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시골에 가지 않아도 되어서 망월마라톤 경부이어달리기 백서 관련 글 정리를  좀 하였습니다. 두 분 서병재, 최홍식 큰 선배님의 옥고도 받았습니다. 교정이 필요없는 깔끔한 글월에 너무도 감사했습니다.선배님의 글월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 않을 것 같아  이곳 게시판에 올려 다른 동기 선배님들도 함께 감상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여기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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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큰 용의 승천 (선배 사랑 후배사랑)
33회 최홍식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3년 전 망월마라톤회 박수진 회장의 권유 덕분이다. 그 후 서독 외무장관인 요쉬카 피셔 씨가 쓴 “나는 달린다.” 라는 책을 읽고 더욱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해보지 못한 그 무엇에 온통 자신을 몰입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퇴임 후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몹시 힘든 훈련 중에는 콧구멍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

연습시작 6개월 후에 처음으로 2002년 1월 27일 경남 고성에서 개최된 제1회 고성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하프코스 완주의 기쁨을 누렸다. 출발선상에서의 흥분과 설렘, 그 두려움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며 더욱이 결승점을 통과한 완주의 기쁨과 충만감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다.
서울마라톤 하프코스에 참가했을 때다. 골인 순간, 마중 나온 아내와 딸, 사위의 환호 사이로 다섯 살 박이 손자 아이의 '할아버지 만세'가 귓전을 울렸다. '그래, 할아버지 만세다.' 아이의 고 이쁜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 해지며 레이스 동안 쌓였던 피로와 지루함이 한 순간에 다 가시고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마라톤을 통해 삼대가 한 마음이 되어 뿌듯한 가족애를 맛보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마 이런 벅찬 감동은 레이스를 끝내고 결승점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다. 어떤 특별한 장비와 시설 없이도 즐길 수 있고 특별한 계절을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용기와 끈기, 열정과 피나는 노력만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수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것, 즉 일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며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왔던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 심장을 강하게 펌프질 해 뇌와 신체 각 부위에 많은 양의 피가 보내진다. 이어 신선한 산소를 풍부하게 공급받는 뇌는 환상적인 생각을, 즉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참신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마구 분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신과 육체의 완벽한 조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개교 106주년 부산 항일학생의거 63주년 기념 경부이어달리기 행사에 대해 느낀 소감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이 행사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서와 달림이들과 도우미들, 전 동창 분들의 참여와 헌신 덕분이겠으나, 우리 전 동창의 중심에 서서 시종일관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박관용 현 국회의장의 역할이 큰 몫을 했음에 틀림없다. 경부이어달리기가 진행되는 동안 가두에서 응원하는 동문님들, 특히 김해에서 25회 오학술 대 선배님을 뵈었을 때는 눈물겹도록 감사한 마음이 우러났다. 또, 달린 후 각 지역 동문들의 뜨거운 환영과 환대는 더욱 큰 격려가 되었다. 경부이어달리기는 팀을 이뤄 이기고 지는 경기나 등차를 매기는 경기가 아니라 동고 역사를 국민들께 입증하고 스스로가 동고인임을 입증하는 기회였다.

달리는 동안에도 노선배들의 체력의 한계를 눈치 채고 선두반보를 외치던 후배들의 뜨거운 선배사랑, 후미에서 달리는 후배들의 촬영을 위해 선두교체를 외치던 선배들의 후배사랑은 한 가족 이상의 감정, 즉 동고 동창사랑이라는 영영 끊어질 수 없는 인연임을 확인했다.

시간의 파괴력은 모든 사람의 능력을 감퇴시킨다. 즉 세월이 가면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선후배간 따뜻한 격려와 배려가 있다면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 낙관적인 태도로 늙음을 얼마간 극복할 수 있는 전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이란 따분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출구 없이 과거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회오리처럼 돌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 혼돈은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우리는 돌아가는 바퀴살이 아닌, 전통이라는 바퀴의 중심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통은 크건 작건 그것을 지켜나감으로써 신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날 이어달리기의 주자들이 김해 강서체육공원을 출발하여 부산시청 앞에 도착할 시점에 500여명의 재학생들과 동문들이 참여했고, 동래소방서 앞에서는 박관용 국회의장, 배재웅 동창회장, 김우영 재경동창회장등 다수의 동문이 대열의 선두에 합류한 가운데 동래 시민들의 갈채 속에 발을 맞춰 달려나갔고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동문들의 한 발작 한 발작이 모두 감동 그 자체였다. 모교교정으로 들어가는 그 긴 대열의 움직임은 마치 한 마리의 큰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았고, 한편 후배들을 중심으로 보면 한 마리의 거대한 애벌레가 몸을 움츠렸다가 한꺼번에 쫙 펼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았다. 이 애벌레가 앞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나비로 변신하여 무한한 창공에 나래를 펴는 날을 기대해본다.    

이번 선후배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달렸던 그 순간들의 소중함을 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를 둘러싼 대지와 바람과 빗줄기가 이룬 아름다운 환경과의 합일 또한 잊을 수 없다. 모두가 칭찬했던 감동 그 자체의 행사였다.
그러나 아무리 멋지게 일을 해냈다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는 여지는 언제나 남아 있는 법이다. 다음 번에 보다 더 최고의 걸작품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이번 행사에서 약간이라도 미진했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더 많은 동문들의 참여방안, 대 국민홍보, 달리기코스 개발, 출발, 도착 시간의 적정 배분, 가이드에 대한 배려, 교통 혼잡을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좀 더 챙겼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내 스스로가 3년간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가 건강을 유지하자는 데서부터였으나, 차츰 자신만의 꿈을 추구할 수 있다든지, 자신의 진선미를 추구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삶을 즐길 수 있다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달리기를 정의한다면 하나의 예술품을 창조하는 놀이라고 풀이하고 싶다. 꾸준한 달리기를 통해서 육체의 필요 없는 모든 부분을 떼어냄은 물론 마음속의 집착과 갖은 욕심을 떼어내어 순수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킴으로써 나 자신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풀코스 2번, 하프 6번, 10km 1번 등 총 아홉 번의 대회에 참가하여 모두 완주했으나 기록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평소 열심히 연습하는 편이며 대회를 앞두고는 한 달에 200km 정도 달린다. 달리기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고 믿는다. 드물지만 진정한 달리기 쾌감(runner's high)의 경지에 이르면 모든 사물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고, 시간이 정지된 듯,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달릴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달리기의 달콤함이란 달리고 난 후의 따뜻함과 충만함을 말한다. 늘 다음 번 달리기를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느낌 때문이다. 달리기가 겉보기에는 육체적인 운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사색적인 운동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신비롭다. 달리는 동안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도록 가르쳐 준다. 달리기를 통해 얻어진 삶의 철학과 지혜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나는 아직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기분이며, 달리기로 보아서는 갈 길이 먼 사람이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다리에 매달려서 작업하는 인부, 새벽 환경 미화원, 특히 장애인을 만나면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고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연습 달리기를 할 때면 발자국 하나 하나에 리듬을 붙여 단전호흡 원리인‘수승화강이나 불가의 깨우침을 뜻하는 ‘돈오돈수를 마음속으로 외쳐왔다. 그러나 요즈음엔 미국에서 병고를 치르고 있는 자부의 건강 회복을 위해 ‘종선건강’을 하느님께 기도하듯 외치고 있다. 앞으로 자부의 건강이 회복되고, '남북통일'과 '인류평화'를 외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