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월초 여름 휴가차 망월 산악회에서 주최한 3박 4일 백두산 종주를 다녀 왔습니다.

금강산은 몇 번 보았지만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처음입니다.

백두산 여행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습니다.

대부분 버스, 짚차로 이동하여 마지막 천지 근처에서 편도 약 1시간반 정도

산행을 하고 30분간 천지를 보는 코스가 표준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조금 어려운 코스를 택하였습니다.

중국에 있는 백두산 천지 주위의 절반에 속해 있는 모든 봉우리를 약 10시간 정도

걷는 제대로 된 백두산 종주 산행을 한 셈입니다.

종주코스는 근년에 개발되어 힘도 들고 돈도 더 비싸다고 합니다.

그리고 7~9월 3개월 정도밖에 못 간다고 합니다.  

중국 비행기가 갑자기 출발일 2일전에 취소 되었습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습니다.

역시 중국은 중국입니다.

모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이 소프트웨어마저 잘 갖추는 날엔 우리 한국사람은 중국사람 발 마사지 해주고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련을 거쳐 연길까지 항공으로 가서 연길서 버스로 밤 새도록 약 10시간을 달려

서파라고 부르는 장백산 (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름 ) 서쪽 기슭에 도착하였습니다.

졸다가 졸다가 흔들리는 목이 아파 더 이상 잠도 자기 힘들고 도중에 비포장 진흙 길이 미끄러워

몇 번이고 버스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곤 하였습니다.



먹으면 속이 탈 날 것 처럼 보이는 허름한 중국식 도시락으로 예비군처럼 길에

퍼질고 앉아 아침을 때웠습니다.



그기서 다시 총알 택시 같은 짚차를 타고 40분을 정신없이 달려서 천지 근처에 내립니다.

오전 10시반, 이제부터 산행 시작입니다.

우선 1,218개의 계단을 한 40분간 높이에 적응하느라 살살 올라가니 북한과 중국의

5호 경계선이 나타납니다.

국경선에 북한쪽은 아무도 없고 중국의 조선족 경비원이 나즈막한 철조망 국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북한땅으로 약 30센티안에 발을 들였더니 한국말로 당장 나가라고 합니다.

철조망의 나무 말뚝을 발로 슬쩍 중국쪽으로 당겼습니다.

북한땅이 5센티 정도 넓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국경선 옆에는 바로 눈 앞에 천지가 턱하니 펼쳐 집니다.

절경에 놀라고 천지를 그렇게 빨리 쉽게 볼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0번 가면 3번 보기 힘들다는 천지를 단숨에 보았으니 조상덕을 단단히 보는 것 같습니다.

사진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천지..

2,700미터 산꼭대기에 있는 그 넓은 호수.

푸르디 푸른 순 자연산 물 색깔,

병풍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봉우리,

시시각각 몰려 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구름들…

정말 민족의 성지라고 부를만한 곳이었습니다.

천지뿐만 아닙니다.

백두산은 면적이 전라북도만 하다고 하는데 일본의 후지산처럼 뾰쪽한 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천지가 여의도 크기만 하다고 하고 산 위 곳곳에 편편한 고원, 아름다운 초원의 구릉,

곳곳에 피어 있는 들꽃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유럽의 평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맑고 차가워서 발을 담그기 힘들 정도인 그러면서도 맛이 일품인 백두산물..



작년에 일본 중부지방의 3,200미터 높이의 북알프스를 다녀 왔는데 미안하지만

경치와 품위로 친다면 백두산쪽이 월등하게 우월하여 비교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아 ! 이렇게 아름다운 민족의 탄생지인 백두산 절반을 6.25 동란 참전 대가로 절반을

뚝 잘라 바쳤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게 수시간 종주를 하며 천지를 온갖 방향에서 요모조모 살펴 보았는데 역시 잘 생긴

놈은 어떤 방향으로 보더라도 잘 생겼더군요.

드디어 중국쪽 백두산의 최고봉인 2,691 고지인 백운봉에 도착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합니다.

서둘러 내려 가지 않으면 어둑어둑 해져서 더욱 위험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천지 입구인 수면 높이까지 계속 하강 코스입니다.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내려가도 아무리 내려 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길을 무려 2시간 넘게 무릎이 시큰거려

더 이상 갈 수 없을 한계의 지경 가까이 가서야 겨우 천지 입구인 <달문>에 도착합니다.

이미 날을 저물고 발은 제멋대로 흐느적 거립니다.

그래도 천지 물에 세수를 하고 바쁘게 기념 촬영을 하고 또 다시 내려 갑니다.

바로 옆에서 본 천지물은 이미 관광객들의 무분별함속에 서서히 오염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거의 다 내려 온 줄 알았는데 다시 어둠 속의 장백폭포를 따라 수없이 많은 계단을

이미 어두워 야간 랜턴을 켜고 하염없이 한 1시간 넘게 내려 왔습니다.

오후 7시반, 그 웅장한 장백 폭포를 어두운 가운데 몇 번 감탄을 터뜨렸지만 너무 힘이 들어

오로지 버스가 나타나기만을 고대하며 동굴 속의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 갔습니다.

이렇게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8시반.

그 전날 연길에서 밤 12시반에 출발하여 백두산 종주를 마치고 북파에 도착하기 까지

총 20시간 정도가 걸린 셈입니다.



그리고 연길 조선족 도시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외국에 이렇게 규모가 큰 한국인 동네는 처음입니다.

온갖 간판이 모두 한글이고 특히 단고기 맛이 일품입니다.

두만강은 더 이상 푸른 물이 아니고 흙탕물인 것도 알게 되었고

여름 건조기에는 그냥 걸어서도 넘어 올 수 있다고 합니다.

탈북자가 중국 넘어 오는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백두산 근처는 모두 한글, 조선족에다 한국 돈도 그대로 쓰고 한국 수표도 받습니다.

가격도 전부 기본이 천원이고 단위가 만원입니다.

중국사람은 순진하게 보이는데 도리어 조선족은 모두 돈독이 든 사람처럼 보여서

좀 민망했습니다.

그 사람들에겐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북3성은 모두 한국땅 같아 보였습니다.

요즘 고구려사 왜곡문제로 시끄럽습니다만 사실 국경이 어떻게 그려져 있건

한국사람이 살면 그건 한국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살면 저절로 한국땅으로 돌아 오게 되어 있고 우리가 못살고 힘이 약하면

멀쩡한 우리땅도 뺏깁니다.



어쨌든 힘들었지만 다시 가보고 싶은 백두산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중국에 가면 물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 좀 했습니다.

덕분에 체중도 좀 뺏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