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분만 동고야사이트에 들어와 보면 어떨까요?
오래전에 본 글을 옮겨 봤습니다.


<인맥 만들기, 하루 20분만 시간을 내자>

몇해전 추석연휴 직후로 기억된다. 당시 전경련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여의도 전경련회관 2층 기자실에서 아침부터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담당 업체들과 경제단체들이 긴 휴무를 가진 직후라 기사거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편집회의 이전인 오전 10시까지는 서너건의 중요한 기사계획을 보고했어야 했는데 한건도 제대로 없었으니 마음이 급했다.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 나간 수출개척팀은 돌아왔나요?”
“해외사업장 순시 이후 회장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이번 임시국회에 다뤄지는 기업관련법안은 없나요?”

그동안 챙겨왔던 사안들을 점검하며 이런 저런 통화를 하는 사이, 옆자리에 앉아있던 모신문의 선배기자도 필자와 같은 처지인 듯 부지런히 여러곳에 전화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그런데 문득문득 들리는 그의 통화내용은 필자완 전혀 딴 판이었다.

“형님! 추석 때 고향 잘 다녀오셨습니까? 형님하고 회 먹으러 한 번 가야 되는데…”
“김사장님! 접니다. 추석 때 직원들한테 상여금 많이 줬다고 업계에 소문이 자자 합디다. 기업 하는 사람은 그게 제일 잘하는 것 아닙니까? 저하고도 점심한번 하시지요”
“선배님이 지역구로 내려가니까 서울이 빈 것 같데요. 이번에는 상임위원장 하마평이 있던데 선배님이 되시는 것 맞지요?”

어림잡아 30여통 가까운 통화를 하느라 그는 연신 물을 마셔대고 있었다. 업계는 물론 관계 정계 학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유명한 ‘마당발’ 기자인 그였다. 그날 전화 통화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어떻게 그런 위치에 올랐는지 알 것 같았다.그쪽 방면에 별 재주가 없던 필자로서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선배, 잘 아시는 분들이라 안부 전화하시는 겁니까?”
“잘 알기는… 한두번 본 사람들이지. 이게 다 일이다. 니도 해봐라. 취재하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

“10년간 해온 일이라 자기에겐 버릇이 됐다”며 그는 깨알같이 작은 이름들로 가득찬 수첩을 들고 시간이 없다는 듯 통화를 이어갔다. “형님! 접니다”

이후 필자는 그를 눈여겨봤다. 그는 기사송고를 마치고 한가해질 때면 여지없이 전화를 들었다. 점심 저녁도 동료 기자들과 함께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언젠가 전경련 회관에서 국회의원들이 세미나를 가질 때 2명 중 한명은 그를 오랫만에 만나는 동생처럼 대하는데 놀랐다.그는 정치부에 근무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본연의 업무’와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정 반대였다. 큰 사건이 생겼을 때 그의 정보력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평소 틈나는 대로 한 전화가 그 바탕이었다.

필자의 같은 회사 선배 기자 중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책상엔 사람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힌 두툼한 메모지가 항상 놓여 있었다. 그는 다른 서류는 잘 안챙겨도 그 메모지는 퇴근 할 때쯤엔 반드시 서랍안에 넣어두고 다녔다. 어느날 하도 궁금해 필자가 물었다.

“아, 이거. 전화번호부야. 그날 만난 사람 연락처를 잊기 전에 적어두고 시간날 때마다 한번씩 전화하고 있어”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취재나 개인적인 일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메모해뒀다가 딱 1주일 뒤에 안부 전화를 한다.그리고 다시 한달 뒤에 한번더 안부 전화를 하고 이후엔 2개월에 한차례씩 통화를 한다. 메모지는 그 체크리스트인 셈이다.

이렇게하면 1년에 여섯번 정도 연락을 하게 되는데 열의 아홉은 다시 한번 만나게 되고, 2년차 부터는 반년에 한번 정도만 통화해도 막역한 사이로 변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그는 수습기자 시절 기자회견 때 만난 경제관료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우리회사를 방문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 손을 잡은 기자였다. 형제처럼 인사하고 헤어지길래 물어봤더니 “실제로 본 건 10년만”이라며 웃었다. 메모지 전화번호부의 위력이여!

당신에겐 이들 두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가. 처세술에 능해 사술이나 부리는 소인배들인가. 아니면 세상을 사는 지혜를 아는 사람들인가. 필자에겐 후자로 보인다. 인맥쌓기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능력의 하나로 요구되는 언론계 종사자라서만 그렇게 보이는게 아니다. 이들 중 한명은 지금은 벤처기업가로 변신했다.그에게 십수년간 쌓아온 인맥은 그의 창업 결심을 굳히게한 가장 큰 자산이 아니었을까.

특히나 언뜻 쉬워 보이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작업이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들을 나름의 굳은 심지로 자신의 능력을 키운 사람들로 평가하고 싶다.

사실, 한 번 인사했다는 이유로 그것도 일로 만난 사람에게 딱 1주일 뒤 아무 용건없이 다시 전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거나 통화 의도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 아닌가. 물론 2개월에 한번씩 명절 때 마다 반가이 안부를 묻는 일이 반복되면 이런 벽은 깨질 것이다. 그러나 몇년씩 이런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한 목표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계에서 마당발이란 평가를 듣는 사람치고 이런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곤 없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발로 뛰었기 때문에 정보를 얻고 사업을 따내고 친구를 얻고 동지를 얻었다. 성공의 바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문화관광부 장관인 김한길 씨도 ‘편지쓰기’로 인맥을 넓힌 케이스다. 필자와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문화부 기자로 있을 때 처음 편지가 온 이후 1년에 한번은 편지를 받은 듯하다. 자신의 거취, 요즘 생각을 밝히는 인쇄물이어서 특별한 의미는 없었지만 필자는 1년에 한번은 어쨌든 그의 이름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특히 한번 이상 만난 사람에게는 직접 펜으로 쓴 편지를 때마다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치인 시절에 시작한 편지쓰기가 아니다. 소설가, 방송인 시절에 해온 것이다. 그래서 그가 ‘놀랍게도’ 장관이 됐을 때 필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당장 시작해도 손해없는 일 아닌가. 전화통화든 편지든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범위에서 자주’ 하는 것만으로 인맥은 만들어진다. 특히 사람을 많이 알면 알수록 도움이 되는 직종에 있거나 앞으로 ‘큰 일’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은 하루 20여분만 시간을 내면 되는 이 일을 바로 시작하는게 맞다.

자신의 불운을 학연 지연 그리고 소위 빽 등으로 탓하는 사람은 많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뒤에도 해결되지 않으면 모르겠거니와 그저 구조적인 문제로 치부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진지한 생활방식이 아닌 저급 처세술로 폄하하지도 말자. 미국인들이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시하는 능력 중의 하나인 ‘휴먼 네트워킹(Human Networking)’이 글자그대로 인맥만들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성을 다한 인맥 만들기, ‘성공 포트폴리오’에 빠져서는 안되는 투자종목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