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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님이 되신 박현태(28)선배님 근항
글쓴이 지종학(39) [ gcinet@kbs.co.kr ]
작성일 2004-04-24
우리는 지난해 10월 돌연 머리를 깎고 산으로 가신 한 선배님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연스님이 되신 박현태(28)선배님의 근항이 궁금해서 수소문 끝에 뵈었습니다. 궁금하신분들이 있을것같아 취재원고를 그대로 수록합니다. 신문용으로 줄여쓴 원고이며 보다더 근항이 궁금하신분은 월간지(경제풍월 5월호)원고를 그대로 제 홈페이지( www.gcinet.co.kr )의 G카페의 '아트&사람들'란에 수록되어있으니 방문해주세요. 지나시는 길에 절과 나란히 대형야외미술관(모란미술관)도 있으니 자녀분들 손잡고 한번쯤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경춘가도 마석 지나자마자 모란공원안에 있는 백련사입니다.(사진은 갤러리에)----------
* 지종학 이 만난 영원한 자유인 박현태 *                          
                 “인간은 누구나 자유인이죠.”
              -뜨겁게 살아온 인생, 산으로 간 진짜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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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스님 박현태
/1952. 부산 동래고 /56.서울대 법대 /77. 서울대 대학원 신문학과 졸업 /87. 법학박사(한양대) /56. 한국일보 기자 /58. 동아일보 기자 /65. 한국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69. 대한일보 정치부장 /73.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장 /77.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 /80.한국일보 논설위원 /81.11대 국회의원 /84. 문화공보부 차관 /85. KBS한국방송공사 사장 /85. 국제방송협회(IBS) 회장 /86. 언론회관 이사장 /89. 수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92. 수원대 법정대학장 /98. 동명정보대 총장 /03.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서 태고종 수계 /04. 경기 남양주시 백련사 주지(현)
[저서]“하이에나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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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글/ 池鍾學 (교수, 작가) : www.gc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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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쫓겨날 일도, 부도날 일도 없으니 얼마나 편안해요!“

“다 버리고 빈손으로 산에 왔는데 사진은 무슨 사진.....!”
이른바 왕년과 관련된 기사나 사진 등 기초적인 자료가 있느냐는 질문에 ‘허! 허!’ 웃음만 짓는다. 꽃샘추위가 옷깃을 스미는 날 찾아간 절은 진흙투성이의 마당에 목재와 기왓장 등 각종 건축기자재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한적한 절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막 신축중인 절의 공사판 모습에 흙투성이 신발과 점퍼차림의 박현태 전 KBS 사장은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기 보다는 함께 일하는 인부중의 한 사람일뿐이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빛아래 .....’ 마이크만 잡으면 5곡은 불러야 속이 후련했던 옛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다. ‘이렇게 좋은걸 왜 이제야 찾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이는 허름한 모습의 새로운 이름은 백련사 ‘지연’스님 자체이다.  ‘그래도 KBS의 장수프로인 ‘가요무대’는 내 작품이야‘라며 회상에 젖은 채 어려서부터 문뜩문뜩 스님들의 온화한 모습이 떠올려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운명론이다.  “사람도, 돈도,....모든 것의 끝은 종교야!”라는 게 절에 들어오게 된 과정이란다. 언론계의 수장에서 정치가로, 행정가로, 대학교수와 총장직을 통해 학계에서 펼치던 명성도 결국은 이 길이었다는 대목이 ‘산으로 간 까닭’이다.
(4명의 딸들을 모두 독립시킨 후 자신으로 인해 이뤄진 주변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 특히 남을 위해 나머지 인생을 설계했을 때 떠오른 모습이 ‘산’이었다는 결론이다. 속세의 위선과 거짓, 허영의 끝은 너무나 허망하다는 감정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의 인생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지난 세월은 오늘을 살기위한 예비과정이었다’는 말이 엄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업가는 부도나면 안 되니까 열심이듯이, 초년병 시절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면서 쫓겨나면 안 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한 것 아니냐고 덧붙인다.  젊은 시절 스님에 대한 평가는 ‘불같은 추진력’ ‘정의감이 불타는...’으로 간단하다.   당시 한국일보 편집부장과 정치부장으로 고락을 같이한 ‘굿데이’신문의 이상우 회장은 한마디로 “통이 큰 사람!”이라고 회고한다. 그때 부당한 기사 취급문제로 윗사람과 논쟁 끝에 소신을 지켜낸 ‘소동’이 있었으며, 정계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집권당 실세인 이(李)모 씨의 부당한 압력이 있자 한마디로 ‘작살낸’ 사건에선 통쾌함까지 있었다고 소개한다.  지금은 국제적으로도 격동기인 만큼 변동이 심할 것이라는 정세분석에 이어 그럴수록 ‘독립’이 아닌 상호협력의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왜 인식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한 답변이다.  그러면서 진흙투성이에서 서로 엉켜 싸우고 있는 요즘의 정치판은 인간의 기본마저 상실한 인성 파괴의 현장이라며 애써 정치적인 질문을 피한다.  ‘진정한 조화와 상생, 화합이 빠진 허수아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파면당할 일도 없고 부도날 재산도 없으니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으며 지금까지의 삶이 나름대로 기여해왔다고 본다면 이젠 남을 위해 봉사할 때를 찾았다는 것이다.  속세에선 물질적인 풍요를 얻겠지만 인간의 마음은 더없이 가난하고 불안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소리가 없어도 들어야하고, 보이지 않아도 보여야.’
(정확히 7개월 전인 지난 해 10월. 출가를 결심하고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수계식을 끝내고 올라오던 날 정읍과 장성 간에 있는 전남, 북의 경계마을인 갈재를 지날 때였다.  계절에 맞지 않게 차창에 비친 산등성이의 조그마한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무지개를 발견했다. 그 순간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불교 태고종의 예비승려 교육과정인 ‘합동 득도 수계 산림’에 참가하면서 매일 108배와 1보1배 등의 수련과정을 거친 후 받게 된 수계(戒)가 먼일 같다는 생각이었다. (‘주변에 80세가 넘어서도 활기 있게 사는 분들이 많잖아요.’라며 말을 잇는 스님은 다행히 아직 건강은 좋으니 거창한 봉사활동보다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하면서 영원한 ‘절 지킴이’가 될 것을 강조한다.)   ‘지연(志淵)’이란 법명은 어린시절 모교인 부산 동래중학교의 교사였던 한학자이며 퇴계의 후손인 이가원(전 연세대 교수)스승이 지어준 아호이다.
‘깊은 백성이 되라’라는 뜻이 담긴 스승의 호 ‘연민(淵民)’에서 ‘연’자를 따왔다. ‘뜻이 깊다’는 의미이니 뜻이 깊게 살겠다는 각오이다.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은 글자 앞뒤가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님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은 출가이나, 가정문제, 사회적인 문제, 개인사정에 따라 집을 뛰쳐나가는 행위는 가출이다. 보다 높은 이상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행위인데 비해  도피나 쾌락을 위해 몸을 던지는 행위의 차이는 엄청나다.
세속의 먼지를 벗어난다는 큰 의미가 내포돼있다. (“이 나이에 속세의 명리를 버리고 고행을 한다든지 하는 거창한 목표나 계획을 갖고 출가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는 게 출가의 변이다.) 스님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불자의 도리로 2년여 동안 열심히 염불을 하다보니 제법 흉내는 냈었다면서 미소 짖는다.  해인사 행자실을 찾는 이가 한해 300여명에 이르나 정작 스님이 되는 것은 30명쯤 된다는 설명이 득도 과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고 보면 분명 대단한 결심임엔 틀림없다. “지식은 장신구이며, 학벌은 삶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 어느 대학동문 스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제 봉사하고 공부하면서 불도에 정진하는 게 전부란다.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임시 종무소 옆에 있는 연못에서는 개구리들의 소리가 계속 초여름을 재촉하는 듯하자 스님은 ‘청어, 시어’의 뜻을 아느냐고 묻는다.  청어(聽語)는 ‘무성(無聲)’이며, 시어(視語)는 무형(無形)으로서 ‘소리가 없어도 듣는 것이 청어이고, 형태가 없어도 보이는 게 시어’라는 해석이 왜 이렇게도 어렵게 느껴지는지....  ‘시대를 살아가려면 역사적 안목이 있어야 하나,’ 잘살고 못살고의 실체는 ‘자신’에 있다는 결론이다.
‘자가용 타고 다니며 가난한 생각이 드는 게 요즘 세상’이라며 ‘서양에서 부자를 도둑 취급하는 거 봤느냐’고 되묻는다.  막스 베버의 사회학을 기초로 한 프로테스탄트 적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결여를 꼬집는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부모란, 죽어가면서도 자식에게 까지는 유산을 준비해줬는데 더 큰 걱정은 손자들까지 못해준 것이 걱정이라는 현실이 바로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이다. 자식 걱정하지 말고 ‘너, 자신이나 잘하라는 게 맞는 말’아니냐며 이것이 바로 ‘무시무종(無始無終)을 모르는 과욕이라고 강조한다.
‘염불과 ‘가요무대’론‘
‘염불이나 범패도 음악이죠.’  돌연 ‘염불의 음악론’을 제기한다.
염불은 간절한 목소리가 안고 있는 ‘애안성’이며 목탁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박자를 맞춰야하는 기본이 있다는 설명에서 이제는 ‘전문가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리듬과 원칙이 있으며 속세의 ‘시달림‘을 벗어나는 깊은 뜻이란다.  KBS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부분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록 사운드 일색으로 젊은 세대만을 위한 집중편성 때문에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가요무대‘를 생각했고, 흘러간 노래를 부활시켰음에 긍지를 느꼈는데 역시 염불도 듣는 이에 따라 그 가치가 있다는 공통점 이론이다.   기자가 KBS 파리 특파원 시절의 어느 날 돌연 ‘나, 박인데’하며 걸려온 전화는 모처럼 자리를 털고 나서 평생 처음으로 ‘와이프하고 젊은이들 틈에 끼어 배낭여행이란 걸 왔다’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떠날 때 떠나주어야 후배들도 살아갈 것 아니냐는 말은 후배와 경합을 벌여가면서 까지 자리를 차지하려는 태도야말로 욕심중의 욕심이라고 덧붙인다.
“책임지는 놈도 없고 남 탓만 하니 나라가 이 꼬라지 아니냐!”는 대목에선 조금 서운한 표정이다.   국회의 탄핵사태이후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것 역시 양보는커녕 내편 네 편 갈라놓고 ‘내편이 아니면 죽어야 된다.’는 사고가 오직 야수일 뿐인 인간의 탐욕과 가식이 원인이라고 해석한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어떤 색에 다른 색을 배합할 때 무슨 색이 나오는가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조화’이며 ‘화합’이고 제3의 색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작의 매력인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이로다’라는 말씀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진정한 ‘자유’는 ‘사랑’이 수반되어야한다(갈라디아 서 5장)는 성경 말씀이 있다.  불교에서는 자아를 버리고 선과 자비를 베풀 때 무아를 경험하며 그것이 바로 ‘해탈’임을 가르치고 있다.  70의 나이에 이제야 진정한 자유를 찾은 것 같다는 지연 스님의 새로운 ‘자유론’이다.  모처럼의 만남을 뒤로 하면서 한참 후배인 기자에게 보내는 아쉬운 눈길...  법명인 지연 스님의 뜻을 묻는 기자에게 “그냥 뜻이 깊다고 아까 말 했잖아요.”라며 두 손을 모으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담겨있다.
무엇이 한 인간을 이토록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지종학/전 스카이 KBS사장. 경남대 교수>
*사진-수계식을 마치고 정식 스님으로 탄생한 지연 스님의 모습에서 무한한 해탈의 경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지나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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