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지워도 지지 않을 만큼 나린다, 비를 굄은 오래된

고절한 병중의 하나, 처음 얻은 죽부인을 걷어차고 ‘기차는 9시에 떠나

네’, 풍기역에 내려 한참 버스를 기다릴 제 이 시골이 어찌 조용, 몸매

푸짐한 다방 아가씨들 가끔 한적한 길을 나서메 쭉방이 못 돼 이 시골 구

석에 남아 있을 것, 팔 지 몰라서 안 파는 게 아니다,


부석사로 가는 길은 논에 오리가 논다, 그 오리쌀을 내가 젓수니 5키로

에 2만원,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밥상, 내 안의 신이 무럭무럭 자란다, 그

신이 혼자 산다, 이 자유는 시린 고독의 대가,


수행길이 어찌 이리도 번득인가, 투수콘, 아스팔트 걷어내라, 장사치들

가물거릴 만치 사라지라, 안양루 올라서서 현존최고의 무량수전이 잠잠하

니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 교를 빌미로 민중을 어루꾀는 짓거리는 역사

가 오래다, 해탈도 욕망이려니 난 해탈하지 않음이요, 죽어 한 줌 먼지

로 가겠다는데 왠 불사가 이리도 호사했더냐, 부수라, 그나마 단청을 한

장인이 기법을 전수하지 않고 죽어버려, 그 덕에 투박하게 세월의 찌끼

를 절규함은 다행, 대법원 상고이유서 35면에 진 빼고 올라 이 또한 구법

이려니 영감님네들 잘 좀 봐주소,


삿갓 김병연이 예 와서 읊었더라,


평생을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다음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 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안동김씨 세도 시절 1811년 홍경래 난에 할애비 김익순이 모반대역하여

참형당한 줄도 모르고, 한 번만의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라

고 일필휘지 하여 장원급제 했으니 애미의 진상을 접한 김립이 어찌

떠돌지 않을 수가 있었으리요만, 이 만한 지경에 감탄은 오바다, 떠도는

자의 심미안을 믿지 마라,


이래저래 내 맘 빈틈에 부석부석 돌이 뜨고 6월이 간다, 그 5월은 먼저

갔다, 북악 자락에 폭설 맞은 설원처럼 아카시아 흐드러지던 무혼지경에

상처 그 자체러니 가시 뜯어 매 맞던 유년의 뒤안길은 흔적도 없고 이 치

욕의 꽃바람, ‘난 이 바람맛을 안다’, ‘푸른 기억 사이로 흐르는 연

한 바람’ 교미에 적합하니 오래된 섹스만큼 진부한가,


다섯 번 째 달의 아침볕이 따가와 색안경 너머 아침고요화원 꿀풀의 오래

도록 슬픈 바이올렛이 실낙원이다, 우리끼리 모여 무언의 카르텔, 이뿌이

뿌, ‘피투성이 짐승처럼 꽃 주위를 서성이니’ 내가 넘이가, 그래 신,

구 모두 넘이다, 잘 됐다, 이참에 모두 가라, 150, 200 누가 그딴 거 묻

더냐, 집에 가서 마시라, 메인스트림을 알지 못하는 자들 모여 새 판을

짜라, 해마다 5월의 피 빨아 먹고 사는 거머리들 똬리 풀고 제발 이제 그

만 가라, 030523 골드바 1키로 단성사 횡단,


인왕에서 내려 까는 푸른기와집 좁다, 피를 너무 보았느니 너도 가거라,

국사봉 아래 넓은 들로, 북악 아래는 내 안마당이 될 터 벗은 발로 왕궁

돌담을 뛰고 101단 아우들이 쳐다본다, 광화문 대로는 시도 때도 없이 주

차장인데 이 야만의 문명은 언제 종언인가, 남산자락까지 소달구지 즐길

그 날이 올 것이다, 소등타고 다니던 동래구 좌동의 애꾸형, 그 동생놈

이 고시낭인 막바지 시절 20만원 적선했다,


7월의 서해는 적요한가 싶으면 ‘마음의 갈기가 잔잔히 흔들린다’ 강화

정족산성을 들어서고 전등사 여백에 준동하는 어룽이 여간 재미난다, 형

세의 오목조목함이 숨어 닭털 돋는 장난 하기 딱이며, 대웅전의 나부상

은 여름장마와 함께 해학, 도편수가 노임까지 맡길 정도로 정을 준 주모

들고 튀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데 평생 처마를 받치고 참회하

는 상이 색즉시공, 여전히 ‘한 외간 남자 마음에 불러들이다’


산성을 오를 제 길은 있으되 전인미답이라 싸리가 허리를 올라선다, 장

산 기슭 하늘소 잡던 날의 그 풀내음, 흙바람이 묻어난다, 그래서 내일

도 혹시 살 것이다, 그 윗자락의 일망무제라 난 또 오늘도 이렇게 전생

을 씻어낼까, ‘나를 알아 볼 때 까지’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란다,


1866년의 병인양요, 어찌 놈들이 이 물길을 알고 왔을까, 필시 하늘에 계

신 거룩하신 아버지가 인도하였을 것, 그 아버지는 아직 노망이다, 유일

신 유일제국,


다래헌 아래 600년 은행수를 타고 오르는 이끼, 그 ‘잦아들지 않는 푸

른 경련이여’ 김포, 강화 들녘의 모가 서슬 푸르게 자라,


회심곡 진혼의 북이 새벽을 깨고 기승전결 신음이 귓전에 여진한 참에 창

너머 사각으로 종로타워 유령처럼 가랑이 벌린다,


물이 도는 청풍계골에 가재 잡으러 갈 거다, 이 골 아래 서울을 줄 테니

경배하라, 주도 못 묵나, 예수는 바보다, 한번 절하면 세상을 다 가졌을

것을, 수십년 망녕이 떠돈다,


위풍당당 최대한 비겁하게 봄에서 여름으로 가자, 신호조작 없이 가는 아

침길에 천둥처럼 사랑이다,


‘모나게 살자’

‘아찔하다 타락의 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