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대로 된 겨울이 왔습니다. 선배님~ 잘들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요즘 사이트가 조용한 것 같아..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심심해서 오늘 저녁 생긴 일을 적어 보려 합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구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큰 의미없이 스쳐갈 수 있는 거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저녁 7시30분쯤 오류에서 구로 사무실을 가기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텅텅 비어 있어 내리는 문 옆에 자리를 앉아서
고개를 치켜들어 운행표를 보고 있는데
뒷자리 여자 꼬마애도 운행표를 유심히 보고 있는 겁니다.

 

구로역까지 다 왔는데도 그 여자 꼬마애가 계속해서 운행표를 보고 있었고
순간 저에게 말을 건네더군요.
"신정네거리 지났나요?"
"아니, 운행표 자세히 봐봐. 이 버스는 신정네거리는 안 가는데"

 

무표정의 꼬마애는 아무말도 안 하더군요.
"내가 여기서 내리거든, 너도 여기 내려서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해."
그리곤 같이 내렸습니다.

 

"혹시, 저기 구로역인데 아니?"
"아니요"
"혹시 동양공전 아니?"
"아니요"

 

저는 바로 꼬마가 길 잃은 것을 감지하고 버스를 태워 보내야 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하 2도의 추위에 바람은 왜이리 많이 불던지..

 

"안 춥니?"
"안 추워요."
꼬마는 집에 갈 걱정으로 추위가 안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기 올라가면 롯데마트거든. 롯데마트 버스정류장에 가면 신정네거리 가는 버스가
있을거야. 같이 가자. 롯데마트 아니?"
"네. 그런데 간지가 오래되서..."

 

저는 자크를 코까지 올리고 꼬마와 같이 종종걸음을 걸어가는데...
꼬마가 자기 신세가 걱정되는지? 울기 직전..

 

"으아..."
"걱정마. 내가 길을 알거든, 여기서 굉장히 가까워. 금방 갈꺼야"

 

꼬마는 부모님에게 들은 기억이 나는지

"롯데마트에서는  5614번을 타면 간데요"
"그래? 아마 그 번호가 저기 올거야"

 

쌩쌩 바람을 뚫고 롯데마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운행표를 보니 5614번은 신정네거리를 안 가고 5712번은 신정네거리를 가더군요.

 

"애야~ 여길 봐, 5712번은 신정네거리를 가잖아~"
꼬마를 안심시킬려고 거짓말도 약간 섞어
"나도 예전에 5712를 타고 신정네거리를 가 본적이 있어..기억난다.."

 

그러고 벌벌 떨기를 20분.
꼬마는 중간 중간 몇 차례나 걱정이 되었는지

"지금 몇시예요?", "혹시 노선이 변경된 것은 아니예요?" 물어보더군요.

개봉쪽으로 가는 차선에 꽉 막혀있고 오는 버스들만 계속 오고
날씨는 춥고 귀는 얼얼해진지 오래된 상태..

 

저 역시 마음속으로 "와야해, 올꺼야, 그래 오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돼."
스스로 마인드 콘트롤하기를 몇 번..
다시 마음속으로 "버스가 안 오니 그냥 택시를 태워 보내? 그럼 더 위험하겠지"

 

꼬마에게는 "걱정마, 금방 올거야 봐봐 차가 많이 막혀서 늦는 것 뿐이야~"
그리고 "혹시 모르니깐, 5712번 타면 버스기사 아저씨 뒤에 붙어서 계속 물어봐야한다"

 

10분이 더 지나 5712번이 왔습니다.
저는 혹시나 해서 버스앞으로 달려가 확인사살 "기사 아저씨~ 신정네거리 가죠?~"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다행이다." 안심하던 중 꼬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횡~하니 버스에 올라타 버리네요.

 

잘 가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는데~ 눈길도 주지않고
갑자기 이상하게 약간 기분이 씁쓸하더군요.

 

고맙다는 인사를 바랜 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40분 넘도록 추위속에서 꼬마에게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의미가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걸로 느껴지니 제가 처량하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 어린 나이니깐, 성격이 그런애겠지, 많이 추워서
버스에 빨리 타고 싶었겠지 등등..
스스로 여러 이유로 위로하려 하지만 마음속의 약간 씁쓸함은 지울 수가 없네요.

 

그러진 않겠지만 다음부터 이런 경우 "모른 척해야지"라고 사심이 생기니
아직 전 도를 더 닦아야 겠습니다.

 

저 아닌 다른 사람도 이런 경우 어떨까요?
저와 같이 사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진짜 이런 마음들이 모여 사회가 각박해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