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 위로 불이 지나갔다. 다시는 오지 않을 잔인한 사랑, ‘생이 환하게 섹스’하던 날들, 참담하고 위독한 날들, 비 없는 가을에 ‘상처마다 빗장을 지른다’

...

돌아갈 곳이 없으면 사랑이 보인다지만

사랑이 끝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모래바람 새벽으로 내가

가시나무처럼 깨어 있는 것은

생이 불구이기 때문이다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엘비라 마디간, 모차르트 협주곡, 두 발의 총성, 그 둘은 어디로 스러져갔는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일이란 한결 높고 고독한 독거입니다’

‘그녀의 사생활에서는 닿을 수 없는 슬픔이 드러났다. 그녀에게는 욕망에 불을 지피는 신비감이 있었다....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랑은 유랑하는 인간의 영혼들 사이 지문처럼 번지는 핏자국인지도 모른다’

...

사랑의 범선들은

인생에 좌초했다

인생에 아무 책임도 묻지 말자

하나하나 헤아리기엔 너무도 많아

고뇌와 고통, 존재의 외로움

안녕

(유부녀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37에 자살한 마야코프스키, 이별의 시)

5. 19. 이티켓 발권하고 10. 20. 에어프랑스로 출국, 공항에서 감기약이랑 설사약, 소화제 사려는데 1회분은 안 판단다. 제발 그래 좀 살지 마라. 그리 돈 벌어가꼬 모할래. 7공수에서 뺑이치고 가는지 스킨헤드 프랑스 애들 시끌벅적, 독일항공만으로 다니다가 에어프랑스는 처음인데 좌석마다 스크린이 있는 것이 특색, 컵라면을 수시로 먹을 수 있게 한 것도 독일항공이랑 다르다, 음악은 내 스탈 아니네, 옆 좌석에는 황석영 선생 닮은 아저씨가 베를린 가신단다, 영 말이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 다 보다.

황량한 광할한 몽고 내륙 여전하다, 이거 몽땅 서울로 파오는 방법 없을까. 지구상 한 귀퉁이에 특이한 나라가 있다. 고작 인구 1%가 전체 개인 소유 토지의 57%를 소유하고 있다(한겨레 2006. 10. 2.). 프랑스는 1789년 당시 인구 2%인 승려∙귀족들이 전체 토지 40%를 소유하여 단두대로 들 가셨다. 이러고도 니가 입이 있어 변명이냐. 말이라도 몬하믄...보따리 싸서 집으로 들 가그라 어서. 내 집값 오르면 등 따시고 그기 아이믄 나라 걱정 심하게 해야 하는 곳이다. 출국하는 마당에 걱정 좀 안하게 해주믄 안되건니. 진정 D.R.I.(또라이)의 반열에 들고 싶지 않거든 정신 좀 차리그라. 눈, 귀 다 틀어 막았니. 앞으로 땅 문제 해결하지 못할 정권은 아예 나서지도 말그래이. 뉴라이튼가 머신가 몇촉짜리냐, 암페아가 어케 되냐고. 나 잠 좀 자야한게로 불 좀 꺼라. 시끄럽게 하지 마고. 교수님, 이 시국에 딴나라당이 집권하능거 겁 내면 안된다고요. 겁 안나요. 누가 겁난다 그랬소. 더 이상 더 망할끼 있겠능교. 맘대로 하라카소.

처음 보는 샤를 드골 공항, 파리에서도 한 참 외곽인가보다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나나무스크리의 나라 그리스 아테네행 비행, 저 아래 어디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크레타 섬이 있을 텐데,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도 재미를 봅니다...하느님도 먹고 싶을 때 먹고 여자를 고릅니다. 물 찬 제비 같은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면 당신 가슴도 뛸 겁니다...하느님이나 악마는 하나고 똑같은 거예요’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한 말이다. 당근 그리스 정교회 미움을 받았고 그래도 사회당 지도자였다. 아테네 도착, 아테네는 제우스의 딸인데 어미 없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단다. 애비 없이 동정녀 몸에서 났다는 누구, 참 신들은 한결같이 괴물인가 보다...괴상해야 신이 되는 건가...

밤이 늦어 벤츠 영업용 일단 잡아타고 호텔로 직행, 허름한 골목 안에 이케 깔끔한 호텔이 있었다니, 짐 풀고 나들이,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파스칼), 난데 없이 개들이 짖고 뛰어 다녀 겁난다. 기사 말로는 아크로폴리스가 가깝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고 도시도 한적하여 별 재미가 없어 다시 호텔로 가 잔다.

‘...

너는 왜

여기 누웠는가

그토록 애태우던

사랑과 애달픔은 어디 두고

무슨 못다 한 미련 남아 이렇게 누웠는가’

(이동순, 난파선)

욕조에 물 채우고 사지를 달래는데 아르키메데스가 넘쳐 흐른다. 소크라테스 후예들 이러케 폐허에서도 사는구나. 서울에서 프린트한 호텔 중 하나를 골라 찾아간다. 여기서는 호스텔도 모두 간판은 엄연히 호텔이다. 역시 유럽은 건물마다 표지가 붙어 있어 어렵지 않게 찾는다. 도미토리에 이미 영국 쪽에서 온 완전 빡빡이가 묵고 있는 중, 건축 관계 일을 하는데 보스랑 다투고 3개월 여행이란다. 다시 가서 일하면 그만이라는데 박지성 팬이라네. 징키스칸을 읽고 있다. 태국에서 한 딱가리하고 재미보구 일루 왔다나. 홀에는 서울에서 보던 MAD 채널이 돌아가고 있어 거리감이 없어진다.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거기고...

 

우선 신다그마 광장 쪽으로 가면서 여행사를 찾는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부터 예약해야 한다. 한국서 130유로 정도 했는데 현지에서 하면 더 싸게 할 수 있다는 풍문이 있었으나 싼 게 올림픽항공으로 160유로이었다. 에게 항공은 이스탄불 안 가고 터키 항공은 더 비싸다. 알라 한 번 알현하기 힘들구나.

호텔을 나오자마자 보이기 시작한 아크로폴리를 찾아 가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아무리 뱅글뱅글 돌아도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온 여성도 한참을 헤맨다. 겨우 찾아 표를 사는데 무지 비싸다. 알고 보니 5개 입장권이다. 올라가면서 아테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서울만큼이나 답답한 느낌이다. 제우스의 자식들이 모두 여기만 모여 사는 것인지. 에게해를 보고 ‘오래된 연민’이 떠오른다. 기둥들만 덩그러니 언덕에 서 있고 보수공사 하느라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다가 로마를 본 이후에는 웬만한 유적을 맞닥트려도 불감증이다. 그래도 여기서 민주주의가 발원했다는 것인데. 아름다운 처녀 메두사가 포세이돈과 사랑에 빠져 격정한 사랑을 나눈 신전이 여기인가. 그러다가 괴물로 변해 추방당하고 메두사를 보면 모두 돌로 변한다는 것인가. 다시 여신을 살려 말어. ‘여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용감하게 죄지어라’ 오세암 내려서 수렴동 계곡 가는 길에 먼저 말 건네며 멀어져간 여승이 궁금하다. 그렇게 이쁘고도 여승이면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난 곡절이 있어도 승려가 아닌데. 여승의 하얀 속살이 못내 궁금하다. 겨울눈 밟고 봉정암 오를까. 정교회 안에서 유아세례를 하는 것인지 어미가 등짝이 훤히 드러난 드레스를 화려하게 입은 채 아이를 안고 사제 앞에 서 있다. 분명히 사진 박았는데 찾아보니 움따.

 

박물관 보고 신전 보고 후문으로 나오면 카페 골목이다. 뱅글뱅글 돌다가 기념품집에서 엽서 고르느라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는데 어지럽다. 대체 무신 그림이기에... Monastiraki 광장에서 도나츠 하나 물고 길거리 잉카음악 듣다가 보다가 바지에 껌 붙었다...5개월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혈관염, 혈열. 서울대병원에서도 치료가 안 되고 한의원 약으로도 듣지를 않아 선배가 하는 8체질 한방에서 주는 생식을 10일분을 챙겨왔다. 금음 체질이라 육류, 밀가루 등등 먹으면 안 되는데 그동안 열심히 먹은 탓으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케 사니. 기름진 냄새를 참기 힘들다. 스파게티라도 하나 먹자. 노린내가 나서 둘러보니 개가 식탁 옆에서 점잖게 주무신다. 계산서를 가져오는데 소주잔에 넣어서 들고 오더니 식탁에 엎어 놓는다. 피식 웃음 나네. 저 만치 앞에 한 쌍이 만찬 후반부를 흔들어 놓는다. 도무지 식탐에 집중이 안 되고 피가 아래로 몰리기 시작한다. 유럽에서 toilette에서 처음 handplay다. ‘거두지 못한 생의 비린내’

 

쇼핑센터 선물가게 대충 둘러본다. 한 군데 가게가 유난히 알록알록한 것이 눈에 쏙 들어온다. 장신구 세공 진열한 것이 아기자기 화려한 게 영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간만에 카드 긁었다. 피곤해 숙소로 와 쓰러진다. 새벽 일찍 깨서 샤워하고 아침 나올 때까지 식탁에서 독서. 아들 둘 데리고 부부가 같이 여행 온 모양이다. 잠자리에서 바로 나왔는지 부스스하다. 머루알 눈망울의 막둥이가 아빠랑 장난하는 모습이 천연덕스럽다. 아직 세상을 모르기 전 아빠 품에서 깔깔거려 본 적이 없는 인생은 우선 한 번 불운하다. 쌍둥이 유모차에 딸아이 태우고 가는 그림이 세상에 젤 부럽다. 기름기 육류는 먹지 말라고 해서 빵조각에다 포도잼만 발라서 커피랑 먹고 길을 나선다. 이른 아침이라 한산하고 게다가 일요일이라 더 그렇다.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교회로 간다. 유난히 여자 청소부가 많은 아테네다. 미소 짓는다. 폴리스는 차 대 놓고 졸고 있다.

 

국립공원을 산책하는데 2천년 묵은 그리스의 햇살이 넓게 퍼진다. 그리스정교회 종소리가 화음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한다. 인생의 한 때 아테네 아침 공원에서 고적하다. 입김이 나는 날씬데도 따스하다. 혹하고 미망했던 서울이 멀어진다. 많이 아팠던 시간들...지금도 떠올리면 가슴 저려온다. 오래도록 편안한 사랑이란 정녕 없는 것인가.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신다그마 광장에 개들이 왁자한데 여기는 개를 이렇게 놔먹이나 보다. 그런 거에 비하면 그케 많지도 않은 것 보면 특별히 관리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귀때기에 인식표도 달고 다닌다. 사람 따라 횡단보도 잘도 건너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차량을 뒤쫓기도 하는 게 여간 진풍경이다. 강아지는 겨우 한 마리만 목격, 이 놈들은 어디서 흘레붙고 번식들을 하는 것인지... 도시가 부다페스트만큼이나 정신없긴 한데 바람은 맑다. 광장 계단 올라서면 국회의사당 앞에 경비병 둘이서 태엽을 감았다가 풀어 놓은 병정처럼 스로우 모션이 영락없는 장난감, 로봇처럼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우스 신전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 장엄하다. 본래 자웅동체라 이를 두려워하여 인간을 암수로 두 동강이 내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정작 제우스 자신은 초라하게 허무한 기둥에만 간신히 살았다. Keramikos 가는 길에 카시오 디카 말썽. 구식 소니 버리고 700만 화소로 새로 구입한 것인데...사진 하나 찍어 달라고 했는데 이 년이 생까고 그냥 지나간다. 너 죽을래. 어디서 튕김질이야! 아크로폴리가 멀리 보이고 인근에서 중학생들이 소풍 정도 나왔나보다. 방댕이가 여물고 가슴이 농익어 쫀득거린다. 한참을 넋을 잃고 본다. 인종의 우열을 떠나 절대욕망의 대상이다. 조형물의 격이 다르다. 10월 말인데도 뒤통수만 따갑다.

 

제우스 신전, 텅 빈 마당을 돌아 비잔틴 박물관보다. 벽면에 소니 엘시디 화면이 깨어진 채로 돌아간다. 비호감. 비망록에 좀 멋있게 쓸 걸, 달랑 이름만 쓰고 말았다. 꽃이 수수하면서도 화려하고 향이 좋아 물었더니 쟈스민이란다. 아 글쿠나 이뽀이뽀...찰칵. 전쟁박물관 보고 잠시 졸다. 이렇게 심심할 수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시비 걸지도 않고 여느 유럽인들처럼 무뚝뚝하다.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신다그마 광장에서 참으로 ‘구체적으로 외로운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파키스탄에서 온 촌놈들이 그래도 양복은 하나씩 걸쳐 입고 사진 좀 찍어달라며 무지 친한 척 한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는 때깔들인데 지들도 놀아주는 인간들이 없어 왕 심심한가보다. 그래도 니들은 핵을 가지고 있으니 부시가 깔보지 못해서 부럽다야. 비결 좀 알려주라.

가서 낮잠이나 자자. 빡빡이가 식탁에서 티비보고 책보고 있다. 이 눔도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 안나가고 그냥 죽치고 있나보다. ‘추억도 반성도 없는데 나의 생은 밤은 막무가내로 깊어져간다’ 한참을 잤나했더니 인기척에 눈 떠 보니 스위스에서 온 간호사랑 흑인 남자가 들어온다. 아 도미토리의 진면목이 이거구나. 오늘 잘하면 생 비디오 한 프로 보겠는데 이거... 남편이란다. 백인 여성이 흑인 남자랑 다니는 거 볼 때마다 아직은 익숙치 않다. 물어보고 싶었는데 경황이 없다. 흐느적거리는 유연함일까, 아님 흑 빛 속에서 반짝이는 흰자위의 끌림일까. 늘어지게 자고 나니 벌써 한 밤 중이다. 돌아다니다 얼굴만한 도너츠 하나 먹고 택시 기사 따라 간 집에 러시안 걸 너무 한강이다. 계속 흥이 나지 않는다. 욕구불만. ‘탄탄한 몸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유곽 같은 곳이어서 날마다 색정으로 밤을 밝히고도 또 다른 궁을 찾아’ 매춘이 발원한 그리스에서 고급한 흔적이 없다. 주소 잘못 찾았나.

‘...신성한 매춘은 사실 구석기 시대 이후에 나타난 세계 최초의 문명들에서 종교적 예배의 핵심 부분이 되었던 성적 의례의 전통이었다...새로운 남성 통치자들은 여신 종교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남성 사제직을 만들어 그들의 새로운 신을 장려했으며 사원의 여성들을 통제하고 착취했다...신성한 여성인 동시에 매춘부였던 즉 역사상 최초의 창녀였던 신전의 여성 사제들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아테네는 훗날 유럽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간의 섹슈얼리티가 눈부시고 화려하게 개화한 현장, 곧 관능의 낙원이었다. 많은 남성 매춘부가 거리에서 일했다...아테네의 철학자와 작가들은 좋은 것은 모두 남성과 연결짓고 나쁜 것은 모두 여성과 연관짓는 성의 도덕적 이원론을 고안해내어 서구의 전통 깊숙이 여성 혐오증을 각인해 넣을 시간을 얻어냈다...내 몸은 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몸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할 것이다...그래서 나는 나 대신 나에 관한 결정을 내리려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다...당신들이 돈을 원하고 더 나은 삶을 원하는데...우리는 왜 더 나은 삶을 바라면 안 된단 말인가. 나도 그런 것을 원한다. 그런데 나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경력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겠는가...우리가 애나 낳고 남자들 시중이나 들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가면 안 된단 말인가. 왜 독립적이면 안 된단 말인가...그냥 좋았다. 죄의식도 후회도 수치심도 없었다. 내가 느낀 것은 뿌듯함과 기쁨이었다. 신의 뜻으로 나는 여기서 무언가를 알았다, 알 수 있었다...성으로 돈을 버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돈을 벌고 남성에게서 재정적으로 독립해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좀 더 잘 통제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관계인지 어떤 조건인지를 말할 수 있는 길이다...여성의 빈곤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설명하지 않고 매춘의 도덕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역사적 기록은 설사 매춘의 근절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서양에서 매춘이라는 사회악을 근절하려는 움직임은 사람들의 섹슈얼리티를 철저히 억압하고 통제할 목적을 가진 순수하지 못한 도덕적∙정치적 세력이 결탁한 결과였다. 기독교와 국가는 우리를 좀 더 유순하고 다루기 쉽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신체를 규제하는 것이 그들에게 득이 된다고 여긴다...모든 여성을 창녀와 성녀로 구분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여성도 자유로울 수 없다. 창녀도 다른 시민과 동일한 권리와 자유를 가질 때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결정적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성 산업에 대한 억압은 예외적인 것이며 세계사의 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인도에서 종교적 매춘은 사원의 핵심적인 제도였으며 국가와 사회 모두 세속적인 매춘부를 인정했다. 인도 문화는 감각적 쾌락과 고도로 발달한 섹슈얼리티의 기교를 찬양했다. 비록 인도의 가부장제는 고대 그리스처럼 부인네들의 예속적인 신분 질서를 만들었지만 모계 사회를 이루고 있던 평민의 자유로운 성문화를 파괴하지는 않았다...성 산업이 철저하게 비난받고 억압된 것은 근대 서구 사회뿐이다...누구에게도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다른 사람의 성적 선택에 법을 제정하는 권리는 없다...’

(니키 로버츠, 역사 속의 매춘부들)

‘갈보 가운데서 마누라가 나오는 세계는 위대하다’ (고은, 1973. 7. 2. 일기)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창녀 노릇 제대로 한번 해보기 위함이야’(넬리 아르캉, 창녀)

‘삶은 유기체, 오르가즘이야, 증식시켜!’(현경, 미래에서 온 편지)

성매매특별법 폐지해라. 창녀촌이 부러우면 창남촌 만들고 호빠 가라. 뭐가 무서워서 못하니. ‘고추 제국주의’니 멋이니 주절대지 말고. 등쳐먹는 조폭 양아찌들만 족치면 그만이다. 무슨 성차별이고 누구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거니. 자유로운 배출구 만들면 오히려 가정 내 사회 내 성폭력 성차별 없어질 것이다. 자꾸 헛다리 집지 마라. 아무데서나 여기자 끌어안고 발광하지 말고 가서 돈 주고 니 맘대로 해라. 세계의 기원(Gustave Courbet, the origin of the world)이자 종말인 구멍으로...

 

새벽바람 맞고 다니다가 인기척도 드물고 신나는 일도 없어 자러간다. 아테네에서 신전 하나 보고 나면 사실상 여정 쫑난다. 특가항공이라 변경도 안 되고 남은 시간 뭐한데...섬으로 가기에는 일정이 모지란다. 느지감치 일어나 아테네 대학 쪽으로 가본다. 허기져서 바케트에서 치즈 빼달라고 해서 도로가에 앉아 먹고 거닐다. 유난히 오토바이가 많고 뒤에는 그리스 미녀들이 착 달라붙어 달린다. 나두 딸딸이 하나 장만하믄 여기서 야타할 수 있을까. 갑자기 흑인과 아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들고 튀기 시작한다. 뒤돌아 보니 싸이카 납신다. 이들을 쥐새끼처럼 모는 질서는 누구의 것인가. 민주주의 나라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벌어지는 장면이다. 어디가 아테네 대학인지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지도에는 분명히 있는데 아카데미라고 그냥 부르는 것인지. 법대 3년생이 아테네 대학이라 알려 주었고 그리스에선 법대 졸업하고 연수 1년만 받으면 변호사 되고 판검사는 별도로 시험을 쳐야 한단다. 대학 내리막길에서 아테네 미녀들 줌인. 저승에서 줄 잘 선 이들은 이목구비가 남다르다. 이들은 택한 백성인가. 지들이 꽤나 미녀인 줄 아는가 보다. 트로이 전쟁의 화근이 된 헬레나의 미모. 결국 이겼다고 하나 사실은 투르크 만만찮다. 동서양의 피가 반씩 섞인 이스탄불 년들 묘한 꼴림이 있다. 선박왕 오나시스처럼 뭉툭한 외모도 많다. 두꺼비 같은 오나시스한테 팔려간 재클린에 미국애들 경악하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는 페미니스트의 전형이라도 되나보다. ‘스타이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마음에 드는 사랑스런 남자와 멋진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 스타이넘은 오래도록 연애를 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가 결국 보인 행동은 그게 망상이었음을 말해 준다’ 스타이넘처럼 여성들이 주력이 된 성혁명 투쟁으로 섹스에서 주도권을 가지면 쾌락일까. 남녀는 결코 같지 않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고 차별, 불평등과는 별개의 문제다. 페미니스트, 살림이스트 재고해 볼찌어다.

백화점에 뭐가 있나 들어가 봐도 서울만큼 화려한 데도 없다. 마지막 남은 입장권 한 장이 로만 아고라인데 여행사 직원에 물어봐도 모른다카네, 포기.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하기에 후다닥 자야흔다. 디카에 맞춘 시계를 밤 새 여러 번 들여다 본다. 알람 손목시계 안 가져와 불편하다. 밤새 스위스 흑백 부부 다른 침대에서 떨어져 자고 아무 일 없다. 싱겁다. 바로 옆에 그녀가 있는데 참 내...서울 가서 강안남자나 보고 달래야 하나. 이게 그케 드릅냐, 넌 안하니. 옴팡지게 거룩하다고. 염병하지 마고 하라는 정치나 똑바리 하그라. 2천년 전에 하믄 예술이고 지금하믄 외설이다냐.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 집어치우고 안방에서 하든 모텔에서 하든 하는 짓거리는 대동소이한게로 씰데움는데 신경꺼라. ‘끝내, 미치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바람 부는 날 소슬한 어스름엔 경복궁 은행보호수 떨어지는 잎새 아래 밤새도록 그거 하고 잡다. 북악 한 번 흘기고... ‘나는 자꾸만 어두워지나’

 

 

첫 지하철로 가야 안전하다. 요트 타러 왔다가 돌아가는 영국 아저씨가 다가온다. 자기도 공항가야 하는데 이 노선이 맞는지 물어 본다 금새 일본 애들 둘이 까불락거리고 온다. 차 안에서 마이 새뇨리다 하면서 그리스 아가씨에게 한참을 농한다. 니놈들 할애비가 불과 얼마 전에 우리 땅에 와서 그 모양 그 꼴로 깝치고 놀았을 생각을 하니 몸 안에 온 물이 역류한다. 공항에 안개 자욱하고 썰렁한 게 딱 을씨년하고 시계까지 제로에 가깝다. 이륙해도 도시 전체가 구름에 가려 볼 수가 없다. 김포에서 뜨자마자 김해 보이는 양으로 날개를 열고 구름 아래로 내려가는데 술탄의 땅이 정연하다. 2006. 노벨 문학상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나라, 터키 이스탄불 모종의 기대감 부풀려 본다. 손등에 혈열 흔적이 현저히 줄었다. 제우스, 알라, 생식 모두모두 땡큐...유일신은 위험하다. 불안하다. 인류가 생식 버리고 화식하고 잡신 죽이고 단독신 모시면서 반은 퇴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