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저녁이었습니다. 아내가 일이 있어 늦게 귀가한다기에 아이들 저녁을 차렸습니다.

먼저 아들놈(4살)이 자기 유치원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아이가 있는데, 3살짜리가 자꾸 4살이라고 우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나이를 한국식으로 계산해서 그럴 것’이라고 대꾸해줬습니다. 딸아이(4학년)가 ‘왜 한국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계산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비록 엄마 배 속에 있지만, 그것은 엄연히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딸아이는 대뜸 ‘It is not formed yet!'(=아직 다 갖춰진 것이 아니쟎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임마, 한국말로 해!‘라고 했겠지만, 한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줬습니다. ‘유아교육하는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나이가 어릴 때일수록 교육이 중요하다, 특히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이미 그 인격이랑 재능이랑 감성이랑 상당부분 결정된다, 따라서, 네 말대로 완전히 사람 모양새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전생애를 관통할 기본을 만들어나가는 중요한 때이다...’ 딸아이는 ‘엄마 배 속에만 있는데, 어떻게 배울까?’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그래서, 엄마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이 때는 특히 온전히 엄마에게만 의존하는 때이다. 엄마가 늘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배 속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이것저것을 들려주면 좋은 아이가 되지만, 반대로 늘 화를 내고 싸우고 배 속의 아이를 함부로 하면 아이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해줬습니다.  

딸아이 눈이 커졌습니다. ‘그럼,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엄마는 어떻게 했어?’ 저는 ‘엄마들은 다 마찬가지야. 너희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무척 정성이었어. 심지어 하늘에서 갑자기 간판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간판 밑은 아예 지나다니지도 않았어. 과일을 먹어도 꼭 모양새가 완전한 과일만 먹었어. 늘 좋은 음악을 들고, 마음을 좋게 가지려고 애를 썼단다. 그래서, 너처럼 이쁜 딸이 태어난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딸아이의 볼이 발개졌습니다. 눈에는 살짝 이슬기도 비쳤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그 어린 시절, 그 작은 ‘자기’을 돌보기 위해 엄마가 기울인 정성을 생각하니 조금 감격적이었나 봅니다. ‘아, 그래서 엄마가 내가 아주 어릴 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줬다구 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아직 못 알아듣는 때라고 해도, 엄마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주면, 그게 다 아이들에게는 성장의 거름이 되는거야!’라고 맞장구를 쳐줬습니다. 제가 ‘너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엄마에게 배운대로 네 아이를 무척 사랑해줘라. 아이에게는 그게 전부다. 자주 껴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그래라.’했더니, 딸아이는 잔뜩 고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내가 귀가했습니다. 아내는 ‘어, 아직도 저녁을 먹고있어?’라고 했습니다. 딸아이는 뛰어가 엄마를 껴안고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아내는 영문을 몰라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라고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Love!'라고 한마디하고 한참을 그렇게 엄마를 껴안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