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 최영일 
| 제목 | * [태평로] 굴종을 반복하면 버릇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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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명식(44) [ mspark4905@hanmail.net ] |
| 작성일 | 2019-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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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굴종을 반복하면 버릇이 된다
조선일보 조중식 국제부장 2019.05.27 03:15 중국 가서 '작은 나라'라 낮추고 KADIZ 침범에 상응조치 않고 北미사일 도발에는 쌀 내밀어 누가 이런 나라 호구로 안 볼까 중국신문에 '훠시(獲悉)'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문장이 종종 등장한다. 우리말로 딱 떨어지진 않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에 가깝다. 이 단어에 얽힌 역사가 있다. 1971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키신저 회담 공동발표문에 이 단어가 등장했다. 발표문 초안은 "닉슨의 중국 방문요청을 수락한다"는 것이었는데, 키신저가 펄쩍 뛰었다. 이를 보고받은 마오쩌둥이 "어느 쪽도 피동(被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침을 내려, 저우가 고심 끝에 찾아낸 표현이 주어가 없는 동사인 '훠시'였다. 이 단어엔 국가간 외교에서 한치 밀림도 허용치 않으려는 치열함이 담겨 있다. 작년 1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슷한 일이 있었다. 5월2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부상이 미국을 맹비난한 담화문에서 "저들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즉각 받아쳤다.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공개서한에서 "북한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다"고 했다. 미국도, 북한도 밀리지 않으려 팽팽했다. 지금 한국 외교에서 이런 면모를 볼 수 있나. 2017년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한 연설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하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大國 중국의 '中國夢'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국가를 겸손의 소재로 삼는 게 적절한가. 대통령의 권한에 타국 앞에서 대한민국의 존엄을 내려놓고 아부할 자유까지 포함돼 있는가. 그런 경향성은 이어졌다. 중국을 휩쓴 미세먼지가 하루이틀 뒤면 어김없이 한반도를 덮치는데 중국에 찍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않았다. 중국전투기는 아예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 뒷간 드나들듯 진입하고 있다. 작년에만 140여차례 무단진입하더니, 올 들어서는 대한해협을 지나 강릉과 울릉도 사이 해역도 뚫고 지나갔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우리 전투기가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진입한 훈련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없다. 우리가 점잖게 대했다고 중국도 그런 건 아니다. 작년 9월 소말리아에서 귀환하던 문무대왕함이 태풍을 피하느라 중국·베트남이 서로 영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으로 들어가 10여분간 항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은 애초 참여하기로 했던 제주도 관함식에 불참했다. 작년 9월 태국 방콕국제공항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소동을 부리다 공항경찰에게 폭행당한 일이 있었다. 그 장면이 영상으로 퍼졌다. 그 일로 태국총리는 중국에 사과했고 공항경찰대장은 직무가 정지됐으며, 주먹을 휘두른 경찰관은 해임됐다.
이 외신을 접하며 왜 중국이 부러웠을까. 필리핀에서 한두달이 멀다 하고 한국인 피살사건이 전해지는데도, 우리 정부가 외교적 보복조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필리핀에선 "한국인은 건드려도 뒤탈이 없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한다. 국가가 국익 앞에서 점잔을 빼고 예의를 차리면 국민이 호구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지난 4일, 9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 8일 만에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 800만$를 공여하고 쌀까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쏜 미사일은 최장사거리가 500㎞라고 한다. 미국까지는 날아갈 수가 없고 중국을 겨냥하지도 않을 테니, 타격대상으로 상정한 것은 한국이나 일본일 수밖에 없다. 인도적 지원은 좋지만 타이밍이 있다.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고 침을 뱉는 집단에 즉각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물을 안겨주는 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굴종이다. 자존을 지키지 않는 국가는 경멸당한다. 굴종도 반복하면 버릇이 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