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서 고등학교를 졸업(49회)한지가 만 30년이 되었고, 대학을 입학(73학번)한지도 만 30년이 되었습니다. 올 11월 동고의 날에 졸업 30주년 홈커밍데이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별로 내세울 글재주는 없지만 사회에 나와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20년이상 차이나는 후배들과 어울리기 위해 조금조금 되살아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때 우리와 함께 기쁨과 아픔을 같이 했던 우리만의 추억을 위해 몇자 적어 봅니다.    

항상 늙으신 사람들이 하는 얘기로 지나간 세월은 바로 엊그제 같다고들 하지만 그때 그당시 72년 대학예비고사를 치고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또 어느 추운 겨울날 입시 본고사를 치고난 며칠후 독수리 상아탑옆 본관건물 유리창 전면에 붙여있는 합격자명단을 보면서 기뻐했던 그때 그시절은 정말 어제와 같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73년 3월초 지금의 대학운동장에서 머쓱하게  입학식하던 날. 우리는 하나같이 교복아닌 교복을 입고 쑥스럽게 입학식을 하였습니다. 요즈음 김정일이가 즐겨입는 국민복과 같은 까만 일제식 교복을 입고 왼쪽 가슴에는 商大가 표시된 구로곤색의 학교 뱃지를 멋쩍게 달고 그렇게 입학식을 하였는데 입학식 며칠전에 있었던 고등학교 졸업식날 악명(?)높은 정사용 교장선생님께서 친히 바리캉을 들고 전교생에 대해 강제삭발하는 바람에 우리동기 모두는 거의 까까머리로 입학식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49회 동기와 재수하신 48회 선배님들을 포함해서 대략 십수명이 입학을 하였는데, 상대 선배님들이 상대가 생긴 이래 신입생이 최고로 많다고 대대적인 환영식(온천장에 있는 중국집에서)을 해주었으며 그때부터 사실상의 망월상대가 조직적으로 결성되었다고 볼수 있는데 그이후 민락동 횟집, 서면의 고기집, 학교앞 막걸리집 등 우리의 모임이 기억납니다.  

1학년은 교양학부라 하여 주로 문과학생(상대/법대/문리대/사대 등)들을 혼합하여 만든 반을 만들어 같이 교양과목을 이수하였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머리가 굵어진 다음 처음으로 여학생들과 합반을 하여 수업을 받았다는 기억이 나고, 대부분의 수업은 문창회관 앞에 있는 군대 막사와 같은 판잣집 교실에서 수업을 주로 하였습니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빗소리가 나고 교실이 어두워 글씨 보기가 힘들었으나 싫지 않은 기억입니다.  

따뜻한 봄날에 몇번의 미팅들이 기억나고 지금쯤 그 장소들이 그대로 있을런지 알수는 없지만 서면의 부전다방, 남다실과  남포동의 향촌, 귀로, 무어 음악감상실 그리고 에덴공원의 으슥한 카페들. 정말 공부보다는 놀기에 바빳고 정녕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살았던 그 시절이 무척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학교앞에서 할일없이 무작정 남포동을 갈려고 18번이나 19번 버스를 타면 꾸뻑꾸뻑 졸면서 한시간이 넘게 걸렸고, 차비가 없어 차장누나에게 억지사정하면 공짜로 태워준 기억도 나고,  버스뒤편에 앉아 창문을 몰래 열고 담배를 피울수도 있었던 그때 그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한 까닭에 공짜로 영화를 볼수 있다는 선배의 얄팍한 꾀임(?)에 빠져 별 깊은 생각없이 "부대 영화연구회"라는 써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는데 주로 신작영화가 나오면 단체로 영화를 보고 각자의 느낀 바를 토론하여 일간지 신문에  논평기사를 쓰고 축제 기간동안에는 다방을 빌려 사진전시회와 영화음악 감상회 등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미스코리아에 당선된 가정대 재학생인 노모양을 섭외(?)하여 전임회장이신 김모군과 함께 주연을 하여 8미리 멜로드라마(?) 영화를 직접 제작하여 소형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한 기억은 나는데 그 필름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출품 때문에 서울에 가서 한국영화계의 거장 유현목 감독님도 뵌적이 있는 것 같은데......  

1학년이 끝날즈음 미국 문화공보원소속 써클 대항 장기자랑대회에 써클 대표로 열열히 사이키 조명을 받으며 창가를 하던 기억도 있고, 2학년 1학기말경 한미대학생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팝송을 연습하여 수천명의 관중(?)이 모인 부산시민회관 무대에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데뷔(?)하던 기억들도 있고, 장발로 파출소로 끌려 갈뻔한 기억도 있고..... 참으로 옛날 얘기입니다.      

그때 그당시 학교 통학길은 구문이 정문으로 부산은행앞 사거리에서 하차하여 경사진 길을 따라 부지런히 올라가면 흰색의 아치교문이 보이고 조금더 올라가면 먼발치에 나즈막한 도서관이 있고 독수리 상아탑을 거쳐 본관건물을 옆으로 언덕길을 또다시 오르면 어느정도 숨결이 거칠어져 결코 등교하기가 쉬운 길은 아니지요  .

이어서 본관 건물뒤로 평탄한 길을 조금 지나 가면 학교에서 가장 낭만적인 석조아치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너머에 상대 본관건물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그런지 페인트 칠도 없는 썰렁한 세멘트 건물인데 건물입구코너에 있는 햇볕이 잘 드는 교실이 무역학과 40명의 교실이었습니다.

77년초 졸업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전공은 그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후배태도가 불손하다하여 동급생이면서도 하늘같은 선배님 겸렬이형(45회)으로부터 간혹 빳다 맞던 기억이 납니다. 모임에 안나오는 놈은 패지도 않고, 모임에 잘만 나오는 놈만 골라서 패는 이유는 뭔지.....  하여튼 이유없이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용돈이 생겨 용기를 내어 청자 담배 한갑을 사서 학교를 가면 둘째수업의 휴식시간이 되면 빈갑이 되고 맙니다. 여기 저기서 동기 선배할것없이 흡연자 모두 담배 한개비씩를 달라고하여 다주고나면 금방 없어져버리는데 그만큼 우리는 그렇게 가난한 시대에 살았나 봅니다.

용돈이 넉넉치 못해 도시락에 밥만 싸가지고 와서 인심이 넉넉했던 교문밖 하동식당에서 저렴한 소고기국에 말아먹던 기억들이 있었고. 박물관 뒷동산에서 도시락까먹고 졸다가 수업을 빼먹던 기억들. 수업받기 싫어 교수님꼬셔서 산성으로 산행가던 기억들. 다 아름다운 추억들입니다.      

대학을 다니던 그시대에는 사건 사고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1학년 여름방학때 동기 모씨와 함께 전국을 일주간 무전여행(?)을 하였는데 영동역에서는 유조철차가 탈선하여 역전체가 폭발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던 기억이 나고, 2학년 여름방학때 써클MT로 월래해수욕장을 갔었는데 해변에서 누군가 우연히 켜논 라디오에서 육영수여사가 저격 당하는 방송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학년때 교양과정부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던 모교수(항상 색안경을 끼고 있었음)는 그 당시 가족과 함께 월북하여 지금은 북한 해주에서 대남방송 책임자로 있다는데 그때도 수업받을 때 조금은 이상하였다고 생각되었으나 지난 시절의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그때는 유난히도 데모를 많이 하였던 것 같습니다. 거의 2학기는 수업을 하지 않았고, 데모가 시작되면 스크램하여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막을려고 그 크신 몸으로 학생들 앞으로 육탄전을 불사하시던 윤천주 총장님 (동고선배님)이 있었고, 그 덕에 서울대총장으로 문교부장관으로 영전하시는 영광(?)을 얻기까지 하셨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요.

3학년부터 ROTC 훈련을 받는 덕에 데모한번 제대로 못해 봤지만 데모때문에 공부는 거의 못하고 군사훈련만 열심히 부지런히 받은 것 같습니다. 윤총장님이 미국시찰도중에 미국 ROTC 복장이 좋아보이더라면서 앞서가는 총장님덕분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유일하게 부산대 110 ROTC 복장을 일본식제복에서 넥타이 양복정장으로 바꾸었는데 지금도 지나가는 ROTC 학생 복장을 보면 그때가 생각납니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박찬종 전 국회의원의 사촌형이신 미국유학파 박찬목교수님(그때도 수업시간에 주식투자에 대해 엄청 강조하셨고, 점심시간직후 원서강독시간에 서서 책을 읽다가 주무시는 불상사가 있을 정도로 낙천적인 경향이 있었음), 영국신사같으신 중국통의 민병채 교수님(그당시 공산국가인 중국에 대해 엄청 많은 연구하셨음 - 필자의 결혼식 주례선생님이셨음), 우리나라 무역학의 대가이신 김교수님 (고등학교 선생님처럼 무척이나 성실하셨고 유머감각이 거의 없어 수업은 무척 지루하였으나 매사가 철두철미 하셨음), 무척이나 인자하고 자상하셨던 서교수님(실력은 조금 그랬으나 학생과 가까워 질려고 노력하셨고 대인관계가 대체로 원만하셨다는 기억이 있음), 젊은 회계사이신 최교수님 등등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도 계실테고....

75년 2월초 추운 겨울날 사대부고 뒷마당에서 해뜨기 전에 등교하여 ROTC 기초훈련을 밤늦도록 받던 기억들. 장전동 앞산에 떠있는 둥그런 대보름달을 보며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던 그 기억들. 3학년 1학기때 상대축제에 무역학과 주최로 연극을 하였던 기억들. 그때 제목이 "한글 아래아"였던가. 1학기말 시험을 치고 설악산으로 기차를 타고 졸업여행을 갔던 기억들. 그렇게 3학년을 다보내고 4학년은 정말 할일없는 시간을 보내며 군사훈련만 받았던 것 같습니다. 복학생 대부분은 취직시험에 여념이 없어  우리같은 대기생은 상대하기가 어려웠고 그당시 취직시험은 여름방학부터 시작되는 터라 4학년은 내내 파장분위기였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4학년 말미에 임관시험보고 그리고 시간이 되어 77년 2월 졸업하여 군으로 갔습니다.  

지겨운 이야기들이지만 70년대 중반을 그렇게 보낸 우리들의 이야기속에 지금 사회로 나오는 후배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들 이지만 참으로 소중했던 기억이고 새록새록 옛추억의 그림자같은 향수가 느껴짐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는 하지못할 저의 넋두리같은 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그때 그시대에 함께 하셨던 분들께서 시간날때마다 리필을 할수있으면 좋지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마 이런 대화장이 없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겠지요. 조금조금 삶의 의미를 씹어가며 힘있게 삽시다.      49회이면서  73학번인   권오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