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5년 만에 가곡 독창회 여는 엄정행 선배님(6월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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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창환(47) [ chsong04270@hanmail.net ] |
작성일 | 2008-05-09 |
6월8일 예술의 전당에서 가곡 독창회를 여십니다.
지난 5월3일 신경조 선배님 장남 결혼식 때 뵈옵고 알게되었습니다.
많이 참석 말씀하셨으며 덧붙어 부담갖지말고 오셔서 자릴 빛내주시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61회 김창환 테너에게 연락하면 티켓은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함 더 축하의 인사를 올리고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송창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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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창회를 여는 테너 엄정행씨. 그는“학창 시절에 배구선수가 되려고 했는데 경기 규칙이 9인제에서 6인제로 바뀌는 바람에 내 인생도 따라서 달라졌다”며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한국 가곡의 대명사'로 불려온 엄씨가 다음달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15년 만에 가곡 독창회를 연다. 1968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첫 독창회를 가진 이후 데뷔 40년을 기념하는 무대다. 〈목련화〉 〈그네〉 〈봄처녀〉 〈보리밭〉 〈비목〉 〈청산에 살리라〉 등 대표적인 우리 가곡으로 꾸민다.
엄씨는 "그동안 가곡의 멋을 온전히 전달해주는 무대는 줄어들고, 대신 대중 가요와 함께 부르는 공연이 많아져서 속으로는 무척 안타까웠다. 매주 2~3차례씩 피아니스트와 함께 맹렬히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씨는 본격적으로는 고교 3학년 때 노래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중학생 때부터 학교 배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배구로 대학 진학할 생각이었어요. 5년간 오전 수업 끝나면 운동만 했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교 3학년에 올라가던 해에 배구 규칙이 9인제에서 6인제로 바뀌더군요. 당시 제 키가 1m73 정도 됐는데 배구 선수로는 작은 편이었어요. 결국 그만둬야 했죠."
당시 고교 음악 교사이자 테너였던 아버지는 낙심하던 아들에게 성악을 권유했다. 엄씨는 "전깃불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동네였지만 아버지 덕에 어릴 적부터 축음기를 통해 슈베르트와 베토벤만을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 성악 레슨 한 번 받지 못했던 엄정행에게 어려움이 없을 리 없었다. "원서를 쓰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어는 물론 불어·독일어도 몰랐고, 심지어 오페라 《토스카》가 뭔지도 모른 채 시험 보러 갔죠."
경희대 음대에 진학한 뒤에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은사 홍진표 교수는 "너는 악기인 목소리가 좋다. 그거면 됐다"는 격려가 있었다.
"스스로 속상했죠. 모자람이 많았기에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했어요." 그는 "외국 실정을 몰랐기에 오히려 우리 가곡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한국 가곡'이라면 곧바로 그의 이름 석자를 떠올릴 정도로 엄씨는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1981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열린 그의 독창회는 티켓 가격이 당시로선 고가(高價)인 8000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권이 모두 동났다. 당시 보통 입장료가 3000~5000원 하던 시절이었다.
1968년 명동 예술극장에서 첫 독창회를 연 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그는 "청계천 복개 공사하던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포스터를 붙이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노래하는 것보다 공연 준비하는 게 더 힘들어서 밥 먹는 것도 꼭 돌 씹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5년 만에 다시 독창회 무대에 서려니 그 당시 긴장했던 마음이 되살아납니다."
엄씨는 다시 떨리는 마음이다. "예전에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우리 가곡이 위기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관객들에게 정감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가곡 전문 성악가들이 더욱 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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