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떠 본다

여명이 창틀에 걸려 있다

막내놈은 벌써 일어나 내 머리맡에서 내가 일어 나기만을 기다리고 앉아 있다

다시 눈을 감는다..

이것 저것.. 생각한다

먼.. 어린 날의 일부터..잘한일 잘 못한 일.. 안타까운 일.. 아쉬운 일..

그 때.. 이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머리 속에서 떠 다닌다..

과거와 현재가 뒤석여..종잡을 수 없다

역사가 종횡으로 마구 달린다

훗날.. 은퇴 후의 내 모습도 그려진다

이래서 노인이 되면 잠이 없어지나 보다

 

6시..

모닝콜이 울면.. 거의 한시간 여를 기다린 막내놈에게 밥을 준다

신문을 가져다.. 혹시 마누라가 깰까..조심스레 펼쳐든다

돋보기를 끼고...

먼 옛날의 노인처럼.. 천연덕스럽게 신문을 읽는다..

머지않아.. 나도 신문을 소리내어 읽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샤워는 참, 상쾌하다

사워를 마치고.. 젖은 몸을 채 말리지 않고 벚은채로 집안을 여기 저기 돌아 다닌다

아직은 몸매든 힘이든.. 여유가 있다는 시위를 하는거다

그런 나를.. 마누란.. 한번 힐끔 쳐다보곤..알은 척도 하지 않는다

흥..너..그래 봐야..별 볼일 없다..하는 뜻일게다..분명..

 

막내놈의 인사를 받으며 현관문을 나선다

파블로프에게 배운대로 막내놈에게 교육을 좀 시켰다

내가 출근 할때 "아빠 다녀오세요..해라" 해서 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면..

건빵을 하나씩 주는 교육을 시켰더니 학습효과가 있어..

요즘엔 곧잘 인사를 한다.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전철역까지 걸어간다

봄이 이제 완연하다

보도블럭 사이로 쑥잎이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길거리의 개나리가 금방 꽃을 터뜨릴듯하고

남의 집 마당의 목련 꽃봉오리가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있다

전철역은 나에게 새로운 활기를 만들어 낸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짧은 치마의 아가씨가 많다

늘씬한 아가씨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힐끔 훔쳐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옛날엔 대놓고 봤는데...

요즘 그러면.. "노인네 미쳤어!" 소리를 들을 까봐 살금거린다

이제.. 욕정같은 건 없어졌고.. 그냥.. 젊고 싱싱한게..보기 좋아..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싶어... 그리움으로.. 바라본다

 

전철이 한강을 넘고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나는..

한강에 뿌려진 수많은 보석을 보곤...감탄을 한다

아침햇살이 강물위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을 수 없이 뿌리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 한강.. 서울에..살고 있다는게..

서울에 이런 강이 있다는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모른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사무실..

인스탄트 커피를 한잔 만들어..

테이블에 않는다

창밖의 도심을 내려다 보며..

천천히..아주 천천히...

한모금..한모금씩..

홀짝이며..

오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음을 ..

내가 있음을..

오늘이 있음을..

내일이 틀림없이 올것임을..

가족이 있음을..

친구들이 있음을..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누가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