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50분.
서울백병원 관리과장님이 여태자고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일어났다.
어제는 부산에 사는 와이프 친구들 3명이 놀러와서 어린이 대공원 갔다가 저녁에 삼겹살을 좀 먹어서 그런지 몸이 무거웠다.
참고로 마라톤을 뛸때 1주일 전에는 단백질이 많이 있는 음식-살코기, 베지밀, 콩, 우유, 두부-을 섭취해야 하고 대회 3일전 부터는 탄수화물-밥,떡, 빵, 라면, 스파게티-등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장거리운동시 중반까지는 탄수화물이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근력으로 뛰는 단백질 소모가 된다고 한다.
그래도 3일전부터 1.5리터 이온음료를 한병씩과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물을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는것 같았다.
실지 경기에서 수분을 많이 먹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면 물을 먹어도 몸으로 흡수가 늦어서 위가 출렁거려서 못뛴다.
탈수 방지와 물에대한 흡수력과 부담감을 줄이기 위한 연습을 하는 셈이다.
지난 21일 정구와 호수마라톤에서 하프 연습을 한게 제일 많이 연습을 한것이었고, 이전에는 10키로씩 3번정도 연습한 게 전부였다.
와이프에게 다녀온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섰다. 힘이 들어 뛰지 못하면 무리하지 말고 회수차량을 타라는 조언과 격려을 받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휴일 도로의 적막함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벌써 백마회원들이 많이 와 있었다. 간식이며, 음료며, 타이레놀, 바세린,플래카드, 깃발 등을 챙기고 백병원 동호회원을 태우고 인천으로 향했다.
공항가는 휴게소에서 테이핑을 하고(테이핑이란 스포츠 테잎을 무릎이나 어깨근육, 장단지근육등에 붙여서 근육보조역할을 해서 근육의 피로와 부담을 줄여주는 운동요법이다)대회장으로 갔다.
작년 1회 대회보다 더 큰규모로 치뤄지는 대회라 올해는 가족과 응원단을 포함해서 20,000만명은 족히 넘을 듯 싶었다.
주차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고 있는데 정구가 왔다.

정구에게 괜한 제의를 하지는 않았나 불안했지만 정구가 어떤 놈이냐. 법륜사 공채 22기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인지 하프를 먼저 출발시키고 풀코스를 출발시켰다.
출발지점에서 마이웨이를 대회본부에서 틀어주었는데 한편으로는 밀려오는 감동에 나 혼자 감상에 젖기도 했지만, 또 내가 힘든 풀코스에 도전하는구나 하는-그렇지만 또 하고 싶은- 앞뒤 맞지 않는 논리를 가지면서 대회는 시작되었다.

대형 크레인이 4000명이 뛰는 우리의 모습을 잡으려고 50미터 높이에서 카메라로 우리를 잡고 있었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햇살이 그리 따갑지 않고 바닷가라 시원한 갯내음이 을숙도 하구언을 뛰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드디어 인천대회를 정복하러 내가 온것이다.
방파제역할을 하는 6차선 도로를 사람으로 꽉메운 풍경속으로 달렸다.
초반 레이스에서 5키로 뛸 때 23~25분에 무리를 해서 인지 후반에서 힘이 나지 않아 기록갱신에 항상 실패를 해서 이번에는 무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5키로를 27~8분에 뛰기로 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항상 뒤에 두고 하프까지는 달렸는데 이번에는 후반의 힘 비축을 위해서 먼저 보냈다.
작년 춘천대회때 10키로 뛴 백마(백마회원-백병원마라톤동호회의 약자)들이 연습이 많이 되었는지 나를 30미터 앞서서 달린다.
약간은 위축도 되고 혹시나 내가 그네들보다 뒤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지만 숨이 차지 않는 범위에서 천천히 달렸다.

5키로 급수대, 7.5키로 물스폰지, 10키로 급수대를 차례로 지났다.
한번씩 있는 오르막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내리막이나 평지에서는 속도를 내었다.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다.
10키로 뛰기로 작정하면 5키로 이후가 힘이 들고 하프를 목표로 하면 10키로 이후가 풀코스를 목표로 하면 20키로 이후가 힘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오르막도 잘 참고 잘 달렸다.
탁 트인 도로를 지나 언덕을 많이 만난다.
오르막을 오르는 연습이 덜 되어서인지 오르막이면 항상 주위사람보다 처진다. 다시 내리막, 평지… 다시 오르막….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오르막에서는 조금 걸어도 본다.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약간 들어오니 굴곡이 많고 바람도 잠자는 것이 발바닥에서 열도 나고 심장이 뜨거워지고 숨이 찬다. 멀리 영종도 신공항에선 커다란 비행기가 수시로 눈앞에서 떳다가 앉았다가 쉴새 없이 보인다. 인제대 앞산인 신어산에서 중국 민항기가 사건이 있었지만 세월을 또 그렇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무정하기만 하다.
17.5키로 지점에서 스폰지가 공급되는데 날씨가 더운 관계로 양쪽 어깨 얼굴, 머리에 물을 적셔가면서 뛴다. 물을 흠뻑 적시면 잠시나마 시원한 청량감에 힘이 난다. 1키로도 못 가서 마르겠지만… 자외선차단크림을 바르고 뛰는데 크림 특유의 기름냄새가 싫고, 나는 모자도 싫고, 썬글라스 하나에 헤어밴드만 하고 달린다. 이번에 볕이 따가웠는지 헤어밴드로 인해 이마를 두동강 내버린 했빛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나만이 가지고 있는 흔적이라 그냥 이마를 까고 다닌다.

도심에서 달리는 마라톤대회와는 달리 정식 급수대가 아닌데도 동네 아주머니, 식당 아주머니들이 물을 공급해주는 게 너무 고맙다.
동네 이장집에서는 크게 음악을 틀어준다. 힘 나는 노래, 이를 테면 록키OST, WE~ ARE THE CHAMPION~ MY FRIEND~ , 제목은 잘 모르지만 이런 노래, THE FINAL COUNTDOWN, 이런 類 의 노래, 어떤 이장은 뽕짝도 틀어 놓았다. 때로는 이런 노래가 서서히 무기력해지는 나의 육체에 녹아서 울컥하는 감동도 자아내지만 뽕짝에 흥얼 거리면 달리는 기분도 있다.
1시간 50분 정도 달렸을까?
다시 하프 반환점이 다가 오니까 벌써 하프를 돌아서 같은 동호회원들끼리 교차하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쉽게 만난다. 나를 앞서간 백마들도 한, 두 명이 지나간다.
뛰어오면서 오버페이스를 한 직원 두 사람은 벌써 나의 뒤에 있다. 반환점을 돌아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데 정구가 영준아~ 하는 소리.
정구다.
자식 아직 지치지 않고 잘 따라 오고 있었구나.
동네가 떠나가도록 나도 정구 파이팅을 몇 번 외쳤고 다시 나는 나의 길로 정구는 반환점을 향해 달렸다. 사람들이 왜 달리냐고 묻는다. 그러면 한번 뛰어보라고 한다. 설명이 안되니까… 여하튼 정구가 달리는 모습을 보니 우리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들 잘 지내겠지. 객지생활의 수행의 한 방법으로 마라톤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테이핑과 나의 주법이 맞았나. 25키로를 뛰어도 힘이 들지 않는다.
이제부터 서서히 걷다 뛰다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를 앞서가던 사람들도 서서히 내 뒤로 처지고, 내가 속도를 늦추면 다시 그 사람들이 다시 앞질러 가고,,,
등이 따갑다. 동네 아주머니가 빨간 고무다라이에 바가지를 담가놓고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아직 시골은 이장이나 부녀회체제가 굳건한 공동체 생활과 순박한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바가지를 흠뻑 온몸에 쏟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달린다. 이런 기분이 좋다. 한번씩 내 등에 새겨진 상계백병원 글씨를 보고 백병원파이팅을 외친다. 나도 그네들에게 답례를 한다. 아니면 내가 먼저 파이팅을 외쳐주고…
근데 내가 자원봉사단이나 교통의경들에게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말을 내가 먼저하면 힘이 나서 잠시나마 아픈 다리며 힘든 내 몸이 도리어 힘으로 다가오는 이상한 느낌들…격려라는 게, 힘이 들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힘이 무언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고통이나 고민을 들어주고 하면 나의 고민이 이미 해결되어 있는 현상들…
참 많이 느껴 왔던 것이지만 이렇게 지친 내 육신에 힘이 되는- 그네들에게 던지는 격려가 오히려 나 자신에게 격려가 되는 – 느낌을 많이 받는다.
바닷가에는 MT와서 쌍쌍이 손잡고 다니는 대학생들, 아니면 가족끼리 나와서 솔밭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들. 다들 한가로이 주말을 즐긴다. 뛰어다니는 무리를 보며 대단하다, 어떻게 뛸까? 하는 소리들, 교통이 통제되어 도로에 갖혀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운전자들, 우리를 보는 시선들은 각양각색이다. 35키로쯤 되어서 다시 시원하게 뚫린 해변도로로 달린다. 10명중에 6~7명이 걷는다. 나도 이제 탈진이 되었는지 걷다 뛰다를 반복한다. 각기 다른 환경 다른 사연을 가지고 달린다. 50을 훨씬 넘겨버린 사람들, 시각장애인이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달리고, 철인경기를 하는 사람들, 각 직장 동호회의 이름을 달고 달리고, 양놈들,
다들 나처럼의 힘든 순간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발목관절이 부하가 와서 이젠 절룩거리기도 하고,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잠시 쉬어보기도 하고…
정말 고지가 저긴데…. 5키로만 더 달리면 이 힘든 레이스는 끝이 나는데… 회수차량이나 엠블런스를 타기는 죽기보다 더 싫다. 여태까지 달려온 나의 땀의 노력. 완주라는 나의 목표가 물거품이 되기에…이제 자원봉사자들도 하루종일 아스팔트에서 응원하다 지쳤는지 도롯가에 웅크리고 엎드려 잠든 여학생들도 보이고…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제복을 입고 교통통제를 하는 의경들도 있고…
나땜에 고생이다.
걷다, 뛰다, 또 달린다. 500미터를 뛰기로 한 목표가 300미터도 못 가서 다시 걷고, 또 용기 내어 뛰어보고 앞으로 쭉 뻗은 도로가 보이지 않는다. 40키로,41키로, 진행요원들이 힘내라고 난린데… 나는 힘이 나지 않는다.
5시간 안에 들어 오지 않으면 버스는 출발한다고 내가 회원들에게 이야기 해놓고선 5시간 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나는 결승점과 멀리 있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달린다. 한걸음이 3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부드럽게 오르막을 넘어서니 멀리 결승점이 보인다. 힘을 내어서 또 한걸음. 내라는 응원소리도 꿈처럼 들린다. 멀리 반가운 백마들이 하프를 뛰고 응원 와 있다.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인삿말과 함께 박수소리 환성소리를 들으면서 골인했다.
골인지점의 시계는 5시간 2분을 가르키고 있었고 사람들에 밀려서 늦게 출발하고 찍은 나의 타임워치는 4시간 56분… 겨우 5시간 안에 완주를 한 것이다.
땀에 얼룩져 유니폼은 땀에 절어 소금이 되어 얼룩이 져 있고 377번 골인이라는 진행요원의 힘찬 마이크소리에 골인….
완주메달을 손에 쥐고 나의 펭귄(와이프)에게 전화를 한다. 완주했다고. 그리고 (속으로)사랑한다고…이야기를 한다. 난 확실히 경상도 무시만가 보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한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고마웠다. 뒤따라오던 6명의 백마들과 정구는 아직도 오지 않고…
준비해온 도시락과 물로 허기와 에너지를 채우고 완주의 기쁜 이야기들과 오늘의 레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한편 우리 백마들은 여직원 2명까지 다 들어 왔는데… 23키로지점에서 반환점을 향해 열심히 달리던 정구가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다.
쓰러진 건 아닌지…
다들 기다림에 지쳐 엄마,아빠 따라 나온 애기들도 울고, 가자고 난린데…
나는 차에 맡겨둔 정구의 가방 때문에 가지 못하고 기다리고 맥주 한잔 권하고 있었다.
골인지점에서 5시간 30분부터 6시간 까지 기다렸다. 정구는 보이지 않고 대회본부는 철수 분위기다. 가방, 핸드폰, 지갑 모두 두고 뛰었을 것인데…
정구를 버릴 수가 없다.
6시간 20분 되어 출발. 기사님께 버스를 천천히 몰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서서히 가는데,,,
멀찌감치 터벅터벅 걸어오는 정구가 보인다. 흰 티에 반바지… 정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왔던 것이다. 도로에서 버스 문을 열고 정구를 불렀다. 그 와중에 정구는 골인지점 까지 간다고 빡빡 우긴다. 독한 놈. 더위와 피로에 지친 내 친구.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온음료를 먹게 하고 남겨둔 도시락을 먹인다. 힘들 때 눈시울이 뜨거워 지더란다. 그리곤 안 울었다고 강조를 했다. 나는 뛰다가 2~3번 뜨거워 지기도 하고 흘리기도 한다. 내가 나에게 감동을 하고 고마웠기 때문이다. 내가 완주를 했다는 내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한계상황. 이번에도 극복했지만 허기와 피로도 인간의 의지로 이겨냈다.
같은 시간 정구와 나는 똑 같은 길을 달렸다. 정구는 담에는 절대 안 뛴다고 하는데...
정구는 이제 마라톤에 미칠 것이다. 나처럼.

군에 입대하고 훈련 받을 때 많은 한계상황을 접하게 된다. 그래도 이겨내고 어떤 난관이 나의 앞에 있어도 이겨낼 것 같은 자신감이 나에겐 자리 잡는다. 마라톤도 비슷한 성취감 감동이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또 달린다.
정구야. 같이 달려 주어서 고맙다.
춘천에 같이가자.
같이 가서 완주하고 완주의 기쁨을 춘천닭갈비와 쏘주와 함깨 나누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