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 박수진 선배님의 글을 필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모셔 왔습니다.

 

우리 오공들에게 [동고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

 

 

42회의 42년 전 오늘

 

우리 42회가 졸업한 지 40년, 올 가을로 예정된 졸업 40주년 행사가 기다려 진다. 이 번 행사는 부산의 정상필 총무의 안내장에는 의하면 미국에 있는 동기들도 많이 참석한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졸업은 한 지 40년이지만 42년 전의 오늘을 돌아 보고 싶어진다.우리가 2학년 때 오늘 8월 23일  교사가 불 타 없어지는 슬픔을 겪은 날이다.1964년 8월 23일, 여름 방학 중에 일어난 화재 사건에 우리 모두는 울어야 했다.방학 중이었지만 이 날은 구덕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이 있는 날이라 대부분의 학생이 구덕운동장에 있었다.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눈물 흘리며 울어야 했던지 부모가 돌아가셔도 곡은 할 지 언정 잘 울지는 않을 것 같은 지금 나이에 생각하면 그 순수한 마음이 그립다.

구덕 운동장에서 마른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축구 관람을 하고 있는데 경기가 끝날 때 쯤 동래고 학생들은 빨리 학교로 돌아가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급히 학교로 가 보니 이미 목조 건물의 본관과 후관이 새까맣게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고 아직도 군데 군데 연기가 모락모락,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교사 앞 운동장 스탠드 뒤에 나란히 서 있던 고목 같은 벗나무도 다 타버렸으니 목조 건물의 불똥이 엄청 튀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본관과 후관의 교실이 흔적도 없이 전소되었으니 대형 화재 사건이었다. 목조 건물이라 화재 발생 후 전소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고 소방차기 있긴 있었을 것 같은데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화재 다음 날 구덕 운동장에서 무슨 대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축구 결승전에서 서울의 강호 동북고등학교를 누르고 우승을 하여 동고 역사상 이처럼 큰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화재 후 2학년 2학기 개학하자 전교생은 교실이 없는 학교를 다녀야 했다.

41회부터 44회 까지 화재로 인한 피해를 많이 본 셈인데 그 중에서도 42회가 2학년 2학기부터 졸업 할 때 까지 이웃 학교로 옮겨 다니고, 보로꾸로 지은 가교사에서 삐꺽거리는 책걸상에 앉아 공부를 했으니 피해를 가장 많이 보지 않았나 싶다. 43회도 가교사에서 공부한 기간은 같지만 우리는 그 중요한 3학년을 가교사에서 공부했으니 피해를 더 보지 않았나 싶다. 보로꾸 교실은 우리는 土室이라 불렀던 것 같은 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교사의 학교 생활이 나름대로 추억이 많다. 교실이 좁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바닥은 바로 흙바닥이라 울퉁불퉁하여 책걸상이 흔들거리고 공부에 집중이 안 되고,  신축교사의 공사 소음으로 시끄럽고 산만하고 허둥허둥 보낸 고등학교 3년의 후반부였다. 토실이면 어떻고 기와집인들 공부를 더 했겠느냐만은 42회 친구들은 졸업 후에도 교실없는 핑계를 많이 대곤 했다. 교실를 나서면 학교 전체가 공사 자재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교내 어디에도 정 부칠 곳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학교 동쪽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3학년 가을에 사진을 많이 찍은 것 같다.

 우리가 졸업할 때 마지막으로 한 일이 졸업식 날 각자가 쓰던 책걸상을 완공된 신축교사의 해당교실에 옮겨 주고 앉아 보지도 못하고 나온 일이다. 후배들이 좋은 교실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기대와 함께 칠판에 뭐라고 한 마디 쓰고 끼리끼리 흑백사진 한 장씩 찍고 교실을 나왔고 바로  교문을 떠나 졸업을 한 것이다. 1학년 7반 2번으로 시작 해 3학년 6반 2번으로 3년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그렇게 끝냈다. 키가 작아 키 큰 애들과는 같이 놀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같이 노니 내가 많이 큰 셈이다.

화재 후에는 화재에 대한 말 들이 많았다. 화재 원인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학생이 방학 중에 학교에 공부하러 왔다가 담배꽁초를 목조건물의 교실 바닥 관솔 구멍으로 집어넣어 교실 나무 바닥 밑에 쌓여 있던 먼지에 인화하여 불이 났다는 것이다. 불이 난 교실이 우리 2학년 4반 교실이라는 말이 있어 우리 반 급장 서주혁 군(졸업 후 작고)과 나는 2학년 4반 학생 대표로 검찰에 가서 증언을 했다. 내가 검찰에 가서 급장과 같이 증언 한 것은 반에서 키도 제일 작고 순진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담임 선생님의 배려가 아닌 가 생각한다. 당시 담당 검사 이름이 이중근이었는데 서주혁이와 나는 검사 별명을 루트라고 부른 기억이 난다. 검사 질문 중에 기억이 나는 것은 교실 청소할 때 교실 나무 바닥에 관솔 구멍이 있더냐고 물은 것 같고 자세하게 물으면 서주혁 군이 검사님 왜 유도심문하시느냐고 답변을 회피하고 루트 검사가 유도심문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서주혁 군은 우리 형님이 부산 법대 교수(서주실 교수님)라면서 당당하게 답변한 기억이 나는데 서주혁이는 똑독한 친구였는데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먼저 갔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 뒤에 들은 얘기는 담배 피우고 불 낸 학생이 3학년인데 우리 2학년 4반 교실에 와서 공부하다가 불냈다고 그 학생이 퇴학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 난 후에 이런 저런 일 들이 많았다. 2학기 중간에 2학년 4반 담임 선생님이 김만호 선생님(영어)에서 도종익 선생님(기하)으로 바뀌고 교장선생님도 할아버지 교장선생님이신 강삼영 선배님이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립인 동래여고로 가시고 홍금술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입학할 당시의 정사용 교장 선생님까지 3년 동안 세분의 교장 선생님을 모신 셈이다.  2학기 시작하자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엄격하게 색출하고 금지하였다. 다른 반은 모르겠으나 우리 2학년 4반에서 대표적인 희생자가 나왔다. 우리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 했고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친구 좋아하는 김해 대동에서 유학 온 안점호 군이 동래극장에서 담배 피우다가 규율 선생님에 발각되어 퇴학을 당했다. 뒤에 들리는 소문에 북부산 고등학교로 전학 가서 많이 방황했고 졸업 후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 겪었다는 것이다. 뺨 한 대 맞고 말 것을 퇴학까지 당했으니 억울한 면이 있지만 화재 후의 비상시국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학교 신축은 조속히 이루어 진 셈이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으나 학교 신축은 그 당시 서울에서 모교 선배님들이 적극 나서서 힘을 합쳐 빨리 지을 수 있었다고 얘기를 들었다. 모교 신축을 빨리 할 수 있었던 숨은 이야기는 동고 100년사 책에 30회 신동일 선배님의 증언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42회는 새 교실에서 공부를 못해봤지만 빨리 신축할 수 있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 와중에 한일 회담 반대 데모는 연례 행사 처럼 했고 3학년 때 데모는 연산동 벌판을 지나 서면, 범일동까지 진출했으나 나는 양정에서 경찰에 잡혀 동래경찰서로 실려 와 경찰서에서 밤을 세운 기억이 난다.

42회의 42년 전의 추억들이 동기 한 분 한 분이 쌓여 있겠지만 이런 추억들을 공유하기 위하여 10월 28-29 무주에서 하는 졸업 40주년 행사에서 많이 만나고 싶다. 나는 고교 3년이 객지생활이어서 친척집, 하숙, 자취생활로 17번을 옮겨 다녀야 했다. 17번 옮겨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집이 있다. 학교 교문 앞의 칠산동 초가집에서 자취방을 구해 자취를 했는데 초가 삼간에 조그만 문간채가 있었다. 시골에서야 초가 삼간을 많이 보지만 동래에도 그 때까지 초가 삼간이 있었다. 부엌 한 칸에 방 두칸, 그 중에 방 한칸을 세를 주고 방 한 칸에 식구가 다 살았으니 참 궁색한 집이었나 보다. 성은 심씨로 기억되는데 내 보다 몇 살 위인 아들은 직장 다니면서 돈벌이 하는 것 같고 그 아래 딸은 정신이 좀 모자라는 애였다. 주인 어른은 무척 어지신 분이었는데 안사람 바가지에 고함 소리가 가끔 들렸고, 사랑채에는 주인의 고모인 나이 드신 꼬부랑 할머니가 혼자 기거를 하고 �模甄쨉� 나는 그 할머니 덕을 많이 봤다. 할머니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내가 여기에 공짜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방 값을 꼬박꼬박 내고 밥도 내가 해 먹는데 나를 구박하고 손을 벌린다면서 괘심하다고 나에게 말씀하시면서 연탄불도 갈아 주고 반찬도 주셨다. 그 할머니는 가족은 없었고 그 방에는 기장 사신다는 폐병 걸린 창백한 얼굴의 중년 여인이 가끔 왔는데 딸은 아닌 것 같고 시집 쪽 조카가 아니었나 싶다.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꼬부랑 할머니는 얼마까지 사셨는 지 알 길이 없다. 여기서는 언양에서 온 손수일이와 그 뒤에는 창녕에서 온 IMF때 작고하신 서종석이 하고 같이 자취를 한 것 같다. 이 집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행복이며 희망이라는 가치 보다는 가난 속에 같혀 버린 그 집 식구들의 사는 모습이 오래 각인되어 있고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시절, 꿈 많은 시절이라는 것 만 빼면 3년 객지 생활이 고생이었지 아름답고 여유있는 추억은 별로 없고, 연탄불 갈고 연탄 중독되어 어질어질하고, 밥하고 반찬 만들고, 밥 솥 태워 먹고, 시골서 쌀자루 보리자루 밑반찬(주로 된장 간장) 갖다 나르고, 친구들에게 내세우고 싶은 추억도 별로 없다. “봄 바람 동래 온천, 여름 한 철 송도요” 하는 그 시절의 바로 거기인데도 재미 나는 일 보다는 고생스런 추억이 더 많은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시작한 객지생활이 아직도 객지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도 명절이면 고향으로 가야하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도 객지는 객지인 것이다. 실제로는 내가 지금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제일 편하고 무엇이든지 손 쉬운데도 고향에 가면 마음이 포근하다. 고향은 마음속의 고향이다.

이 글을 읽는 친구들아 고등학교 때 추억 한 장면씩 여기에 올려라. 고등학교 때 3년 잠간 만난 그 인연이 나이 60인 지금도 이어 오고 앞으로도 이어 갈 것이니 그 긴 인연을 호롱불 심지 돋우듯이 좀 돋아 보자.

정근이,  양정 니나노 집에서 안점호 위로해 준다고 젓가락 장단 맞추며 춘  자와 놀던 이야기 좀 올리고,

상우야,밥 굶어 가며 고생해 가며 악착같이 공부한 이야기도 좀 올리고

인섭이 용찬, 동북고에 이겨 축구 전국 우승한 주인공의 감격스토리도 좀 올리고

두원이 성근이, 전국 정구 대회 우승한 이야기도 좀 올리고,

홍이, 배구 선수 하면서 재미 나는 에피소드도 좀 올리고

승항이, 육체미하며 폼 잡은 얘기도 좀 올리고,

재석이, 18번이 왜 “맨발의 청춘”인지도 좀 밝히고,

재진이 영어노래 실력은 고등학교 때 배워서 평생 써 먹는지도 좀 밝히고

정기는, 얌전히 공부만 하면서 여학생 꼬신 얘기도 좀 올리고,

하여간 다른 친구들도 그 때 그 시절에 재미나는 이야기 여기에 좀 올려라.

그 시절 추억이 아니면 나이 60에 세상사는 얘기라도 좀 올려라.

용건이, 호텔에 있으면서 숨은 얘기도 좀 올리고,

기환아, 韓露해운 사장하면서 러시아 출장가서 재미 본 얘기도 좀 올리고,

재일이, 용아장성 산 타다가 산신령 만난 얘기도 좀 올리고,

광주, 지방에 머물면서 재미나는 일 있으면 좀 올리고,

기순 대만 살 때 타이페이 이발소에서 재미 본 얘기도 좀 올리고,

인천의 인대야 펜팔로 사귄 친구와 결혼한 사연도 좀 올리고,

부산의 영국아, 모교 앞에서 부동산 하면서 친구 술 사준 이야기도 좀 올리고,

다른 친구들도 이 보다 더 재미나는 이야기 훨씬 많을 건 데 한 장면씩 올리라.

 

많은 얘기 올려서 42년 전 오늘 모교 화재로 울었지만

잠간 쉬면서, 커피 한 잔하면서

오늘은 너희들 올린 글 읽으면서

혼자서라도 한 번 웃어보자.

그리고 졸업 40주년 행사에 많이 와서

별로 예쁠 것 같지 않은 너희들 얼굴이라도 한 번 보아야

60고개를 넘을 것 같다.

한 번 넘으면 빠꾸가 안 되는 그 60고개를 같이 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