 결정하란다. 정말 멀리 넓은 강 하늘에 커다란 구름덩이가 모여있고 그 아래가 뿌옇게 보인다. 비 온다고 안 갈 수야 없지. 배 지붕에서 비닐 차양을 내리고 출발.
30분 가량 가다 간이정박시설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밀림 속으로 난 길을 폭우를 맞으며 40분간 걸어서 또 다른 선착장에 도착.
밀림은 영화나 TV에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인지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목을 완전히 뒤로 꺾어야 끝이 보일 만큼 높게 치솟아 있고 나무들 사이는 굵은 넝쿨들이 이 나무 저 나무를 건너다니며 얽혀서 공간을 메우고 있다. 바닥은 비 때문인지 몰라도 온통 늪인 것처럼 보인다. 길은 그런 대로 잘 나 있으나 하늘에서 보면 키 큰 나무에 가려 보이질 않을 것 같다. 관광객을 위해 인력거가 있긴 한데 지금은 비가 많이 와서 들어가 버렸을 거란다.
여기서 다시 무동력 카누로 노를 저으며 20분쯤 더 가야 한단다.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일행 중에 불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민의원은 사타구니가 쓰리다고 하소연한다. 젖은 바지를 입고 걸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군대서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내가 가지고 온 연고제를 주겠다고 하였다.

Lodge. 밀림 속의 호텔인 셈이다.
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짚으로 벽과 지붕을 얹은 것으로 내부에는 흙바닥에 식탁 몇 개 뿐 아무것도 없다. 손님을 받기 위해 일부러 크게 지었는지 열대지역 가옥치고는 꽤 크다. 우리 일행을 위하여 식사준비를 한단다. 원래는 여기서 1박하기로 했으나 잠자리가 불편하고 모기가 너무 많아 제대로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변경한 거란다.
아이들이 우리 같은 손님에 익숙한 듯 거리감 없이 다가온다. 집과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
아마존강의 전체 길이(5천 몇 백km)중 60% 정도가 페루에 있다고 한다. 지역마다 동식물의 서식형태가 달라서 무엇을 보고싶으냐에 따라 행선지를 정해야 한단다. 제대로 된 밀림의 맛을 보려면 거기서 배를 타고 7시간쯤 더 가야 한단다.

식사. 닭고기와 밥. 고기는 무척 짜지만 다른 냄새나는 양념이 없어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밥은 역시 풀기가 없는 안남미. 다들 시장했는지 고기를 더 달라고 한다.
낚시를 하고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으나 몇몇 의원이 빨리 가자고 성화를 부린다. 이곳까지 와서 밥만 먹고 가쟌 말이냐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절충안으로 오는 길에 카누 위에서 잠시 낚시를 했다. 손바닥만한 고기 열댓 마리를 낚았다. 낚시가 잘되는 포인트로 가면 3kg 이상인 놈이 수두룩하다는데...
이왕 고생해서 온 것 제대로 된 낚시 좀하고 가면 좋을걸...

다시 선착장.
선착장 공터에서 택시기사들이 격렬하게 싸운다. 타지역에서 온 택시가 여기서 손님을 태우다 시비가 붙은 것 같다. 얼굴에서 피가 터지고 옷이 다 찢겨졌다. 못 배우고 순박한 사람이 싸우면 또 저렇게 싸우는구나...
택시라는 것이 오토바이에 수레를 달고 지붕을 올린 것으로 방콕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하다.

호텔에서의 저녁.
오랜만의 진수성찬이다. 달랑무김치, 고추장, 멸치볶음... 밥도 가져온 압력밥솥으로 했다. 호텔에 주문한 건 steak 뿐 이였다. 고기가 연하다. 가지고 온 팩소주도 곁들였다.
이 과장은 식사 중에 마신 술 탓인지 방으로 가다 옷을 입은 채 수영장에 빠졌다. 밤하늘의 별을 보다 헛디뎠다나... 그래, 구름이 걷히니 하늘의 별이 정말 초롱초롱하다.
비를 맞아 흙탕이 된 옷가지가 문제다. 호텔에는 세탁소가 없고 마을의 세탁소도 지금 시간에는 모두 문을 닫았을 거란다. 그냥 싸 가지고 갈 수밖에...
시내의 술집으로 갔다. 가로등 없는 거리가 칠흙같은 어둠에 덮여있다. 술집은 바닥이 흙으로 되어있으나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스트립 쇼도 한다. 아가씨들을 불렀다. 길거리에서 보았던 여자아이들과 달리 피부도 희고 미모도 꽤 괜찮다. 서부 해안지역에서 원정 온 스페인계란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으면서도 외국인 손님이 재미있는 듯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조명이 너무 어둡다.
호텔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바깥이 어수선하다. 누군가 술집의 아가씨를 데리고 온 것 같다. P실장과 L의장이란다. 못난 사람들... 여기까지 와서 하는 짓들이라니... 이 동네는 AIDS가 없나?

제 5일(월) 페루 우르밤바 - El Condo Pasa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빵과 음료수만 준다. 계란 스크램블이나 베이컨 따위는 아예 준비가 안 된단다.
P실장이 코코넛 2개를 가져와서 빨대를 꽂아 속의 물을 먹고 있다. 먹어 보란다. 별맛은 아니다. 동네 길가나 집 울타리 안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코코넛이다. 아침 산책하면서 마을 노인에게 10$ 주고 따달라 해서 가져온 것이란다. 가이드가 그렇게 큰돈을 쉽게 줄 버릇하면 앞으로 올 관광객이 피곤해 지고 한국사람 이미지만 버린다고 핀잔을 준다. P실장이 수긍한다.
오늘은 페루의 고산지대로 이동하여 잉카제국의 유적을 보게 된단다.

쿠즈코 행 기내.
우리나라 속초행 비행기 같은 프로펠러 비행기로 좌석의 열이 잘 맞지 않아 들쑥날쑥이다. 인디오 할머니 등 행색으로 보아 비행기를 타기 어려운 처지인 것 같은 사람도 여럿 보인다. 육로가 너무 멀고 험하여 비행기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듯하다.
쿠즈코 공항.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가는 동안 별스럽게 경비가 엄하다 싶더니 에쿠아도르 대통령 일행이 방금 이곳에 도착했단다. 모양새로 봐서 공식적인 방문은 아닌 것 같다. 군장성으로 보이는 몇 명과 수행원 몇 몇, 미모에 키가 작고 젊은 여자는 대통령 부인인 것 같다. 간호사가 준비돼 있고 큰 쟁반에 종이컵으로 차를 대접하는 정도의 예우를 한다. 옆에 서있던 우리 일행에게도 차를 권한다. 공항대합실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는 품이 이들을 모시고 갈 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군부에 쿠데타 움직임이 있어 잠시 피신해온 게 아닐까 하는 게 가이드의 짐작이다.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들이어서 이국에서 온 우리가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니 행운이라고나 할까... 대통령이라는 사람과 나란히 서 봤다는 게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주 숨이 가빠온다. 여기는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로 해발 3400m란다. 고도적응을 위해 오늘밤은 해발 2700m정도 되는 우르밤바에 가서 1박 할 예정이란다. 이곳에서는 물을 끓여도 85℃정도에서 끓기 때문에 쌀을 익힐 수가 없어 이곳 사람들은 쌀을 프라이팬에 볶아서 먹는단다.

쿠즈코에서 처음 간 곳은 태양의 신전.
멕시코에서도 같은 이름의 신전이 있었는데 여기는 성당 건물이다. 이전에 이곳은 신전이자 궁터였으나 스페인이 점령한 뒤 잉카인의 정신말살을 위해 신전을 헐고 성당을 지어 버렸단다. 쿠즈코 유적지 주변의 크고 화려한 건물은 모두 유럽풍의 성당이다. 대성전을 포함해서 여기의 성당들은 모두 스페인 점령이후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란다.
잉카유적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놀라운 석조기술이다. 옛 궁궐이나 귀족의 저택, 요새 등의 벽은 크기가 의자만 한 것에서부터 사무용 책상만 한 돌로 되어 있는데 모두가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돌과 돌 사이에 면도날 한 장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끼워 맞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돌의 표면에 '표범의 발톱'이라 하여 일부 돌출부위를 남겨둔 채 연마되어 있는 것이 어떻게 가공하였는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한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잉카제국의 신비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50년 대지진으로 신전이 허물어져 복구를 시도했으나 이전 모양대로 돌을 끼워 맞출 수 없었단다. 그래서 할 수없이 돌과 돌 사이에 접착제를 넣어 쌓았다. 이 때문에 남은 돌을 뒷마당 한쪽에 쌓아 두고 있었다. 여기에 사용한 돌은 600m 아래에 있는 우르밤바에서 옮겨 온 것이란다. 대단한 役事가 아닐 수 없었겠다.
신전 입구에 원주민이 전통복장을 하고 기념품을 팔고 있다. 이들과 사진을 같이 찍으면 돈을 달라 한다. 이곳 원주민인 인디오 족들은 키가 매우 작고 피부가 까만 것이 흑인이 검은 것과는 달라 보인다. 이곳은 물이 귀하여 전통적으로 몸을 씻지 않는 것이 이곳의 문화로 정착되어 있어 그렇다는 설명이다. 며칠 간 부지런히 씻으면 우리만큼 하얘진단다. 인류학자들은 이들 인디오의 인류학적 뿌리가 한국인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가이드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은 태권도 사범으로 페루의 육군 중령 계급을 받고 10년 전 이 곳으로 왔단다. 그 정도의 지위면 여기서도 중상류 층에 속한다고 한다. 이 사람 집에 가정부로 인디오 여자아이를 데려왔는데 통 씻지를 않아서 3일 간 아침저녁으로 강제로 목욕을 시켰더니 우리나라사람하고 구별이 안될 만큼 뽀얘졌단다. 앞으로는 매일 세수를 해야한다고 했더니 목욕탕에 들어가서도 씻지 않고 울기를 며칠 하더니 보따리 싸서 나가버렸다 한다. 문화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시내에 유럽풍의 크고 화려한 건축물인 대성전이 있고 주변은 오래된 건물로 이어진 상가가 있다.
이 동네의 한 이태리식 식당에서 점심.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서울서 가져온 압력밥솥으로 밥을 해서 가이드가 준비해온 김치와 함께 점심식사. 모두들 김치를 아껴 먹느라 나이프로 잘게 썰어서 먹다보니 오히려 남았다. 주인과 주방장이 압력밥솥으로 한 찰기있는 밥이 신기한 듯 얻어먹어 본다. 이 사람들 압력밥솥을 처음 본 듯하다.

버스를 타고 고도를 좀더 높여간다.
삭사이와만 요새. 해발 3700m정도.
숨이 더 가빠온다. 조금 빨리 걷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현기증이 온다. 가이드가 절대 뛰지 말라고 충고한다. 폐활량이 적은 사람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다.
산중의 분지에 돌로 쌓은 4∼5m 정도 높이의 성곽이다. 여기서도 잉카의 놀라운 석조기술을 볼 수 있었고 이런 곳까지 피해와서 요새를 쌓아야 했던 잉카제국의 말로에 대한 감회가 우리네 강화도나 남한산성에서 느끼던 바와 별다르지 않다.
한쪽 옆에 알파카라고 하는 동물을 키우고 있다. 알파카는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낙타의 일종으로 야마와 함께 안데스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지역 특유의 동물이란다. 털이 길고 부드러워 옷감으로 양모를 능가한단다.  알파카는 야마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야마보다 목이 더 굵고 덩치가 좀더 크단다. 야마는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안데스산맥 고산지대에 산단다.
내려오는 길에 원주민들의 좌판 가게에서 알파카털로 짠 스웨터를 사 입었다. 고산지대라 약간 추위를 느끼고 있던 터라 안성마춤이었다. 양모로 만든 울 스웨터 못지 않게 따뜻하다. 60$를 달라는 것을 20$에 샀다. 입고 버스로 돌아오니 모두들 잘 어울린다고 한마디씩 한다. 내가 입은 걸 보고 여러 명이 사러 나가더니 같은 옷을 10$에 사왔다.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있나.... 어이가 없다. 그 후로부터 알파카 싸게 사기 경쟁이 붙었으나 10$ 이하로는 사기 어려웠다.

버스로 숙소가 있는 우르밤바로 출발.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우람하게 솟은 산들의 꼭대기까지 밭이 일구어져 있다. 해발 4000m는 족히 될만한 산들이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이곳 사람이 그런 고산지대에 밭을 갈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집에서 1000m이상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봄에 한두 달 간 집을 떠나 씨뿌려놓고 가을에 다시 가서 한두 달간 머물면서 수확해 오는데 이때 필수적으로 준비해 가는 것이 감자나 옥수수와 알파카란다. 감자와 옥수수는 이곳 사람들의 주식이고 알파카는 젖을 짜서 먹기도 하고 밤에 잘 때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끌어안고 잔단다. 밭이 없는 곳도 잔디같은 푸른색만 보일 뿐 나무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산사태가 자주 난단다. 산 경사면에 그 동네 지명을 크게 새겨 놓은 것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나고 마을 외곽에 그림같이 지어 놓은 별장식 호텔(Best Western)이 우리가 머물 곳이다. 노르웨이 사람이 경영하는 것이란다. 식당이나 로비 등이 유럽풍으로 잘 꾸며져 있다. 주변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만년설을 머금고 있는 산도 보인다. 만년설은 해발 4800m 이상이라야 있단다.
가이드가 솜씨를 발휘하여 저녁으로 미역국과 된장찌개를 끓여 냈다. 미역국의 맛이 일품이여서 된장찌개가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가이드는 된장찌개에 더 큰 정성을 쏟았는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식사동안 2명의 젊은 악사가 산뽀니아와 팬프룻을 연주한다. 산뽀니아는 여기 와서 처음 보는 악기다. 소리를 내는 원리는 팬프룻과 마찬가지이나 팬프룻은 가는 대나무관을 일렬로 붙여놓은 반면 산뽀니아는 좀더 굵은 대나무관을 2열로 끈으로 묶어 놨다. 음색은 팬프룻보다 부드럽고 낮은 음이 난다.
젊은 악사의 연주실력이 대단한 것 같다. El condo pasa, Let it be 등 귀에 익은 노래가 많다. 애잔한 선율에 마음을 싣고 땅거미가 내리고있는 창문 밖 광경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적함과 편안함이다.
연주가 끝난 뒤 자기들의 연주가 담긴 CD를 팔아 달라고 한다. 하나에 10$씩 이란다. 가이드가 한국에 가서 연주활동을 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 항공 및 숙식 제공에 월 800$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솔깃한 이야기인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한참동안 숙덕거린다. 자기네들끼리 의견이 엇갈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같은 방의 박 과장이 감기기운이 있는 듯하다. 가이드가 소주에 레몬즙을 타주며 마셔보란다. 박 과장이 인상을 써가면서 한잔을 모두 마셨다. 나도 감기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 다니는 것 같다. 밤이 되자 고산지대의 싸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알파카 스웨터를 사기를 정말 잘했다. 난방시설은 있으나 하절기라 가동을 않는 것 같다.
내일은 잉카 최고의 유적지인 맞추피추를 간다는데...
스산한 한기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계속...(2편이 좀더 재미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