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1시간 정도 막힌다. 폴란드로 가는 컨테이너가 끝도 없이 줄지어 있다. 국경 검문에 시간 너무 걸린다. 열차 여행에서 느끼지 못하던 유럽의 국경을 지대로 감지했다. 장장 19시간 만에 바르샤바 도착. 우선 카드가 여기서 먹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여기서도 불능이면 도무지 앞일을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적이 없어서 현금을 넉넉히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드가 먹힌다. 십년감수한다. 휴... thanks god!!! 내일 아유슈비츠로 갈 차편을 예약하려 하는데 오후 6시가 지나서 안 된다고 제발 봐달라고 통 사정이다. 아이를 델러 가야하는 주부인가보다. 그럼 할 수 없지 머.

한 눈에 들어오는 폐허 같은 도시 외관. 영화 피아노에 나오는 바르샤바와 영락없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이미 폴란드가 사라져 버린 조국에 태어난 쇼팽이 이사 온 바르샤바, 다시 비인회의 결정으로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 무려 123년간 국가 없이 살아남은 폴란드 민족의 저력...바르샤바 봉기의 격전지라서,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시에는 성십자가 교회에서 쇼팽의 심장을 꺼내가기도 했다는데...

숙소를 찾아 나서서 버스표를 어디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던 표를 주면서 호텔이랑 차표 예약을 안내해 줄 테니 따라 오란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남학생이었다. 이 아이가 부지런 떨며 낯선 방문객에 설명하는 꼴이 우스웠던지 같은 버스에 탄 여자애가 이 쪽을 쳐다보면서 웃음을 참느라 애쓰면서 무슨 말 하는지 귀를 쫑긋하는 게 귀엽다. 자신의 조국이 EU에는 가입되었지만 아직 경제가 미숙하여 유로도 쓰지 않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조국을 이미 책임지고 있는 엘리트의 면모가 엿보이는 똘남이다. 과거 공산 정권 시절 할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서는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면서 사회주의에 치를 떨고 자본주의에 아주 희망적이고 고무적이고 상기되었다. 얘야, 자본주의 하고도 피눈물 나면 그 땐 어떡하니. 서울 한 번 와서 바바라. 꼬락서니 어짜고 있는지. 하필이면 주말에 국제회의가 있어서 호텔에 빈 방이 없다. 다른 호텔에는 방이 딱 하나 남았는데 오늘 1박만 가능하단다. 이 친절한 남학생 집에 가서 하룻밤 신세질까도 생각하고 가족 사항 파악해보니 그 흔한 누나가 없단다. 그럼 난 이 호텔에 묵어야겠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반짝반짝한데다가 싱글 룸이 웬만한 더블 룸보다 더 크고 큰 창으로 아카시아가 벅차게 안긴다. 한 도시가 이처럼 향기로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샤워하고 머리 속에서만 활자로만 맴돌던 멀고 아득했던 바르샤바를 보러 나간다. 부나비처럼 화려한 거리를 찾는데 어디가 어딘지 나타나지 않는다. 길을 물어 번화가로 갔으나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인파는 드문드문 한적해 버린 뒤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여기로 저기로 쏘다니다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티를 빨래해서 창가에 걸고 잠든다. 달콤한 봄바람에 눈을 떠 전형적인 유럽의 브렉퍼스트 한 포크하고, 리셉션에다 남은 루트에 대해 도와 달라고 했더니, 바르샤바에서 아우슈비츠를 거쳐서 다시 독일로 가는 일정이 숙소를 함께 정하는 일과 함께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채연을 꼭 빼닮은 폴란드의 아가씨가 무려 4시간 이상을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자랑스런 표정으로 모범생이 선생한테 숙제검사 받을 때의 그 당당함으로 생글생글하면서 출력을 하고서는 일일이 상세하게 알려 준다. 감동이라는 게 이런 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보통 호텔 리셉션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던 터였다. 어제부터 느낀 다른 도시에서 보지 못한 따스함, 호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들은 아직 돈 맛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고 더러운 돈 때가 덜 묻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바로 돈으로 계산되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아직 완전히 진입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언제까지 이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씁쓸해지고 우리도 이전에는 이랬을 시절이 있었을 것이기에 분명 잃어버린 실낙원의 옛 모습이 이에 가까운 것이리라.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던 시절에도 폴란드는 이들을 다 받아들이고 신분보장과 신앙의 자유까지 허용하여 유대교회의 전통이 유지되었다는 것과 통하는 것인가.

의외로 도시에 볼거리가 없다 했더니 내가 도착한 곳은 바르샤바의 전통적인 볼거리가 있는 올드 타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로 다시 가기에는 시간이 없다. 열차표 예약하러 갔는데 직원이 영어가 통하지를 않아 난감하던 차에 지나가던 아가씨 둘에게 부탁했는데 1시간 정도를 도와준다. 네덜란드, 벨기에 거쳐서 아우슈비츠 가려고 하는데 가 보았느냐고 물으니, 그런 데를 왜가나 전혀 가고 싶지 않다고 일언지하. 폴란드 주간지에 독일 메르켈 총리가 젖가슴을 드러내고 쌍둥이 형제인 폴란드 대통령과 총리가 하나씩 빠는 합성사진이 실렸다(한겨레 2007. 6. 27.). 독-폴의 감정이 한-일 관계랑 비슷할까.

역시 내 여정이 의외로 쉽지가 않은가보다.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했더니 시간이 돼서 가봐야 한다면서 극구 사절했다. 친절하고 순수한 경리 아가씨들, 시간이 갈수록 폴란드가 달리 보인다. 아...낙원이구나...때 묻지 않은 것이 이런 거구나... 같은 폴란드라도 사람들이 붐비고 상권이 활발한 카토비차에서는 이와는 많이 달랐다. 버려진 가족이 있었고 꼬마 아이가 웃통을 벗은 채로 구걸을 다닌다.

‘사유재산은 거짓을 숨기거나 정당화시키며, 이익의 충돌을 가져오고, 모든 거짓과 위선과 죄악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는 인간을 자기가 잘살기 위하여 도구로만 간주하는 사회를 비인간적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는 사회의 도덕성, 그리고 이중적인 얼굴을 하고 거짓된 냉소주의로 가득 찬 사회와 결코 화해할 수 없습니다. 그 야만적인 인간관계가 바로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여하한 형태의 정신적 도덕적 노예상태와 투쟁하기를 원하고 또 앞으로 투쟁할 것입니다’(막심 고리키, 어머니)

에로틱하지 하지 않은 철학, 섹스가 배제된 사상을 믿지 않고, 순수한 의식은 육체 속으로, 섹스 속으로 에로스 속으로 침투해야 하는데(곰브로비치), 주어진 시간의 한계로 다 담지 못하고 이동한다.

버스로 그 아우슈비츠로 간다. 현지에서는 오시비엥침이라고 한다. 숙소가 올림피스키라서 기사한테 거기 좀 내려달라고 말하는데 앞좌석에 아가씨가 빤히 쳐다본다. 왜 그러나 했더니 거기가 바로 자기 집 앞이었던 것이다. 자기랑 같이 가서 자기 내리는 곳에 내리면 된다는 것인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청년이 자기 차가 있으니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참 친절도 하셔라. 고맙기는 한데 엉아가 년이랑 야그하고 있잖아, 눈치가 그래 없니. 바르샤바 호텔에서 애써서 예약까지 해 준 곳이다. 오래 되긴 했는데 작은 방에 소파까지 있고 밖은 온통 숲으로 녹색지대이고 하늘엔 까까머리 시절 쳐다보던 하얀 달이 저 멀리 아유슈비츠 수용소 위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걸려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열망 때문에 그 두렵고 황량한 잎들 또한 그토록 무성하였다’

오던 길을 기억에 되살려 수용소까지 가보려고 길을 나섰는데 무섭다. 그 수용소로 가던 철로는 어찌하고 있고, 울음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던 영혼들을 기억하고 있을 그 강은 또 어이 흐르는지 마법처럼 발길을 놓는다. 버스로 올 때는 가깝던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 길을 다시 돌아서 숙소를 찾아갈 수 있을지 겁도 난다. 자꾸 뒤돌아보면서 길을 눈에 익힌다. 다행히 간간히 오가는 사람이 있어서 덜 무섭기는 한데 이정표가 이어지고 그 곳은 쉽게 닿지 않는다. 강물 위로 달빛이 퍼지는데 은파가 이렇게 서정적일 수가 있을까 이곳이. 이건 모순인가. 살고 죽는 것이 헛갈리는 것인가. 그 죽음은 무엇이고 나는 오늘 이 다리 위에서 아무 근거 없이 살아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아무래도 수용소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다리도 아프고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다음날을 기약하고 돌아간다. 머리가 빈다. 이것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 메인가... ‘마음이 물소리를 따라 간다’

풍경이 운다

적요의 강을 치솟아오르는...

아, 하고 온몸이 짜릿해 온다

허형만, 등 푸른 그리움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가 유태인, 집시, 소련군 포로까지로 확대되었는데, 도시와 떨어져 있어 증축과 격리가 용이하고 철도 요충지라 유럽 각지에서 수송이 편리한 이유로 여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그리로 간다. 나는 긴장하고 있는 것인가. 순례자인가. 목격자가 되기 위해서인가. ‘내 뜻이 아니건만 나는 온갖 시대의 연대기 가운데 가장 무서운 이성의 패배와 가장 흉포한 야만적 승리의 증인’이 되려 했던 것인가. 입구에 다다르니 이미 전 세계 방문객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도착해가지고 인파를 이루었다. 막 들어서려는데 일본인 여성이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참...참...이놈들아, 아시아에서나 좀 잘하지 그래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다니니, 오지랖도 넓구나, 이게 탈아입구냐. 가난 때문에 위안부를 선택했다(오마이뉴스 2007. 8. 14.)고? 언제까지 그러고 조동아리를 놀릴 작정이니.

한국어로 된 안내서를 사들고 입장한다. 정문에는 사진에서 보던 바로 그 문구,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가 감투나 되는 듯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자유의 이름으로 무고하게 인류를 말살했다.

수감자들이 강제노동에 들고 날 때 손쉽게 통제하려고 오케스트라가 행진곡을 연주하였다는데, 가스실을 들러 수십 개의 동마다 돌아본다. 방문객들이 한결같이 침통하고 서로 말이 없다. 유태인들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보내져 명부에 등록되지도 않은 채로 희생되었다. SS 장교와 의사가 노동이 가능한 인원을 선별하고 나머지는 가스실로 보내 15-20분 사이에 질식사하였고, 그 이후 금이빨, 반지, 목걸이 뺐다. 이곳에서만 유태인 100만명이 사라졌다. 이 중에 아이들이 20만명이라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총살당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엄마가 왜 아무 말도 없이 자기를 꼭 끌어안고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한 방의 총성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먼 길을 갔을 것 아닌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들이 여기 가스실에서 죽어 나갈 때 하늘에 계시는 아바 아버지는 멀 하셨는지.

 

눈이 멀으셨나, 귀를 잡수셨나. 겨우 여기서 다 죽이려고 엑소더스하게 했는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지하에도 들어가 보는데 온 몸으로 퍼지는 냉기에 말 그대로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주뼛해져서 감당하기 힘들다.

이곳에서 죽어간 꼬마 아이들 옷을 보관한 방에 빨간 여자애 스웨터가 색이 바래져 있다. 쉰들러 리스트에 나온 칼라로 처리한 그 아이의 옷일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모르고...봉오리인 채로... 여기 오시비엥침에서... 스러져... 갔...다. 무엇 때문에... 왜...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울렁인다. 방을 나오는데 눈물이 그렁해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고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급히 발길을 옮긴다. 마당에 미류나무가 열 지어 초여름 태양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허공이, 무심한 하늘이, 바람이 이 미류들을 자라게 하였나. 유럽은 이 슬픔을 이기고 민족을 넘어 인간으로 가는데 동방의 한 나라는 민족에 걸려 한 발을 앞으로 디디지 못한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권력과 역사는 하류였다’

아우슈비츠 오시비엥침을 뜬다. 기약하지 못하고 떠난다. 올림피스키 호텔의 리셉션 아가씨는 흥미로우냐, 구경 잘했느냐고 묻는데 어케 응대를 할 지 말문이 막힌다. 버스로 기차로 다시 독일길에 오른다. 차표 좌석대로 찾아가니 8인실 방인데 한 노인이 내 좌석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신다. 7명 중에 6명은 발랄한 폴란드 여대생 다섯에 남학생 하나다. 포즈난 대학생들로 쿠라코프에서 워크샵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이 방에서 5시간 동안 동행을 했다. 야리야리한 마틸다 요모조모 물어본다. 이메일 한다더니 소식이 없다.

 

폴란드어로 격론을 벌이길래 무슨 내용이냐 그랬더니 담당 교수에 관한 거란다. 더 자세히 물어 보고 싶었으나 대화를 방해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한 년은 허벅지를 다 드러내고 입 벌리고 잠에 빠져 있다. 지들끼리도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깔깔거리고 사진 찍고 날리다. 이방인인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나가 된다. 남자들이 처음 결혼 땐 체코 여자랑 하고 두 번 째는 폴란드 여인이랑 한다고 하길래, 그럼 니가 내 세컨드 할래 그랬더니, 그런 말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체코 여자가 제일 이쁘고 그 다음에 폴란드 여자라는 뜻이고, 기분 나쁜 말이 아니라서 나름 자부심을 가진단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니까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하여, 그럼 내가 독일 건너가면 확인해보겠다고 하자 웃음 터진다. 우리식으로 하면 경춘선 엠티 가는 열차안의 고성방가 모드 비슷한데 너무 신나게 논다. 노래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자 같이 웃어 주고 즐거워한다.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 서울에서 귀 동냥해 둔 러시아어로 다스비다냐 했더니 금새 표정이 달라진다. 과거 동구권 국가라서 기본적으로 러시아에 모두 익숙한가보다. 한국어로는 어떻게 말하냐고 물어 보길래, 같은 안녕이지만 만날 때랑 찢어질 때 억양이 다르니까 잘 들어봐라. 시범을 보여 줬더니 배를 쥐고 반복하면서 차에서 내려서 바이할 때까지 안뇽 안뇽하면서 재미있어 한다.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폴란드 안녕...

포즈난에서 내려 손 흔들어 보내고 IC 3인용 쿠셋(야간 침대열차)에 올라 방에 가보니 호텔처럼 깔끔하다. 저 멀리 상공에 번개가 번쩍인다. 세면대도 있고 아늑하기 그지없는데 나머지 침대 둘은 비어 있어 독방처럼 차지하고 푹 잘자고 프랑풀트에 아침에 도착. 창밖에 마인강변이 유혹한다. 열차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이다. 서울로 가기에는 아직 여유가 있어 어디로 갈까 역사 안을 어슬렁거린다. 2002년에 갔던 하이델베르크 다시 가서 철학자의 길을 함 거닐어 볼까, 아님 안 가본 곳으로 갈까.

타임테이블을 보고 시간 계산을 해보니 쾰른이 적당하다. 여기서 쾰른이라고 하믄 얼른 못 알아 듣는다. 콜른이라고 한다. 왜 그런고 했더니 과거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연유로 콜른이라고 한단다.

‘피아노는 터부이다. 이것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한 파괴예술가 백남준이 쾰른시대 쇼팽의 곡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와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튜더에게 샴푸 세례를 한 뒤 사라졌다가 근처 술집에서 전화로 해프닝이 종료되었다고 알렸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백남준)

검게 그을린 대성당 외벽의 조각들이 파리 노틀담 사원과 흡사하다. 개신교는 교회도 아니고, 그리스 정교는 결함이 있으며, 이슬람은 사악하고 잔인한 종교란다. 베네딕토 16세의 말씀이다(한겨레 2007. 7. 12.).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구원 받을 수 있다(한겨레 2007. 7. 31.)는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니. 알라는 무슨 썩은 홍어좆이라도 되니. 주인 있는 집구석에 가서 선교한답시고 영혼을 도적질하지 마라. 내가 세상에 온 단 하나의 이유는 속진에 놀고 깊이깊이 나락하기 위한 것이다. 기껏해야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넓은 광장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고 마임을 하는 예술가, 로마 병정의 치장을 한 무리들, 서로 자신들의 역할에 열중이고 누가 누구를 간섭한다든지 방해한다든지 하지 않고 섞여서 논다. 명동, 인사동에서 보던 free hug가 여기서도 등장해 남자 품에 안겨 본다.

한 켠에서는 유대인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레바논의 아이가 유대인의 폭격으로 걸레조각이 된 채 엎어져 있는 사진이다. 유태인에 대한 이중감정이 되살아난다. 간이 콘서트장에 잠시 앉아 감상하는데 지휘자가 테이블로 급조한 지휘대에 선다. 형식을 따지지 않고 쉽게 즐기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인상적이다.

세종로 광화문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길은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국가가 모든 도로를 독점하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의 나라 정궁 바로 코 앞에다가 무슨 낯짝이라고 대사관이 떡 버티고 있고, 쪽바리들이 만들어 놓고 간 건물에서 시정인들 제대로 될 지, 모두들 외곽 넓은 들로 옮겨가고 24시간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되돌리라. 주말에만 잠깐 미어터지는 폐쇄공간에서 문화랍시고 홀짝거리게 하지 말고 1년 365일을 예술하고 놀게 하라.

이 거리를 아시아 B문화의 메카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이게 소통인 것이다. 북창동 느와르는 소통이 아니고 뒷골목 양아치들의 야바위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항으로 돌아가 카드로 자동체크인하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넘쳐 난다. 그전에는 없던 시스템이라 아직 대다수 여행객이 이를 모르고 길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바부팅...다시 어디를 보러가 말어 고민하다가 작년 드골 공항에서 에어프랑스에 당한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그냥 공항에서 책이나 보구 죽치기로 작정하고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는 것으로 유럽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10만원 줄 테니까 계좌번호 알려 달라고 하던 에어프랑스 여직원, 내가 무슨 노가다 막노동판에 일당 받을 일 있니. 소송할 테니 법정에서 보자.

생이 명료하지도 않고 윤기도 없다. 올해도 유럽길은 혁명도 게바라도 아니다. 새북좆이 탱글해지면 간 년, 친 년, 돈 주고 한 년, 돈 안 주고 한 년 꿈길처럼 스쳐간다. 4월에 융건릉에 우두커니 그 년을 그리워했다. 넋 빠진 놈 처럼...

참고

파스칼 보나푸, 렘브란트

최건영, 바르샤바

파스칼 보나푸, 반 고흐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상빈,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김광우, 비디오아트의 마에스트로 백남준

황인숙 시, 묵지룩히 눈이 올 듯한 밤

한기팔 시, 산시

박판식 시, 모든 것은 끝없이 이루어지고

박찬일 시, 민들레

박진숙 시, 책

허만하 시, 강진 앞바다 해거름

천양희 시, 구름에 깃들어

임희숙 시, 독무덤 만들기

기타 인터넷 지식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