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0일 대구월드컵경기장은 햇살과 기대감으로 넘쳐났다. 6월 4일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한국은 월드컵 첫 승을 달성했다. 팬들은 내심 미국까지 잡고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 지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미국은 강했다. 1차전에서 우승 후보 포르투갈을 3-2로 꺾었던 탄탄한 전력을 한국전에서도 선보였다. 미국은 한국의 공세를 잘 막아내다가 전반 24분 클린트 매티스가 선제골을 잡아냈다.

한국은 전반 39분 페널티킥 기회를 얻어냈지만, 이을용의 왼발을 떠난 공은 골키퍼 브래드 프리델의 손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은 미국을 계속해서 몰아 붙였지만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에게 패해 16강이 멀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행히 교체로 들어온 안정환이 이을용의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넣으면서 불안은 안도감과 승리를 향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기회가 왔다. 경기 종료 직전이었다. 이날 한국팀을 울고 웃긴 이을용이 왼쪽 측면에서 미국 수비 두 명을 제치고 완벽하게 공간을 열어 제쳤다. 페널티 지역에는 최용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을용의 땅볼 크로스가 최용수에게 연결됐다. 모두가 역전 골과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최용수의 슈팅은 골망이 아니라 하늘로 치솟고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을용도, 최용수도 얼굴을 감싸 쥐었고 팬들도 탄성을 내질렀다.

한국이 16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했기 때문에 웃으며 기억할 수 있지만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논쟁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떻게 스트라이커가 그것도 못 넣을 수 있나’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을용의 패스가 타이밍이 너무 늦었고, 강도도 너무 강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건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의견은 어떨까? 두 사람은 서로를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은 숨기지 않았다.

최용수는 '스포탈코리아'와의 지난 인터뷰에서 “(이)을용이하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티격태격하고 있다”면서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을용이는 ‘수비 커버가 들어오는데 어떡해’라고 하는데, 나는 슈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템포가 죽으니까 힘을 빼버렸다. 그러다가 힘을 뺀 순간에 갑자기 공이 와서 그냥 ‘어어~’하다가 발을 갖다 댄 꼴이 됐다. 슈팅이 아니라 그냥 발로 공을 건드렸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와서 말해봤자 다 변명일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라며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패스를 내준 이을용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는 “좋은 골게터에게 좋은 패스가 가도 못 넣을 수 있는 게 축구”라면서 일단 ‘최용수 책임론’은 배제했다. 이어 “사이드 라인을 치고 가서 한 명, 두 명을 제쳤는데, 패스를 한 번에 바로 주려고 할 때 상대 수비수가 ‘통밥’을 재고 있었다. 그래서 패스를 주려다가 미국 주장 선수인가? 머리 긴 애가 앞쪽으로 쏠리는 걸 보고 패스 타이밍을 한 번 늦추고 나서 줬다. 패스를 바로 줬으면 바로 커트 당했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페인팅을 한 번 줬는데 얘가 움직이더라. 그래서 그 선수가 움직이는 사이로 넣어줬다. 그런데 (최)용수 형은 설마 하다가 볼이 오니까 툭 댄 것이 떠버린 거다. 나중에 '야, 주려면 바로 줬어야지'라고 했는데 바로 줄 수가 없는 걸 뭐. (웃음) 내 생각에는 준비가 안된 게 컸다. 사실 끝나고 나서도 (홍)명보 형이 용수 형한테 '야, 너는 그것도 못 넣냐?'고 그랬다. 그것 때문에 한참 형들이 약 올리고 그랬다. 용수 형이 그걸 넣었으면 분위기 타서 컨디션이 쭉 올라오고 그랬을 것이다.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다.”

결국 최용수와 이을용 모두 당시의 아쉬운 장면에 대한 명백한 가해자도 명백한 피해자도 아닌 셈이다. ‘골은 놓쳤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특히 그라운드 위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다행히 이을용이 멋진 해답을 제시했다. “누가 잘했니, 못했니 그런 건 없다.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패스를 잘 줘서 단독 찬스를 만들어줘도 그 선수가 골 넣을 가능성은 50%다. 골키퍼가 있기 때문이다.”

스포탈코리아  정리=류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