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가슴의 미학>을 소개한 졸고 '젖가슴의 미학에 대하여'를 많이들 보셨더군요. 하기야 젖가슴 얘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도 솔깃한 거니까요.

글을 읽은 어떤 분이 물어왔습니다. "김훈 얘기는 그렇다 치고 니 생각은 뭔데?" 참 아픈 힐난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자기 얘기를, 그것도 글로 하라면 힘들어 합니다. 남 얘기 쓰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축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자기 속 얘기를 먼저 해야 남도 그렇게 할 거니까요."

시키지도 않은 말을 프로필에서 이렇게 뱉어놓았으니 할 말 없게 된 거지요.

뭔가 얘기를 하긴 해야되는데 하며 망설이다 용기를 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훈처럼 멋지게 '가슴 미학'을 펼칠 수야 없겠지만 '가슴 타령' 정도는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던 거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예쁜 유방' '내 청춘을 울린 유방' '나는 이런 유방이 좋다' 등등 해서 유방에 관한 온갖 단상이 영화 <메트릭스>에서의 숫자처럼 주르륵 떨어지더군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갈수록 그 단상들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술술 빠져나가는 겁니다. 타령을 늘어놓는데 필요한 관점이랄까 통찰 같은 건 먹고 죽을래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애꿎게 여성들 가슴만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더군요.^^-
아~ 도대체 내 눈과 내 가슴을 뒤흔든 그 많던 유방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유방이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무슨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순간 번쩍 하고 한 줄기 자포자기의 깨침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젖가슴에 대한 상념이나 통찰이 애초에 없었느니라.' 그러고보니 집착하고 갈망할 줄만 알았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도리없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를 붙잡았습니다. <작은 인간>(민음사 펴냄)이란 책에서 그가 쓴 '왜 여자들의 가슴은 풍만한가'란 글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처음 이 얘기를 접하곤 많이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고 약간 불쾌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의 가슴이 커진 것은 남성을 유인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럼 남성은 왜 큰 가슴에 유인됐을까요. 원시인 남자는 눈도 없냐? 쭉쭉빵빵 싫어할 남자가 어딨냐? 하실 분 있겠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해리스 선생은 종족 번식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속된 말로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성이 아이를 '쑴풍쑴풍'(리드미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 말엔 출산의 험난한 과정이 다소나마 순화되기를 염원하는 듯한 어감이 살아 있어 좋더군요. 사전엔 안 나오지만.) 잘 낳았다는 겁니다. 큰 유방에 끌리는 남자는 그렇지 못한 남자보다 자식을 더 많이 낳았고 가슴이 큰 여성은 그렇지 못한 여성보다 자식을 더 많이 낳았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유방에 대해 설명합니다. 유방은 주로 저장된 지방조직이다. 가슴이 풍만한 여성은 가슴뿐만 아니라 몸의 나머지 부위에도 지방을 많이 저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지방질은 임신이나 수유 때문에 더 필요할 칼로리를, 음식이 채워주지 못할 때 칼로리로 전환될 수 있다. 뭐 이런 논리였습니다.

아니 그럼 여자가 남성을 유인하기 위해 마음만 먹으면 가슴을 키울 수 있었다는 거야?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수유기에만 가슴이 커지는 여성보다는 가슴이 일년 내내 풍만한 여성을 선호하는 자연선택이 이뤄졌다는 거지요.

해리스 선생은 그러면서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사회생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의 주장을 희한한 상상이라며 꼬집습니다. 성적인 신호가 엉덩이에서 앞으로 위치를 옮긴 것, 그것이 부어오른 가슴 즉 유방이라는 주장 말입니다. 모리스는 원숭이 조상의 성기와 항문이 부어오르는 것을 모방한 것이 유방이라고 설명했거든요.

어떴습니까? 여러분께선 납득할만한가요? 인간의 육체와 행동과 심리를 동물의 그것에 대입한 두 양반의 논리가 기분 나쁜 분도 없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재미로든, 진지하게든 한번 인정해 보면 여자 가슴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달라질 겁니다.

우선 가슴 작아서 스트레스 쌓였던 여성들 이렇게 자위할 겁니다.
"그래 나 지방 덩어리 적은 인간이다, 어쩔래. 내가 종족이나 번식하려고 태어난 줄 알아?"

가슴 커서 외려 고민했던 분 중에는 이럴 분도 있겠네요.
"그런 거였어? 이게 다 그럼 지방이란 말이야. 난 그럼 원시 시대에 잘 나갔겠네."

그러나 어떤 왕가슴 여성은 코웃음칠 겁니다.
"원시 시대만 왕가슴 인기 있었냐? 지금도 남자들은 큰 거 좋아한다구. 커야 옷 맵시도 나잖아. 오죽하면 전 세계적으로 유방확대수술이 늘어나냐구?"

가슴에 유난히 집착하는 남자도 할 말 있겠습니다.
"그래 난 밝힘증 환자가 아닌거야. 종족을 번식시키려고 하는 숫컷의 본능이 내 안에 살아있는 거거든. 이건 당연한 거라구."

큰 가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어떨까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미련하게 종족번식의 본능을 못버리는거야. 가슴 때문에 고생하는 여자들 불쌍하지도 않아?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덥고, 성가시겠냐구. "

(으으~빈약한 상상력이여...)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참고로 한국 여자들 유방성형 보형물 크기는 94년에 135㏄였던 것이 2003년에는 265㏄로증가했답니다. 미국에서도 80년대 250㏄에서 2000년에 약 350㏄로 늘었다는군요.)

미국 여성학자 매릴린 옐롬은 <유방의 역사>(자작나무 펴냄)에서 여성의 가슴을 보는 시각(철저히 남성의 시각)이 계속 변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쾌락과 즐거움의 원천, 종교적 숭배의 대상, 나아가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죠.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입에 발린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유방의 주인인 여성들이여! 유방에 들씌워진 남자들의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털어버리고 자유로워지십시오" 같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는 않겠다는 겁니다.

유방은 여성 각자가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남성은 물론이거니와 여성들끼리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으니까요. 더군다나 유방 없는 자가 늘어놓는 유방 타령이란 무릇 영양가 없을 때가 많은 법입니다. '고추' 없는 자가 '고추타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그저 생긴 대로 살자고 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너무 무책임한가요? 어떡합니까. 제겐 풍만한 유방이 없는 걸….

p.s. 유방을 갖고 계셨던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험난한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으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들의 유방이 없었던들 이 세상의 빛을 볼 수나 있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