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나 고모가 연필을 깎으면 참 예뻤다.
내가 깎으면 영 시원찮고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샤프를 써 봤다.

독일에서 외교관 하시는 작은 아버지가 한국에 오시면서

파카 볼펜, 샤프 세트를 선물로 사 오셨다.

그러나 심이 1mm 정도로 기억이 되는데, 다 쓰면 리필할

방법이 없어 아껴 아껴 쓴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전에 연필심이 기차처럼  붙어있어 통 안에 있는
좀 허접한 샤프 비슷한 연필을 학교 앞 문방구에서 봤지만
사보지는 못했다.

중학교 입학하니까 초기형 0.9mm 심의 샤프가 나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0.7mm 심의 일제 샤프가 출시되었다.

국산 샤프는 잦은 고장으로인해
유저로 하여금 샤프 수리의 달인이 되게끔 했다.

일제 샤프,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일제를 샀다.
이 후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디자인의 샤프는 내 주머니에 손이 가게 했으나
변변치 못한 가계에 캐릭터 샤프는 못 사고 학기 바뀔 때
그 동안 눈 여겨 보았던 일제 샤프 하나 사는 게 제일 큰 행사였고
그 샤프만 쓰면 공부도 잘 되고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의  딸, 아들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학교에 가면 지우개를 산다.

다양한 모양, 색깔,애들 방에 지우개가 넘쳐난다.
장난감도 로보트도 레고 블럭도...

내 아이들은  무얼 사면 뿌듯해 하며 학기 초의
의젓한 다짐을 할까?

늙으신 울 엄마가 쌈짓돈 주시면
난 정말 행복해하며 샤프를 샀는데
그리고 지금도 어머니의 아들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데...

내 아들은 디카를 살까?, 휴대폰을 업그레이드 하며 뿌듯해 할까?

그리고 아빠에게 사달라하면
다 사주는 나를 나중에도 기억하고 가슴 시리게
아빠를 좋아할까?

오늘의 난 뭘 사면 행복할까?
1억대의 수입차나 하나 사면 뿌듯할까, 뭐 별로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요새 휴대폰 바꾸려 하다 가격 때문에 고민하다 보니

환자도 없고 별별 생각이 나고
환자가  없으니 어릴 적 그렇게 좋아했던 샤프가 더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