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고등학교재경총동창회

제목	2009, 불가리아-루마니아
글쓴이	임삼희(58) [ plim32@hanmail.net ]
작성일	2009-03-05

양아치 되는 거 한 순간이다

모두 잊자...가자...

LH에 보딩하려고 인천공항 내에서 열차를 타야 하다니...그 동안 바뀐 풍경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사정으로 상공에서 더 머무르는 바람에 소피아로 가는 연결편 항공을 놓쳤다

안개비 자욱한 부다페스트까지 가서 다시 갈아타고서야 불가리아에는 예정보다 3시간 정도 늦은 새벽 3시에 도착...소피아 공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K와 G가 '환영합니다 XXX'라고 우리말로 쓴 종이를 펼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c'est formidable!...이보다 더 깔쌈한 형용이 없을까...

예약한 호텔까지 택시로 같이 가서 선물을 주고 받았다

두 여대생이 돌아간 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K한테 휴대전화를 했는데 아침까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침을 먹고 나데즈다 니콜로바 번호를 누르니 쏜살같이 전화를 받는다

미국 제약회사에서 번역일을 하는 재원, 171의 장신이다

알려 준 호텔로 가서 부탁한 한국 동화책, 이철수 판화 달력을 건넸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도 배운다고 하여 보고, 갖고 싶다고 했던 것들이다

붉은 색 슬립은 집에 가서 확인해 보고서는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니가 서프라이즈한 것 원했잖아...자기는 처녀가 아니란다...예전에 보이프렌드가 있었다는 것이다...누가 물어 봤냐고...그래서 준다는 거냐 만다는 거냐...

기실 수컷들한텐 딱히 결혼이, 가정이 필요하지 않다...이렇게 동가숙서가식하면 그만이다...기집들도 섹스를 통해서만 자손을 번식할 수 있는 때는 지났다...어떻게든 생식을 해서 국가가 키우면 되고 나머지는 악이다

나디야가 가이드해서 시내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K한테 문자메시지가 들어온다... 어디냐고 머하냐고...

이 일을 어찌하나...초조해지고 불안하지만 일단 문자씹고 가던 길 계속간다...

저녁 먹고 같이 더 돌아다니다가 헤어지고 나서야 통화버튼을 눌렀다

언성이 높다

하루 종일 머했냐는 것이다...그냥 피곤해서 잤다고 둘러댈 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학교 기숙사로 오란다

도착해서 보니 대학 캠퍼스라고 하기에는...예전에 군대 막사였던 걸 그대로 대학이 사용하고 있는데 흡사 재개발 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허름 그 자체다

새로이 철의 장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한 동유럽의 현재 경제상황을 한 눈에 보여 주는 장면이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간섭을 전제로 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포기되고 동유럽 혁명 이후 서구 자본에 정처없이 휩쓸린다

초국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박종성,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셋이서 인근 주점에 가보니 학삐리들이 안주는 없이 맥주만 홀짝거리고 있다

익숙치 않아 자리를 옮기자고 하여 멀리 시내 중심가 레스토랑으로 고고...

겨우 한모금하고 벌써 맛갔다...G 는 머가 그리 좋은지...

이렇게 생을 잊는다...밤 늦도록...기숙사로 돌아가 K방에서 잤다...

드로잉이 수준급인 K...

유럽에서 소피아에서 K랑 즐겁다...마흔 줄 훌쩍 처먹고 하는 짓거리 하곤...

소피아 역에서...빛과 그림자...부쿠레시티행 열차를 기다린다

그 입 다물라...

루마니아로 가는 한국의 큰 오빠를 마중나온 일당들...

K는 중국집에서 후추를 친 요리를 먹고 볼때기에 불났다

루마니아 부쿠레시티 GARA DE NORD 근처, 이 폐허 뒤에 숙박한 호텔이 있다

아파트 공화국 서울의 두더지들, 이 꼬라지 보고 온 몸이 근질근질해서 환장하겠다

미학적 규준을 거스르는 아파트에 대한 집착, 새것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압축근대를 실현하려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산물이다...(장석주, 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미물같은 목숨 5-6 정도는 불 타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촛불배당까지 안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텐데 참...

루마니아의 개들...

몇 해 전 한 일본인 관광객이 이 개들한테 물려 죽었다는 소식에 가기 전부터 긴장했었다

이 놈들 짖어대는 통에 아침 기상나팔꼴이 되었다

이 도꾸들보다 못한 무리들 많다...

'불량국가'에 빌붙어 민족을 배반하는 것도 모자라, 한 때 조상께서 가르침을 준 섬 새끼들한텐 말 한마디 벙긋하지도 못한다...뭐가 그리도 오금조리냐...

저항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박종성)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왕의 딸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Oana

비바람 치는 날인데도 시험 끝내고, 방송 인텨뷰하고 부랴부랴 나와 주어서 기특하기가 이를 데 없다

루마니아 전통 레스토랑에서...

전통음식이라는 거...외지인에게는 낯설다는 뜻과 같다...

여기가 차우세스쿠가 잡혀서 처형 당한 곳이라고 오아나가 알려 준 것 같다

'나는 민중과 계급 개념을 지금도 폐기시키지 않고 있다. 아직 자본주의는 전지구적으로 획일화되고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남북통일의 과제에 있어서 이 개념들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김진균, 불나비처럼)

'자본주의는 폭력이나 정치경제적 강제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가치들을 일종의 상식으로 만드는 헤게모니 문화를 통해 유지되는데...이 문화 헤게모니에 휘둘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에게 이로운 것이 자신들에게도 이롭다고 여기게 되고, 그래서 혁명보다는 현상유지를 바라게 된다는 것...'(고종석, 도시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