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0년도 더..전에..
까까머리를 금방 면했을 시절에 집이 중앙동인 친구 손에 끌려 따라 간 곳이 국제시장 어느 막다른 골목 안의  허름한 돼지 국밥집..

그 시절엔 다 그랬을 테지만 낡아 빠진 나무의자와 삐끄덕거리는 탁자..
두평 남짓한 공간에 탁자 서너개가 놓여 있고..
구부러지고 찌그러진 숟가락과 젓가락이 들어 있는 때가 꽤재재하다 못해 눌어 버린 수저통...
허리 구부러지고 손등에선 금방 파란 피가 솟구칠 것 같은 굵은 혈관이 숭숭한 할머니와
삼십대 쯤 되어 보이는 주근깨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맘씨 좋은 아주머니...

돼지 내장에 순대, 그리고 머리고기가 가득..,
가끔은 혓바닥이나 귓부리가 들어 있는...
걸쭉한 국물의 국밥에 정구지(표준어로 부추)를 듬뿍 넣어
소금과 양념장으로 간을 하여 소주와 함께 먹으면 밥도 되고 안주도 되는  
일석이조의 돼지 국밥..

큼지막한 뚝배기에 가득 담겨오는 국밥을 보면 먹기도 전에 행복한,
그리고 그 맛 또한 일품인...돼지 국밥..
그 시절엔 옥호도 없었으나..그집이 신창동 있다고 해서 다들 신창동 돼지국밥집이라고 불렀었지...

시내로 나가기만 하면 술과 밥은 거기에서 해결하곤 하다가...
나라의 명을 받아 3년을 보내고 돌아 오니..
그 집이 건너편 4층 건물의 2층.. 널찍한 홀이 있는 제법 식당 다운 풍모를 지닌..
한 40평쯤 되는 식당으로 바뀌었더군...
옥호도 큼지막하게..신창국밥이라고 입간판을 세워 놓았고...
그 때의 할머닌 돌아 가시고 주근깨 아주머니(할머니의 며느님)가 손님을 맞고 있더군요...
국밥 맛은 몇 년전이나 변함없이 숟가락질을 바쁘게 하고...

복학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가끔 동급생들과 어울려 여기에서 술도 먹고 밥도 먹고 그랬었지...
대학 3학년 때의 어느날 점심...
남여 학생들이 어울려 국밥집에서 밥을 먹는데..
어느 여학생이 이 돼지 국밥  둑배기를 국물한점 남기지 않고 먹더군요..
내가 하도 신기해서 그 여학생이 먹은 뚝배기를 거꾸로 들어 보니 국물한점 남아 있지 않았었지요
그 식성에, 그 용기에, 그 산뜻함에, 청명함에 반해서...
1년 후.. 난.. 그녀에게 청혼을 하곤...
지금껏 아침 저녁으로 잔소리를 노랫가락인양  들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몇 년전...
부산에 출장을 간김에 신창동 국밥이 생각나서 그 아주머니도 뵐 겸.. 국밥도 먹을 겸...
국제시장을 찾았더니..
그 국밥집이 없어져 버렸더라구요..
이리 정리 헤메다가 결국 그냥 돌아 왔는데..
돌아 오며,..내내.. 왜 문을 닫았을까.. 하고 궁금해했었지..
그리곤...
내 기억 속에.. 추억 속의 자리로 잊혀져 버렸지요..

한 열흘 전 쯤인가..
내가 구로동으로 사무실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이 건물에 입주가 끝나지 않아 화장실에 비치된 휴지가 없어..
휴지를 가져 가야.. 용변을 보는데..
화장실에 가..앉으니...
휴대용 화장지 포장이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인쇄되어 있더군요..
“35년 전통의 맛. 신창돼지 왕순대 국밥”
“10년만에 돌아온 신창국밥”
누군가가 부산을 다녀 오면서 가지고 온듯..

이게..무슨 소리입니까?
신창동 국밥집이 다시 생겨 났다는 말!!
불현듯 그 아주머니도 생각이 나고..
그 국밥맛도 입안에서 되살아 나는 것 같아...
더러운 것도 잊고 그 화장지포장을 얼른 집어들곤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었지요..
담에 부산 갈 때 한번 들러 볼려구요..

오늘 부산으로 출장을 갑니다
신창동 돼지 국밥집에 들러서...
옛 젊은 날의 편린들을 주워 올께요...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