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이맘 때쯤 되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우울해지는 것같습니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변변하게 지어놓은 농사도 없이 또 한해를 헛되이 흘러보내고 나이만 하나 더 더하게 되었다는 아쉬움이랄까 조급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싱싱한 자태로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가 밤새 떨어져 바람에 따라 도로 중심부에서 이리저리 나뒹굴며 주변으로 몰려가 처박히는 낙엽이나 쓰레기 더미에서 우리 인생의 한 면을 봅니다.
옛날 해운대에서 항상 끊임없이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만들어놓은 단단한 모래밭에서 금방 만들어 놓은 나의 발자취가 새롭게 밀려운 파도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질 때의 그 아쉬움을 해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인생도 힘찬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밀려와 앞선 파도가 만들어놓은 물결흔적을 뒤덮어 없애버리는 모래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나뭇가지의 제 자리를 여름내내 지키고 있던 붉게 물든 낙엽들이 가을 찬 바람에 제 자리를 잃고 앞선 낙엽들의 흔적을 지우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도 우리 인생과 똑같습니다.

우리의 젊음도 한 때의 물결이었고, 파도였고, 바람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래속으로 스며들거나 도로 주변 막다른 구석으로 굴러가고 있는 과정이지요. 파도가 해안에서 부서지기 전까지 자신의 생명과 형체가 있듯이 우리 인생도 제 자리에서 제 목소리 내고 있는 동안이 성공이라는 모두의 눈에 보이는 삶의 형태가 있을 뿐, 파도가 흔적없이 쓰러지듯 우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만 조용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 힘찬 솟구침으로 자신을 과시하듯, 푸른 새 싹이 커다란 잎으로 가지뿐인 나무의 위엄을 나타내듯 우리 인생도 무언가 성공이라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항상 살아움직이고 있는 물결이고 나뭇잎입니다. 항상 뒤에 오는 파도와 바람에 짓밟혀 흔적이 희미해지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자신을 떳떳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의 인생과 같습니다.
그런 바람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역사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또한 나의 흔적을 허무는 그 바람도 곧 다시 다른 바람에 의해 없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가을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항상 더 큰 인생을 보게 해줍니다. 우울해지는 것은 싫지만, 우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참 좋은 것입니다.
올 가을에는 꼭 단풍구경을 가도록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