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그림여행] 



바다 # 김홍도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 

번뇌도 욕망도 창해에 좁쌀인 것을… 

세상 번잡 씻어주는 부처같은 바다 

남해 금산 보리암서 바라본 다도해 

/배철영 동의대 교수 



주제가 \'바다\'인데 왠 스님 그림이냐 하실지 모르겠다. 

지난 연말 이 난의 글 주제들 가운데 하나로 

\'바다\'가 잡혔을 땐 내심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 삶의 시간 많은 부분을 

여기 \'부산\'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잠시만 되돌아보아도 바다에 얽힌 

과거의 기억과 추억의 여러 파편들이 망각되지 않고 

생생하게 장면장면 현전(現前)한다.

 

어떤 걸 말하지? 

처음 이런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뒤적였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기억 속의 이미지들과 느낌이 

맞닿는 그림이 대체 찾아지질 않았다. 

게다가 바다를 그린 그림 자체가 뜻밖에도 드물었다. 



어쩐다? 그렇다고 다른 형태의 글을 쓰기는 싫었다. 



이런 머뭇거리는 과정에서 불현듯 한 그림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1800년 이후)가 떠올랐고,

이 그림을 내가 바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 느낌과

연관지어 말하고자 작정하였다.이 느낌은 바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자 일종의 존재 이해였다. 



스무 한 살 때 팔월 중순경 나는 친구 둘과 

남해 금산 보리암에 갔었다. 지금은 산 정상까지 

차도가 나 있어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몇 시간 걸어서 올라야 암자까지 갈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나는 암자 근처 바위에 주저앉아 

멀리 다도해를 내려다보았다. 

앞이 탁 트인 게 정말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들이 도착하려면 좀 더 있어야 했다.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전날 상주 해수욕장에서 알게 된 

여자 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쉬엄쉬엄 올라오고 있었다.) 

기다릴 겸 보궁(寶宮)이나 구경하자싶어 절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아주머니 세 분이 채소를 씻고 있었다. 



법당에 그냥 들어가기도 뭐 하고 절 예법도 모르는지라 대충 물었다.

 \"저,부처님에게는 절을 몇 번 하면 됩니까?\" 

아주머니 한 분이 말했다. 

\"세 번 하세요.\" 

그러자 다른 한 분이 거들었다.

 \"아홉 번 해요.\" 

이어 또 다른 한 분이 말했다. 

\"부처님에게 절 하는데 몇 번 하고가 어디 있어요?\" 



법당에 들어서자 나는 절 세 번만 하고 나오지 마음먹었다. 

그리고 절을 시작하였다. 

그 때 내 안에서 말이 시작되었던 듯 하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어찌 된 건가? 

절 세 번이 끝났건만 말이 끝나질 않았다. 

해서 절을 더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다시 말이 이어졌고 절도 따라 이어지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고 도피하듯 

얼른 바깥으로 허겁지겁 나와 버렸다. 



그러자 바다가 보였다. 말과 절의 얽힘이 끊어지고,

갑자기 소리마저 없어지고 난 뒤의 맑고 고요함. 

그건 바다였고,또한 부처 같았다. 

저기 너머 바다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존재하였고,

그 바다를 나는 조용하고 편안하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후로도 바다에 종종 가게 되었지만 이런 느낌이 

잘 일어나지는 않았다.그렇다고 그 느낌의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몇 년 전 단원의 

이 그림을 처음 대했을 때 어찌된 셈인지 

그때 남해의 바다가 자꾸만 상기되었다. 

그 바다의 고요와 평안의 미학이 그대로 

이 그림에 담겨 있는 듯 하였다. 



그림에는 파르라니 정갈하게 머리를 깎은 스님이 

장삼을 걸치고 연꽂 대좌에 단정하게 돌아 앉아 계신다. 

단호한 듯 하면서도 평온하게 등을 돌리고 

앉으신 모습이 이젠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어떤 걸림도 없이 벗어나신 듯 하다. 



머리에는 두광(頭光)인지 서쪽 하늘로 지는 보름달인지 

구분되지는 않으나 환한 빛이 모시 바탕 결마다 

가득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 밝음은 자연스럽게 

바탕 바깥으로 나와 나의 마음까지 흠뻑 적신다. 

언제 보아도 너무나 명상적이고 아름답다. 



얼마 전 타계한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이 그림을 보고 

\"예술과 종교는 하나\"라고 자신의 책,\'단원 김홍도\'에서 썼다. 

근대 이후 예술과 종교는 분리되는 게 미덕이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엔 \"종교와 예술이 지극한 것이 되고 보면

,예술은 종교이고 종교는 곧 예술이다. 

이 때 예술과 종교는 바로 삶이다.

\" 나는 오주석의 이 말의 진정한 내포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주저되지만 지금으로서는 액면 그대로 동의한다. 



다르게 조금 더 보탠다면 \'표현할 수 없는 것

\'(절대성,이념성 등)을 표현하고자 한 점에서 

우리의 옛 그림은 이미 숭고의 미학을 

서양의 모던 회화와 공유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의 숭고는 \'놀라움\'과 \'충격\'의 의미이고,

우리의 숭고는 놀라움 이후의 \'평안\'과 \'고요\'를 지향한다.

\'염불서승도\'는 그 주요한 증거이다. 



단원의 이 그림을 만난 이후,

나는 세상사의 번잡스러움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슬며시 이 그림을 꺼내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행여나 한 소식 들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다. 



한참 후 친구들이 여자 분들과 함께 암자 

입구 돌문을 들어서는 게 보였다. 

녀석들은 아직도 모른다. 그 여름 날 금산 꼭대기에서 잠시 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하하. 





05년 03월 03일 부산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