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저희집 막내가 과자 사먹는다고 돈을 달라고 해서 500원인가
1000원인가 줬더니, 잠시 후에 빈손으로 돌아오더군요.
정확히 말해서 빈손이 아니고 손바닥안에 조금만 따조하나를
쥐고요.
그래서 과자는 어떻게 했냐고 하니까. 과자는 필요없어서
버렸데요.
기가막혀서 혼내주고 과자를 당장 찾아오라고 하니까,
잠시후 과자봉지를 들고 오더군요.

그 원흉이 누굴까 했는데 바로 이 사람이군요.
자기는 장사에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애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여하튼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딱지 한장으로 성공한 사람-

평범한 마케터에 불과했던 나에게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95년 3월의 일이다. 홍콩에서 열린 한 마케팅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스페인 젊은이들 사이에 ‘타소(TASO)’라는 동그란 딱지가 유행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나는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과자 속에 딱지처럼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판촉물로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제품 속에 작은 스크래치 카드를 넣어 당첨된 사람에게는 공짜로 하나를 더 얹어주는 ‘덤 마케팅’이 유행이었다. 오리온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이 기법은 당시만 해도 성공적인 방법이었지만 나는 뭔가 더 새롭고 획기적인 것을 시도하고 싶었다. 과자 한 봉지를 샀을 때 ‘먹는 즐거움’ 이외에도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개발한 것이 ‘따조’였다. 따조는 지름 4cm의 특수 플라스틱 칩에 만화주인공 캐릭터가 그려진 딱지 형태의 놀이기구였다.

그러나 따조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사내에서 아무도 이 새로운 판촉물의 성공 가능성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원가가 비싸고 불필요한 낭비’라는 지적만 쏟아졌다. 생산과정에서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화주인공 캐릭터 사용권을 내준 W사가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바람에 미국 출장 중 급히 싱가포르까지 달려가서 몇 시간 동안 담당자를 붙들고 통사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1995년 6월 마침내 세상에 첫선을 보인 따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장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교실과 골목마다 따조가 없는 곳이 없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따조를 수집하고 놀이방법을 연구하는 동호회까지 등장했다. 판촉물로 따조를 넣은 제품들은 매출액이 100% 이상 급등해 그야말로 ‘없어서 못팔’ 정도였고,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회사는 불과 몇 달 사이에 흑자로 전환했다.

오리온의 스낵 시장 점유율도 1위를 넘볼 만큼 급격하게 성장하는 등 따조 열풍은 상상하지 못한 성공을 안겨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따조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면, 아마도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따조를 개발하며 평범한 마케터에서 최고경영자로 거듭날 수 있는 커다란 가르침을 얻었다.

열정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깨달음, 그리고 ‘먹는 즐거움과 느끼는 재미를 함께’ 선사하고자 하는 노력이 옳은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김상우·오리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