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LG에 입사 하기전 부산생명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나의 첫 직장은 (주)한창이었고....

 

그런데 보험회사의 입사 동기였던 이태옥(나와 이름이 같았음)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날 보험회사에서 출세를 하려면 적어도 석사학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대학원시험을 같이 준비해 보자고 하였다.

 

그 후 이 친구는 죽어라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난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도 시험이라도 같이 보자고 졸라대서 입학원수를 접수시키고 시험을 같이

치루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이 친구는 똑 떨어지고 책 한번 보지 않았던 나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었다.

참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름이 같아서 합격자가 뒤바뀐게 아닌가도 생각했었다.

합격자를 서로 바꾸어달라고 대학원에 부탁도 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될 법한 일인가.

그런데 나로서도 이렇게 합격한 마당에 포기하는 것도 아까운 노릇이었다.

 

그래서 등록금을 내고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신입사원 주제에 업무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지친 하루일과를 마치고

야간 수업에 들어가 보면 졸기가 일수였다(수업시간에 조는 것은 고등학교 때 나의 전공이라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첫 학기말 시험이 다가왔는데 보험회사의 결산 마감과 겹쳐서 시험 공부는

엄두도 못내었다.

그래서 3학점짜리 3과목 모두 F학점을 각오하면서 시험치러 가는 거 자체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시험도 치러가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서 대학원장님과 담당교수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대학원의 공부는 더 이상 계속하기가 어렵다는 판단과 함께 교수님들께 작별인사를 하러 학교에 찾아 갔다.

사실 대학원교수님들이 수업에도 잘 들어 오지 않는 나를 알리도 없지만 예의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우선 대학원장님 방을 찾아갔다.

"원장님 저 보험금융석사과정 김태옥이라고 합니다"

"응 그런데 ?..."

"예 이번에 제가 기말 시험을 치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대학원장님이 대뜸 화을 내시면서

" 이 친구야 그런 소리 하려면 썩 물러 가라. 성적 구걸하러 온거야 지금?"

그런데 이런 교수님의 반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 들었다

 

"원장님 일단 들어 보고 화를 내십시요. 저는 성적을 달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온 거야?"

" 예 제가 온 것은 학생 신분으로서 공부를 했든 하지 않았든

시험을 치지 않았다는게 너무 죄송스러워서 사과를 하러 찾아 온 겁니다.

성적 안주셔도 됩니다"

 

그러자 원장님이 화를 누그러뜨리시고 한참을 쳐다보시더니

"그래? 그런 이유로 찾아 왔다면 참으로 드문일인데... 자네 이 테이블 앞에 앉아봐"

그리고선 답안지를 주시면서

"이번 시험에 무슨 문제가 나온 줄 알지?. 여기서 자네는 특별히 추가 시험을 볼

기회를 줄테니 답안 작성을 한번 해봐"

 

그러나 난 시험 문제가 뭐가 나왔는지 관심도 없었으므로 몰랐었다

"원장님 저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것도 몰라? 그럼 내가 나온 문제를 불러 줄테니 그중에서 골라 답안을 작성해봐"

 

그런데 원장님이 불러 주신 문제를 받아 적고 보니 앞이 캄캄했다.

공부를 하지 않은 놈이 문제를 불러 준다고 답이 나올 리가 있나

"저~ 원장님~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야 이 친구야 난 자네가 순수한 마음에 찾아 온 것이 고마워서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러니 그럼 자네가 문제를 만들고 답안을 작성해봐"

 

사실 난 대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갔었는데 자꾸 시험을 칠 기회를 주신다고 하니 한편 고맙기도 했지만 내가 왜 시험을 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었다.

그래도 연로하신 원장님께서 배려하셔서 기회를 주시는 건데

내가 문제를 만들고 내가 답안을 작성했다.

 

3과목을 신청했는데 유일하게 원장님이 직접 강의하신 그 과목만 A가 나왔고

나머지 2과목은 F를 받았다.

 

나머지 두 과목의 교수님을 찾아 뵙는 것은 포기를 하였다.

왜냐하면 또 교수실에서 시험을 별도로 보라고 할까봐...

 

그래서 대학원을 한학기만 다니고 때려 치웠다.

 

하지만 나에겐 참으로 소중한 추억거리였다.

 

사람이 살아 가다보면 진심이 사람을 감동 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20년 전의 일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