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 최양경 
| 제목 | 남겨진 것들 |
|---|---|
| 글쓴이 | 김영환(56) [ pat@patkim.com ] |
| 작성일 | 2016-02-29 |
남겨진 것들
저 멀리 앞서서 뛰어 갑니다.
따라가 봅니다. 동근인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 개의 재활용 쓰레기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건강", "가족", "친구"라 쓰여진 통 안에 담긴 동근이 흔적들을 꺼내 봅니다
[건 강]
간염 보균자로서 이미 오래 전에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암운를 걷어내려 술담배는 물론 음식도 가렸습니다.
오히려 더 공세적으로 맞불을 놓듯 마라톤과 수영 그리고 싸이클이라는 트라이애슬런에 까지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늘은 점점 짙어져 갔고, 두려움을 걷어 내려 동근인 성냥개피 숫자를 지수적으로 늘여가며 더 빨리 그어 댔습니다. 마침 해마저 지고, 빼곡했던 팔각 성냥통은 바닥을 드러 냈습니다.
무리한 운동은 간을 더욱 지치게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가 아산병원에서의 수술 며칠 뒤에 전화를 걸었을 때 '나 지금 한강을 뛰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가족]
빈소에 딸이 있었습니다. 애 엄마가 '얘 취직했어요'라고 밝게 답하였고, 그 모습을 제단 위 꽃들로 둘러싸인 동근이가 언제나 그러했듯 안경넘어 지긋한 눈길에 엷은 미소를 보태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딸 보다는 아들 때문에 맘 고생을 적쟎이 했습니다. 아들 재수시절의 얘기랑 군 복무 중 병과의 특수성 때문에 생긴 이상을 치료 받아야 했던 사연을 알고 있는 나로선 탈없이 제대 후 복학했다는 대답에 안도했습니다.
상주인 아들에게 부고 연락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 생전에 아버님께서 각 모임별 총무 연락처 등을 세세하게 정리해 놓으셔서 어려움이 없었답니다. 한편 동근이가 몸 담았던 곳은 전세계에 공장이 있는 독일의 글로벌 회사로서, 제철, 제강이나 화학 공정에서의 분위기 가스 등으로 사용되는 특수한 가스 생산 회사입니다.
동근이가 투병생활을 한 지는 일년이 넘었으나 올 1월 중순까지 회사를 나갔답니다. 물론 몸이 상당히 않좋은 상태였음에도요. 아직 회사와 처리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친구]
운구, 부탁을 받고 좀은 당황했습니다.
여튼, 카톡에 공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원자 동기들로 채워졌습니다.
반가웠음에도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운구 지원자 중에는 졸업 후 여지껐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재학중 한 반도 않은 친구를 비롯해서 고인과는 평소에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욱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실 미망인은 우리들이 납골당까지 동행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동근이가 잠든 곳을 알아야 나중에 친구들이 보러 오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죠. 나중에라도 혹시 헤이리 가시걸랑 "참회와 속죄의 성당,(봉안당)"에 잠들어 있는 동근이 한테도 들러 보세요.
우리 운구팀은 벽제 화장장에서 시신을 화구 속으로 들여 보내곤 양해를 구하며 가족들과 헤어졌습니다. 복잡한 심경과 지친 몸 그리고 목동 새벽 길가에서 어거지로 쑤셔넣은 덜 풀어진 왕뚜껑 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 자유로로 차를 몰았습니다.
신물난 종이잔 대신 맑고 고운 영창 피아노 선율이 부러워할 유리잔 부딧힘이 자아내는 엑스터시에 짱어를 곁들였습니다. 노잣돈 잔액에 얼추 그만큼의 제 돈을 보태어 운오가 계산 했고 우린 한걸음 뒤처져서 문을 나섰습니다.
"백수의 피를 빤 잔인한 쉐이들"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전 여기까지 쓰느라 너댓번은 타임을 걸었습니다.
눈가를 흘러 내리는 눈물을 훔치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