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에 강릉행, 경포 짠 물에 몸을 절이니 수 삼년간은 썩지 않으려나, 태평양에서 밀려 드는 파도에 구명조끼 의지하여 온 몸을 실으니 멀리멀리 데려 가다오, 상고머리 시절 손톱 밑에 낀 때처럼 막연한 그리움이듯 다시 먼 길을 가오, ‘길은 그리움으로 열려 일렁’이나니,

1년 전에도 그랬듯이 오늘도 여전히 익숙한 비가 인천공항을 적시고 Lufthansa는 태연하다, 우거지갈비탕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는 다달이 부어 놓은 적금으로 여행사에 공항세 제한 199만원을 지불하고 받은 항공권, Voucher 및 유레일티켓을 품고 economy로 탑승한다, 사스 여파로 밀렸던 여행객들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이 만원이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여 가는 길이거늘 어이하여 이리도 도깨비 시장인가, first는 아니라도 좋다, business면 어떨까,

이 오래지 않은 진앙지를 알 수 없는 유랑은 급발진, 금새 비구름 뚫고 치솟는데 날개에서 거듭 펑펑 불꽃이 이는 바람에 사색이 되어 승무원을 쳐다보니 도리어 날 놀란 듯이 쳐다본다, 일순간 음양의 조화일 뿐인가보다, 유서를 갱신할 걸..., 마지막 남기는 말이 뭐길래 객사를 담보할까, 기내식으로 레드와인을 곁들인 탓에 벌겋게 달아올라 얼큰히 한 숨 눈 붙인다,

독일항공의 여행상품인 ‘Easy To Europe\' 중 북유럽 3개국 4개 도시의 첫 기착지는 프랑크푸르트 경유하여 스웨덴 스톡홀름, 사민주의의 성지이자 ’제7의 봉인(1957년)‘의 감독 Ingmar Bergman의 조국이다,

 

대륙국가에 대한 열등감으로 항상 외롭다는 스웨덴, Volvo와 Saab으로 지구촌 부호를 폼나게 하는 백야의 스칸디나비아반도국, 여성이 남성과 같이 대우 받는 나라, 결혼과 동거를 구분하지 않고 사실혼 여부를 기준으로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아이를 낳으면 아빠도 출산휴가 얻어 유모차 끌고 다니고, 자본가가 거리시위를 하는 유일한 나라, 노동계급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나라, 870만 정도의 인구로 2만 5천달러의 소득을 누려 우리의 5배의 생산성을 내는 나라, 그 비결은 노동의 인간화, 선진기술과 결합한 선진 노사관계 덕분이란다, 세계에서 6번째로 잘 살고 빈부격차가 가장 낮은 평등국가, 유럽에서 가장 늦게 노동운동이 시작되었으면서도 가장 잘 나가는 이유가 못내 궁금하다, 무식하면 단순은 진리일까, 해적떼의 후예들, 기독교문명 탓에 개화하여 이다지 살고 있으니,

노르웨이, 덴마크가 1980년대에 사민당에서 부르주아로 정권이 이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여전히 사민당이 집권, 1990년 총선에서 패한 뒤 재집권하여 신자유주의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민주의는 재편의 과정을 겪어 사민주의 그 이후는 무얼까, 잉마르 베르히만이 그토록 물고 늘어졌던 신은 알까,

Frankfurt에서 2시간을 기다려 스칸디나비아항공(SAS)으로 갈아타니 신문에 Sinead O\'Corner의 콘서트 소식이 아직도 빡빡인 오코너의 큰 사진과 함께 난 기사를 챙겨 놓고 이내  파김치가 되어 잠들었다, 스튜어디스가 깨운 후에야 적막 까마득히 아래로 스톡홀름의 야경이 잠이 들깬 채로 성탄 트리처럼 깨알처럼 어른거린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거린데 요금은 한국의 택시 수준인 무려 11달러라 날씨와 물가를 이미 듣고 오긴 했지만 초행자를 잔뜩 얼어 붙게 만들기에 충분하고 남았거니와 Amaranten에 여장을 풀고 한국의 방에서 나온 뒤 거의 24시간 만에 잠자리에 든다,

이제는 좀 낯익은 햄, 치즈, 빵을 된장국에 양푼비빔밥 먹듯이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로비를 나서니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고 강물은 유유하여 인적도 드문 거리에 발틱해에서 불어 오는 바람만 건조하더라, 이리저리 발길 닫는 대로 쏘다니니 온통 해안이고 배들이다, 호수인가 바다인가 하였더니 이게 바로 그 피요르드 해안이어서 짠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산악지대에서 내려오는 민물과 합쳐졌기 때문이란다, 햄버거 하나 5, 6천원 이상씩 하는 걸 보고 아예 가게 근처에는 얼씬도 않고 애꿎은 생수만 홀짝거리며 돌자니 수시로 비가 흩뿌리고 도무지 나그네에게 정을 주려 하지 않는다,

가자, 돌아가자, 이 잘난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 내가 더 이상 보태 줄 일 없다, 한국 여행사에 전화로 일정을 취소하고 독일에서 놀다 갈려고 수작을 하자니 패키지가 취소되면 얼마가 환불될지도 미지수거니와 일반요금으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것이다, 제기랄 허울 좋은 자유여행, 패키지에 꼼짝 없이 묶인 인생이었던 것이다, 성질 급하고 겁 많은 천성 덕에 일정 변경을 꿈꾸다가 그만 새벽 6시 35분발 노르웨이 오슬로행 기차를 놓쳤다, 일찍 돌아갈 생각만 하다가 일정을 챙기지 못하고 더군다나 호텔조식이 7시부터인데 그 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게 만들어 놓을 거라고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탓이다, 호텔 프론트 직원에게 하소연하니 직접 역으로 전화하여 한참을 통화한 후 오슬로행 기차기 있긴 한데 급히 서둘러야 그나마 남은 좌석 한 두개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여직원의 ‘quickly\'는 지상명령이었다, 무슨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반드시 타야만 하는 오슬로행 열차이기에, 만일 이마저도 놓치면 이국에서 떠도는 나의 운명을 도저히 가늠 조차 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막막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여행은 낭만도 아닌 진공도 아닌 처절한 생존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예고되지 않은 공포다,

그 후폭풍, 우여곡절 끝에 차표를 확보하고 나서 7eleven에서 사과랑 물이랑 사들고 막 나오면서 눈이 마주친 여인이 있었으니 Uppsala법대 1학년 Anna, 남자친구 마중 나왔는데 같은 법돌이인 내게 그 와중에 여러 가지도 묻는다, 한국의 법대에서 법학공부, 시험, 하는 일 등, 나도 물었다, 남자 친구와 결혼할거냐, 잘 모른다고, working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싼 물가 덕에 고생만 하고 간다 했더니 ‘too expensive\'하며 맞장구 쳐준다, 안나가 조국을 구한 셈이다,

순간의 자충수 그 덕분으로 유레일 1등칸을 타게 되었고 열차식도 맛보았다, 호텔 여직원이 알려 주었던 거하고는 달리 좌석은 남고 남았는데, 이어폰을 꽂으니 축배의 노래가 장중하고 창 밖으로는 자작나무, 메타세콰이어, 리기다 소나무들이 쭉쭉 뻗는다,

오슬로 역에서 내려 다음 행선지인 Myrdal행 티켓을 미리 챙기는 과정에서 노르웨이 화폐인 krone와 us 달러를 환산한 값이 차이가 나서 물었더니 환전수수료가 포함되었다고 하여 직접 크로네로 바꾸어다가 지불했다, 뒤에 사람이 줄서서 기다려도 한 사람을 끝까지 봐주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투덜대지 않는 문화는 인상 깊다, 잘 사는 나라의 여유일 테고 몸에 밴 문화일 것이다, 환한 미소의 역무원 Ninn이 다시 보고 싶어 다음날 아침 일찍 창구로 가 보았으나 아직 문 열기 전이었다,

Rainbow Astoria에 보따리 던져 놓고 왼쪽으로 도는데 왠지 음산하다, 공원에는 부랑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신이상 증세가 역력하고, politi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토록 박노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처음 마주한 장면 치고는 씁쓸하다, 성곽에 들어서서 북해에 쏟아져 내리는 북구의 햇살을 내려보니 그야말로 그림이고 푸른 잔디 위에 사랑하는 연인들 그 몸짓이 야릇하다, 오슬로 대학과 메인스트리트 주점마다 가득한 대학생들을 지나 왕궁에 들어선다, 삼엄하기는커녕 왕궁수비병정의 장난감 같이 하는 고개짓이 오토매틱이다,

동상 앞에서 오슬로대 여학생 둘을 만나 한국학을 가르치는 Noza Park 교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란다, 당연지사, 잘 먹고 잘 사는 니들이 갸를 무슨 일 났다고 알 턱이 있다더냐,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출신 박 교수가 그토록 떠들어 대고 홍씨 아저씨가 오랜 망명 끝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우리는 충분히 저주 받은 나라다,

영업용 벤츠가 늘어서 있어 그 중 하나를 찍어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물었느니 이눔의 파키스탄 출신 기사놈이 날 농락할 줄이야, 고 짧은 사파리에 택시비 엄청 물고 놀지언이 싸다는 둥 널려 있다는 둥 하는 구라는 물어 내게 할 방도는 없었다, 맘을 가다듬고 낮에 목격한 그 습한 길을 돌다가 에스토니아 출신의 21살의 처녀를 만나 흥정 시도, 공시가가 없긴 너나 나나 마찬가지, 6,70% 디스카운트하여 500크로네로 내 호텔 싱글룸에서 식을 치룬다, 나라가 망하면 꽃다운 처녀가 제일 먼저 무너진다, 흥한 스칸디나비아국 여성들은 팔지 않는다, 일자리와 복지를 나라가 보장해주기 땜이다, 비행기 통로가 꽉 찰 정도로 이영자 저리가라 할 몸매로도 어엿하게 스튜디어스로 일한다, 우리는 잘 살아도 엄청 많이 판다, 그 꽃값도 만만찮다, 가여운 에스토냐, 우리의 여동생, 딸들, 참회하자, 무구한 사랑을 하기에는 길을 너무 많이 왔구나, Oslo여 안녕,

뮈르달로 가는 기차는 정선 아우라지 가는 열차를 연상케 한다, 풍광은 입이 딱 벌어지게 하고, 만년설, 호수, 폭포, 산장, 캠핑족, 한국에서 화면으로 사진으로 보는 것 이상이다, 바로 이거구나, 이놈들은 이렇게 하고 사는구나, 부럽다, 화난다, 전 날의 후회를 만회해 주고 남았다,

 
Myrdal역에서 영원한 맞수 와이대에서 온 오슬로대 교환학생 둘 조우, 아직 숫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인데 4학년이란다, 수강신청정정 기간 동안 짬을 내 여행이라고, 재수시절 장가를 갔더라면 있었을 법한 딸 같은 여학생들이었다, 이어지는 협곡, 그 사이로 오금저리는 물빛의 시냇물, 자갈에 넋을 놓겠다, 부디 이곳의 친구를 사귀어 놓으라고 신신당부, 언젠가 나도 꼽사리 껴서 혜택을 볼 수 있을라나, 저 푸른 잔디에 텐트를 치고 고기 잡고 놀 수 있는 날이 정녕 올까, Flam으로 가는 도중에 열차가 잠시 정지, 눈과 귀를 의심했다, 엄청난 폭포가 쏟아지는데 불현듯 크림슨 치마의 처녀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 무슨 노랠까, Huldra Song이었다, 천사의 노래라면 이것일 게다, 북구의 서늘한 애잔함이 물씬하다, 씨디를 사왔으나 10년도 더 된 오디오는 멍텅구리다,

뮈르달에서 Gudvangen으로 가지 않은 자여, 세상을 떠돌았다고 말하지 마라, 유람선을 스쳐 지나가는 그림 같은 마을에 머물지도 마라,

베르겐 역에 도착하여 역사 앞에서 숙영, 현정 낭자와 작별, 이국에서 못 다 한 정을 서울에서 나누마, 향수에 시달리지 말고 꿋꿋하리라,

Grand Terminus 호텔에 컴이 다운되었다고 5분 거리의 Victoria 호텔을 일러 준다, 시간이 벌써 21시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북해에는 아직 태양이 걸려 있다, 항구 쪽으로 가는데 푸르고 싱싱한 10대 소녀가 구두 닦으라고 장난 친다, 이국인에 대한 선입견도 낯설어 하는 기색도 전혀 없다, 정작 딱새는 남미인이다, 항구의 비릿함과 놀웨이 소녀들의 자유분방함에 말초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어쩌지 못합니다, 비 내리는 바닷가에 올 때마다’,

saturday, 이 광장에 밤새도록 청춘들은 사랑을 하고 남미 여성들은 장미를 판다, 여기의 뭉크, 그 절규는 의아한 절창이다, 가지고 간 샌달에 맨발로 돌아다니다 기어이 감기, 약국은 보이지 않는다, 호텔에도 감기약 하나 없단다, 이럴 때면 약 사다 주는 여자 하나 있었으면..., ‘내 생은 내게 너무 가혹하다’,

2003. 8. 31. 일요일 아침, 까마귀 울음 같은 early bird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 식당에서 하루를 대비하여 배를 든든히 한 후 너무도 평온한 거리에 발품을 놓기 시작한다, 조그만 교회안을 들여다 보니 노인들과 손자 손녀들만 모여 가스펠송이다, 젊은 것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문 닫은 예배당도 흔하다, 교회와 사제들이 하던 일을 국가가 하니 자연스레 폐업된 것이다,

마을 한 가운데에 이쁜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는 풍경은 유럽이 공통인가 보다, 결코 음습하지도 눅눅하지도 않고 공원 같다, 이 유럽의 흔한 무덤으로 글 파는 자가 있고 이를 소개하는 기자도 있다, 서로서로 띄워주고 서로서로 뻥튀기 하는 우리는 빼밀리다, 어줍잖은 글 쓰지도 사지도 마라,

개시장이 열려 들어서니 언덕 진 잔디에 짧은 치마에 허벅지 드러낸 채 다리 벌리고 다 큰 처녀가 일광욕이다, 당신은 대체 뉘시길래 어이하여 먼 길손을 미치게 하는가,

페르귄트, 솔베이지의 Grieg, 그 생가를 물었으나 모른다 한다, 니들이 모르는 걸 굳이 더 이상 내가 물어서 뭐하리,  유명하다는 어시장을 찾아 큰 항구를 찾아 돌고 돌았는데 허사, 알고 보니 어제의 그 소녀가 장난질 하던 광장에 임시로 들어서는 장이었다, 자갈치를 상상하면서 다소 기대를 하고 갔으나 크게 실망, 고작 빵조각에다 새우 얹어 팔고 같지도 않은 김밥 하나에 돈 만원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초라함이었다, 이것도 장이라고 그나마 인파가 몰린다, 이 눔들아 부산와서 보고 좀 배우라,

광장엔 남미인 가족이 놀러와 하루 종일 비둘기랑 애들이랑 소일한다, 빵조각 하나만 달랑 사가지고, ‘허접한 삶이여, 쓰라린 꿈들이여’, 살찐 처녀는 이국인 남자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저 뱃살을 쥐더니 홀몬 주사를 놓는가보다, 눈치 보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고 몸을 사랑하는 나라인 게다,

 

스웨덴에서의 실패를 경험삼아 미리 호텔에다 부탁하여 새벽 일찍 조식을 하고 마지막 여행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날았다, 공항에서 지하철로 코펜하겐중앙역까지 가서 First 호텔에 묵었다, 이 호텔은 북유럽에서 체인인가보다, 흔히 있다, 그 중에서 여기 호텔은 시설이 수준급이다, 준일급으로 왔는데도 1급과 다를 바 없다, 역사 앞은 한창 도로 공사 중이라 시끄럽다, 차도 비교적 함부로 다니고 사람도 많다, 빨리 벗어나야지, 길고 긴 호수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도심에 이런 물이 있고 곳곳에 공원이 녹지가 널려 있다, 더 말하면 입만 아프고 속만 쓰린다, 그만하자, 자전거 천국 유럽, 그 중에서도 덴마크는 유난하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기본이고 남자들이 타고 가는 자전거 앞 바퀴엔 유모차가 장착되어 있다,

얼마를 걸었을까,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또 여기까지 왜 왔는가 하는 사이, 대학생들이 떼 지어 자전거로 통학한다, 따라가니 500년 역사의 코펜하겐대학이 나오고 그 길에는 쇼핑가가 이어져 있다, China Box의 완두콩이 들어간 볶음밥이 눈에 확 들어 왔다, 3가지에 25크로네, 우리 돈으로 약 4천원 정도였다, 4가지에 30크로네로 하여 비로소 난 여기서 맘 편히 배를 채우고 모처럼 방귀 꽤나 뀔 수 있었다, 고마운 차이나여,

 
항구 건너 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아뜨리에 있어 잠시 눈길을 주자니 한 폭의 드로잉이 발길을 붙잡았다, 보아하니 홀랑 벗은 남녀, 수컷이 암컷 뒤에서 한 참 전희 중인 장면, 그 음부에 숲이 무성하여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70대 노인이 그렸다는데 나랑 취향이 비슷한가보다, 자고로 숲은 무성하여야 하느니 값을 보니 4, 50만원 대였다, 미모의 큐레이터는 final이라고 강조하면서 2,000크로네까지 해 줄 수 있다며 제의하고는 언제라도 다시 오면 된다고 내 명함을 그림에다 붙여 놓는다,

입맛만 실컷 다시고 왕궁에 들어서서 경비병들의 교대식을 보고 있노라니 순식간에 여왕 부부가 탄 차량이 왕궁으로 들어가 버린다, 특종을 놓친 사진기자의 심정이 이럴까, 항구에 놀러온 여고생들 중 하나를 지명하여 사진을 찍었더니 지들끼리 꺄르륵거린다, 디카를 usb에 연결해보고 우습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고교시절 김찬삼의 사진들을 보고 가슴 졸였던 북유럽, 머리통 큰 뒤 사민주의가 맴돌던 지상낙원, 그 마지막 여정의 밤이 깊었다, 땅거미 진 뒤 오래 운하 위로 물비린내 깊으니 불끄라 자자, 아무 생각 없이 자자,

다시 프랑풀트에서 인천행을 기다리자니 5-6시간이 남았는데 로비에는 삼성 e-lounge가 어느새 점령하고 있어 공짜로 세계인들의 놀이감이 되주고 있다, 그 착하던 Hejia는 공부를 마쳤을까, 애인은 생겼을까, 풍만하던 Jahnn은 또 얼마나 성숙하게 변해 있을까, 남친이랑 결혼은 했을까, 미리 접선을 하지 못하고 온 것이 내내 후회스럽다, 내년에는 볼 수 있을까, 몰락한 동구로 가는 길에 얘들아 오라버니 보러 나오너라,

영종도행 뤂탄자 역시 북새통이다, 한국의 아줌마들 로비에 시끄럽다, 무얼 샀느니 얼마에 줬느니, 귀 막자, 저 아줌씨들은 뭘 보고 다녔을까, 한국에 가서 뭐라 하고 다닐까, 한국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내조자들일 터, 이제 자식 새끼 하나 잘 되라고 강남가고 많이 물려 주려고 떳다방에 운집하는 우리의 엄니, 누나들, 같이 살고 있는 한민족일 거다,

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짧다, 아마 바람 탓일 걸, 옆 좌석엔 작년에 S조선에 취직한 아들 보러 가는 덴마크 노부부다, 니들 조상은 바이킹이고 우리네 조상은 하늘에서 왔다고 놀렸더니 하늘에서 놀러 왔었느냐고 털보 할아부지가 이죽거린다,

 

가는 길에 챙겨간 책 4권이 모두 동이나 스웨덴에서 산 영시집마저 다 보고 나선 화이트 와인에 취해 다시 잠든다, 깨어 기내식을 먹고 나니 어느새 북경 상공, 유럽 어디에나 흔한 중국인들, 시장경제 해서 돈 많이 벌었나보다, 북한 인민들아 김가만 믿지 말고 돈 많이 벌어라, 그라고 나서 만나든지 합치자,

찬거리 사들고 택시에 오르니 청운동 가는 사이 뽕짝이 흐르고 요즘 신혼부부들이 교육비를 이유로 출산을 꺼린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 곳은 대한민국 천국보다 조금 낯설다, 자본이 어쩜 지배하는 이 땅엔 뭇 것들이 ‘개구리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운다, 가끔 슬피 운다,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

불과 하루도 안 되는 거리에 좀 더 지상천국이 있었더라,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더라. Voss 호반에 그토록 오래 무지개를 드리우니, 진종일 다녀도 눈꼽 끼지 않는 북구여 bye,

‘결국 혼자가 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가
나는 다정하지 못했다 메마른 세월을
밟고 다녔을 뿐
나는 다만 오래 나를 떠돌았을 뿐’
(이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