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버지의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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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대지(44) [ sps38@hanmail.net ] |
작성일 | 2014-06-28 |
"아버지의 이름으로"
방송일:2014-06-27
[아나운서 멘트]
얼마 전이 6·25 전쟁 발발 64주년이었죠. 당시 부친을 여의고 유복자로 태어나 매년 통일을 염원하는 활동을 펼치는 부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형식 기자입니다.
[기자 멘트]
'38선은 조국의 평화를 원한다'
38선 휴게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유대지, 이순필 부부.
동부전선 38선 기점에서부터 파주 임진각까지 평화 메시지를 달고 승용차로 한나절을 달렸습니다.
오후 늦게 현재 사는 분당에 도착한 부부. 검은 모자에는 전쟁반대와 아버지가 적혔습니다.
<인터뷰> 이순필 (64세) / 국가유공자 가족
"동부전선 양양 하광정 38석 경계석을 기점으로 양양, 한계령, 전적비나 38선 경계석이 있는 데서는 휴식도 조금씩 취하면서, 시내를 지날 때는 캠페인도 좀 하고..."
아내와 함께 20년 전부터 매년 38선을 횡단한다는 유대지 씨. 유 씨의 38선 횡단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유대지 (64) / 6·25전몰군경유족
"저희 아버지는 대한민국 경찰로 근무하시다가 1949년 3월에 빨치산과 교전 중에 장렬히 순국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습니다. 제가 38선을 오랫동안 횡단하게 된 이유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사무치기 때문에 이 행사를 하는 겁니다."
"사진 속 인물이 아버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가슴 속 부친은 고 유귀룡 경위로 1949년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로 근무 중 빨치산과 교전하다 순국했습니다.
그해 9월 유복자로 태어나 6·25전몰군경의 자녀로 살아온 유 씨는 마찬가지로 국가유공자 가문인 아내와 살다 전쟁 위기가 일던 1994년 걸어서 38선 횡단을 시작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유씨의 삶은 한 권의 책에 담겼습니다. 멸치 행상을 하던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키워 온 유씨.
걸어서, 자전거로, 승용차로 20년간 모두 84번 38선을 횡단했습니다.
특히 6·25 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은 2000년엔 북미대륙 38도선 4,000km를 자동차로 횡단했습니다.
<인터뷰> 유대지 (64) / 6·25전몰군경유족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시련을 줬습니다. 수많은 군인과 경찰, 국민들이 전쟁으로 희생됐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으로 국민들과 전후 세대에게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드리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이 행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순필 (64) / 국가유공자 가족
"전쟁의 두려움을 전후 세대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이 깔렸기 때문에 보람도 되고, 만나보지도 못한 아버님이지만, 그 순간만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보람된 일이죠."
나라 위한 삶을 살다 간 아버지를 기리며 유 씨는 지방공무원과 보훈병원 등 공직에 있었습니다
38선 휴게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유대지, 이순필 부부.
동부전선 38선 기점에서부터 파주 임진각까지 평화 메시지를 달고 승용차로 한나절을 달렸습니다.
오후 늦게 현재 사는 분당에 도착한 부부. 검은 모자에는 전쟁반대와 아버지가 적혔습니다.
<인터뷰> 이순필 (64세) / 국가유공자 가족
"동부전선 양양 하광정 38석 경계석을 기점으로 양양, 한계령, 전적비나 38선 경계석이 있는 데서는 휴식도 조금씩 취하면서, 시내를 지날 때는 캠페인도 좀 하고..."
아내와 함께 20년 전부터 매년 38선을 횡단한다는 유대지 씨. 유 씨의 38선 횡단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유대지 (64) / 6·25전몰군경유족
"저희 아버지는 대한민국 경찰로 근무하시다가 1949년 3월에 빨치산과 교전 중에 장렬히 순국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습니다. 제가 38선을 오랫동안 횡단하게 된 이유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사무치기 때문에 이 행사를 하는 겁니다."
"사진 속 인물이 아버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가슴 속 부친은 고 유귀룡 경위로 1949년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로 근무 중 빨치산과 교전하다 순국했습니다.
그해 9월 유복자로 태어나 6·25전몰군경의 자녀로 살아온 유 씨는 마찬가지로 국가유공자 가문인 아내와 살다 전쟁 위기가 일던 1994년 걸어서 38선 횡단을 시작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유씨의 삶은 한 권의 책에 담겼습니다. 멸치 행상을 하던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키워 온 유씨.
걸어서, 자전거로, 승용차로 20년간 모두 84번 38선을 횡단했습니다.
특히 6·25 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은 2000년엔 북미대륙 38도선 4,000km를 자동차로 횡단했습니다.
<인터뷰> 유대지 (64) / 6·25전몰군경유족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시련을 줬습니다. 수많은 군인과 경찰, 국민들이 전쟁으로 희생됐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으로 국민들과 전후 세대에게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드리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이 행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순필 (64) / 국가유공자 가족
"전쟁의 두려움을 전후 세대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이 깔렸기 때문에 보람도 되고, 만나보지도 못한 아버님이지만, 그 순간만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보람된 일이죠."
나라 위한 삶을 살다 간 아버지를 기리며 유 씨는 지방공무원과 보훈병원 등 공직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