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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의장 회고록>YS `현철씨 정리건의`아들에 귀띔
[속보, 정치] 2003년 07월 10일 (목) 14:54


박관용 국회의장이 오는 14일자로 출간되는 자신의 회고록 ‘나 의 삶, 나의 꿈 그리고 통일’(중앙M&B)에서 노무현대통령과의 관계,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김영삼전대통령의 아들 현철(소산) 씨와의 갈등 등을 소상히 기록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일보 가 10일 단독 입수한 박의장 회고록중 일부를 발췌한다.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평가〓노무현 대통령은 소수 정당인 민주 당 출신이다. 청와대가 국회를 장악하는 정부·여당간 유착 관계 를 청산하고, 청와대와 국회가 긴장 속에서 협력하는 틀이 만들 어진 셈이다. 3김 시대라고 불리는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은 이 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노무현 대 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희망을 갖고 있다. 노대통령은 건국의 공로 나 민주화의 공로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 그는 대중의 생각을 빨리 읽어 내는 능력으로 대통령이 됐다. 이회창씨만 하더라도 3 김 세대와 별 차이가 없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노무현 후 보는 3김 시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비쳐졌고, 젊은이?湧?그래서 열광했다. 우리 사회 주류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행태에 젖어 있지만, 변화의 조짐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물론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해서 권력의 속 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소수정권’을 이끌어야 할 어려운 처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 주당을 완전하게 장악했지만, 노대통령은 민주당 당권마저 새로 장악해야 한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의 힘을 동원해 여소야대 상황 을 인위적으로 깨든지, 야당과 제대로 협력하든지, 시민단체와 손잡고 포퓰리즘으로 가든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노대통령이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져들거나 예전의 대통령들처럼 ‘대통령의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갈수록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 시 대는 3김 시대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북 한 핵 위기를 처리한 경험을 들려 줬다. 노대통령은 “선배님 경 험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좀 기록으로 전해 주십시오”하고 요 청했다.

◈소산과의 갈등〓1993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들어간 뒤 엄청난 개혁 과제가 파도처럼 밀려 왔다. 몇 번이나 쓰러지면서 고생을 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열심히 일했는데 1년쯤 지난 뒤 “김현 철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소문이 시중에 돌기 시작했다. 문제 의 심각성을 느끼고 내가 수석비서관회의 때 이 문제를 거론했더 니, 홍인길 총무수석은 “대통령께는 절대 김현철소장에 관해 말 하면 안 된다. 아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 뒤 6개월 정도 지나 ‘비서실장은 뭐 했나?’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 는 데 생각이 이르자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얘기해야겠다고 결심 했다.

어느 날 오후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갔다. “대단히 어려운 보고 를 하나 하겠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지금 전국에서 김소장 부탁 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을 김소장이 한다 는 소문이 파다하다. 누구도 저에게 보고한 적은 없지만 각하 일 을 추진하는 데 큰 누가 되고 있다” 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무 말도 않고 듣고만 있었다. 1주일 정도 지 난 뒤 김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에게 내 얘기를 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하는 의문이 들 기도 했으나, 문제를 피해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대통령과 종속적 관계에 있는 비서다. 비서가 모시는 분에게 한 얘기를 어 떻게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나? 김소장은 부자지간이니 아버지에 게 물어 보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상대방이 불쾌해 할 것이라는 느낌이 직감적 으로 들었다. 그로부터 10일쯤 지난 뒤 비서실장실의 한 비서관 으로부터 김소장 측근들이 비서실장 몰아내기 운동을 한다는 보 고를 받았다. 다시 한 달 정도 지난 뒤 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1차 개혁이 끝났으니 바뀔 때가 되었다, 그만 두겠다”고 말했 다. 김영삼 대통령은 “왜 그런 씰데없는 얘기를 하느냐?”며 정 색했다. 나는 사표를 내지도 못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나왔다.

◈노대통령에 대한 충고〓이번 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전 경련에 가서 “여기 앉은 여러분은 내게 표 찍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기성세대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젊 은층 사이의 이념적 간격은 이렇게 넓다. 국민의 동의를 얻어 새 로운 대북 정책을 펼쳐가야 할 시점에 노무현 정부는 국론 분열 이라는 상황에 직면했다. 북한 핵 문제라는 절대절명의 숙제를 풀 어나갈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향해 “북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 “북한을 주적으로 간주하느냐?”고 묻고 있다.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주력 혹은 주도세력은 노무현 대통령을 의심하 고 있다.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젊은 사람들은 노정권을 향해 “민족 공조로 부시의 압력에 맞서겠다고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그룹과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 사이에 서 좌고우면해야 할 처지다. 반미 자주 열풍으로 승리한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도 눈치를 봐야 한다. 노정권은 앞 으로도 상당기간 줄타기를 해야 할 어려운 입장이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가 직면한 위기의 뿌리다. 유일한 돌파구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고, 거기에 기반해서 정책을 밀고 나가 는 것이다. 그러려면 진솔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국민과의 대 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심각한 세대간, 계층간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솔직한 대화뿐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젊은 이들을 향해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길이 어떤 것인지, 어떤 선택이 우리의 살 길인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정충신·이현종기자 csjung@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