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거장' 고암(顧庵) 이응노(1904~1989)의 예술혼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덕인을 찾아온다. 대전시립미술관 동편에 자리잡은 이응노미술관#이고시오~이 최근 준공됨에 따라 5월3일 개관을 앞든 것.

이응노 미술관은 한국화를 통해 세계 화단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화백의 유일한 전문 미술관으로 그의 삶과 예술을 연구하고 조명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는 백남준과 함께 해외에서 가장 각광받는 한국 출신 화가이다. 1958년 프랑스에 정착,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며 세계적인 예술가로 발돋움했다. 전 생애에 걸쳐 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예술가적 완성을 이룩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전시관이 대전에 터를 잡게 된 것은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 간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대전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대전은 그의 고향인 충남 예산과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홍성에서도 가깝게 있는 지역이다.

'군상'·'인간' 등 세계 명작 개관 전시회서 선보여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

이 화백은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그림을 그릴 정도로 창작열이 대단했는데, 그렇게 일생동안 그림 작품이 2만 여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응노 미술관에는 이 화백이 예술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부터 전 생애에 걸쳐 그린 작품 200여점을 부인 박인경(85) 씨 등으로부터 기증받아 수장하고 있다.

'예술의 진의'란 주제로 열릴 개막전에는 고암의 60년 예술역정을 살필 수 있도록 그림뿐 아니라 서예·조각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보여줄 계획이다.

이응노미술관#이고시오~은 이번 개관기념 전시회의 컨셉을 '고암의 삶과 예술 재조명', '고암 예술세계 계승 발전', '해외 미술관과 교류 시발점 구축', '대전 미술문화 도약 발판 마련'으로 잡고 현재 내부 준비가 한창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군상' 등 문자추상과 '인간' 시리즈 등 48점이 선보인다.

특히 그의 작품 '인간' 시리즈는 동양정신과 서양적 요소가 만나는 문자추상의 세계로부터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자유로이 춤추고 생동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등장하여 정치적 억압의 현실을 화면 속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의 문자추상은 동양의 서예 전통과 서양적 조형 구축의 방법이 어우러져 민족성과 세계성, 전통성과 현대성,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원적 가치를 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4개 전시실을 고암 미술 60년을 조명하는 전시로 꾸며진다. 입장과 함께 관람객이 첫 대면하는 작품은 파리 국립 타피리스트에서 제작된 고암의 대형 문자추상이다. 청색계통의 이 작품은 크기에서부터 관람객을 압도할 예정이다.

1전시실은 70~80년대, 2전시실은 60년대 초기 추상이 걸린다. 3전시실은 70년대 회화와 미공개된 세라믹 작품이 선보인다. 4전시실은 80년대 말년 작품과 조각 등이 선시된다.

프랑스 거장 '로랑 보두앵' 설계…미술관 자체가 예술


2005년 9월부터 57억원이 투입된 이응노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연 건축면적 1650㎡ 규모로 건립됐다. 이 미술관은 프랑스 대표 건축가 로랑 보두앵(Leauent Beaudouin)이 이 화백의 예술세계를 건축물로 외화시키기 위해 설계해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낭시 보자르 미술관(1999)과 아브르 보자르 미술관(1998)과 마티스 미술관(2002) 등을 설계한 로랑 보두앵은 투명한 창살 빗살무니를 기본 건축재로 자연채광을 받아들여, 이응노의 작품세계처럼 동양과 서양의 정신과 방법이 만나게 설계했다.

▲김연준 교수

로랑 보두앵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목원대 김연준 교수는 "이응노 미술관은 이 화백의 예술세계를 상징화한 건축물"이라며 "담장 역할을 하는 붉은 벽이 내·외부를 관통해 근경과 원경을 내부로 끌어들였고, 유리 천정에 목재루바를 덧대어 작품을 감상하기에 알맞은 빛을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술관은 유리창의 크기와 벽의 높낮이 등을 달리하면서 갑천변의 풍경이나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했고, 경사진 바닥면을 계단이 아닌 램프(ramp)로 공간의 변화를 꾀했다. 건물 전체적으로는 백색 콘크리트를 사용해 빛과 그림자의 대비효과를 극대화했다.

이지호 대전시립미술관장은 "동·서양화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이 화백의 미술관은 대덕의 명소를 넘어 한국의 명소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개막전 이후에도 이 화백을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상설·기획전을 잇따라 개최해 국제적 명성에 걸맞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미술관 정문 앞 소나무를 심어 놓았다.

▲ 정문 옆 벽. 네모진 창을 내어 갑천변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배려했다.

▲붉은 벽이 내·외벽을 관통해 공간미를 살렸다.

▲ 개관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전시관 내부 모습

▲전시관 내부의 천정모습. 나무살 사이로 들어온 빛이 은은하다.

▲이응노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꽃, 나무 등 자연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