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신고없이 살짝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동문님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인사 겸 간단한 참가기를 올립니다.

작년 경이달을 마치고 특별한 계기가 없어서인지, 평소의 달리기 연습을 전혀 하지 못하여 목표를 세울 겸 제2회 BBU에 참가신청을 하였다. 참가신청하고 마음을 다 잡으려 했지만 12월에 들어섰습니다. 연습도 제대로 안되고, 시간을 흐르니 공연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방학이 시작할 무렵부터 연습을 시작하여 매일 범어사일주 도로를 하루에 두 바퀴(약 10km)씩 돌기로 하였다. 간신히 200km를 체운 12월 31일 장거리주 50km(선동-철마-곰내재-전관-월내-전관-철마-선동)로 2005년을 보냈다. 새해 들어 100여km 연습으로 나름대로 하긴 했으나 점점 체력에 자신이 떨어지며 참가를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공연히 일을 만들어 스트레스만 더 만드는 것 같았다. 몇 일전 동료인 김동국 교수가 가는 길에 픽업해 주겠단다.

14일 오후 5시경 집에서 나설 때, 집사람은 배낭을 챙겨주고는 그냥 \'잘 다녀오라\'는 간단한 말뿐이다. 두어 번 했으니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할 것 없다는 것이다. \'내일 도착하기 두 시간 전에 알려주면 시간 맞추어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밀려 나오듯이 집을 나선다.

을숙도 수자원공사 앞에 도착하니 7시경이다. 두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강상중 고교 동기와 대회장 김병호씨가 집행부의 일원으로 나와 있다. 효마클의 한경애 회장을 비롯한 자봉회원들과 참가자들, 망마클의 김대경 부부와 울트라 공장장 손우현 동문 -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고려대학교 부산교우회에서는 주태완 사무처장, 안병국 선배, 강(여)후배, 늦게 김의영 선배까지 출동하셨다. 동호인이 아닌 교우들이 응원해 줄려고 나온 것이다. 아!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이 은혜를 어떻게 보상해드려야 할 것인지, 앞으로 잘 해 드려야 할텐데...

드디어 출발시간이다. 열, 아홉,..... 둘, 하나. 출발.
평소에 독립군으로 연습한지라 속도가 맞는 파트너가 따로 없다. 가면서 적당한 메이트를 찾을 예정이다. 명지대로로 들어서니 한 팀의 속도가 마음에 든다. 같이 일행에 어울려서 보니 km당 7분정도로 안성맞춤이다. 가만히 보니 시각장애자와 도우미들의 팀이다. 2~3km정도 동행하는데 나중에 어울린 주자 한사람의 주행이 신경 쓰이게 한다. 아쉽지만 이 팀을 포기하고 앞으로 나섰다. 독립군으로 가는 것이 나에겐 편한 것 같다.

15km지점에 가니 효마클의 자봉장소다. 모두 나를 알아보고 화이팅을 외치며 힘을 실어준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계속 나아간다. 속도가 7분보다 약간 빠른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큰 문제가 없어 그대로 계속 간다. 남문휴게소를 지나 주택단지를 조성한 지점이다. 앞에 가는 두 사람이 눈에 익다. 가까이 가서 보니 김대경 부부다. 이 부부는 첫 번째 출전이기는 하지만 sub12를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내 페이스가 너무 빠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속도가 어느 정도냐\'니까 km당 6분 30초 내외란다. 한 2~3km동행하다가 12시가 되었길 래 먼저 보내고 가지고 온 야참을 꺼내 먹었다. 한번 완주한 길이라 편하게 가리라 마음먹고 다시 출발한다. 속도를 줄여 다시는 김대경 부부와 조우하지 않기로.

STX를 지나 진해로 들어선다. 작년의 곡선코스를 직진화한 35km지점에서 오뎅을 준다. 따끈따끈한 국물이 그리 좋을 수없다. 고마움을 전하고 계속 전진한다. 지루한 직선코스를 지나고 안민고개입구인 40km지점이다. 따뜻한 꿀물 한잔하고 오르막을 향한다. 오늘의 목표는 어떤 오르막이든지 걷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천천히 달려간다. 달리는 속도나 걷는 속도나 차이가 없다. 그래도 달린다. 4.5km를 오르는 동안 20여명은 재낀 것 같다. 지날 때 마다 수고한다 든지 힘내라든지 한 마디씩 전하면서. 달려서 올라가다니 대단하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안민고개위에 올라서니 새벽 2시 17분경이다. 내리막을 천천히 달려 내려온다. 아까 내가 재끼고 온 주자 중 7~8명이 추월해 간다.

반환점에 도착하니 2시 53분, 지금까지 km당 7분 정도를 유지한 셈이다. 제공해 주는 국밥을 천천히 먹고 다시 출발한다. 소화를 시킬 겸 한 5분을 걷다가 조금씩 속도를 올려본다. 이 고개를 다시 넘으면 2/3는 한 것이다 고 생각하면서 달려 넘어가기로 작정한다. 60km지점에 오니 4시간 26분 정도 걸렸다. 식사시간 10여분을 빼면 80분 걸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후반부에 체력이 어떨지가 걱정이다. 걱정은 그 때 가서 하고 지금은 갈수 있는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STX, 70km지점에 도착하니 5시 38분, 여기까지도 잘 왔다

여기부터는 큰 고개는 아니나 만만치 않는 고개가 몇 개인지도 모를 만큼 많은 곳이다. 알고 있는 것이 병인가, 체력이 소진된 것인가, 해변 따라 돌고 돌면서 언덕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76km지점에 오니 막달리자 자봉이 있다. 오뎅 국물을 두 그릇이나 마시고 아까부터 발바닥이 따끔 그린 것을 본다. 물집이 잡힐 징조인가 걱정이다. 양말을 kaist로 갈아 신으니 기분이 다소 상쾌해진다. 남문휴게소에 오니 7시가 되길 래 집에 전화를 한다. 빠르면 9시 반, 늦으면 10시까지 도착할 것 같다고. 부재중 전화가 두통이 있다. 하나는 강상중이다. 전화를 하니 몸 상태가 어떠냐며 걱정한다. 견딜 만 하고 특별한 부상은 없다고 알려주니, 10시간이내에 온 사람이 2~3명밖에 안된다고 알려주면서 무리하지 말란다. 또 하나는 박명석이다. 지금 고성 마라톤에 가는 중이란다. 이번에는 기록이 조금 낳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고 잘 달리고 오라고 격려를 주고받는다.

80km지점에 도착하니 7시 15분, 자봉이 주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내가 미련스럽게 이렇게 먼 100km를 달리는 이유가 뭔가? 누구처럼 의사의 권고로 죽지 않으려고 달리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엘리트 선수가 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참가할 때만 되면 공연히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스트레스만 받는데, 왜 내가 이 짓을 하는가? 건데 나는 미쳐서 미친놈이라서 달리는 것이니 내가 나를 이해하든지 말았든지 그렇지만, 밤새도록 한자리에서 달리미가 한사람씩 올 때마다 격려해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자봉 저이들은 웬 고생인고? 내가 달리는 이유를 생각할 겨를보다 자봉 도우미에 대한 감사를 먼저 할 때다 하는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훵 빈 것같고 그냥 발을 내미는 일만 남은 것 같다.


효마클이 자봉하는 85km지점에 도착하니 8시 정각이다. 효마클 회원들의 응원과 격려가 뜨겁다. 한경애 회장이 효마클 참가자중에서 제일 먼저 들어왔다며 다리며 어깨며 안마를 해 준다. 꿈결같은 시간이다. 지금까지 거의 독달하며 그냥 자연과 내 체력과의 경합(?)을 혼자 해 왔는데, 이렇게 우군이 많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냥 쉴까? 그래도 가야지. 효마클 회원의 화이팅을 들으며 출발한다.

지금부터는 지긋지긋한 대로다. 가도 가도 똑 같은 모습의 대로를 가야 한다. 몇 사람을 지나치면서 서로 안부도 묻고 격려도 한다. 신경 쓰이는 것은 전경이 인도로 올라가라고 간다. 인도에서는 발목을 다칠 수 있으니 한쪽으로 붙어 갈테니 봐달라고 부탁하여 차도로 간다. 얼마 안가서 순찰차가 마아크로 인도로 올라가라며 고함을 지른다. 순찰차를 만나 사정이야기를 하고 달리미들의 편의를 부탁해본다. 막무가내다. 무조건 올라가란다. 규정이 그래서 봐 줄 수 없단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한바탕 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인도로 올라섰다.

일반 서민이 법이나 규정을 정확히 모르니 경관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도리이리라. 길은 지루하고 보도 블럭은 신경 쓰이니, 점점 화가 오른다. 그래. 강서경찰서장, 강서경찰서 교통과장, 법을 엄격이 잘 집행했으니 표창이라도 하라고 청와대에 상신할까. 그래야 할 것 같지만 현재 내정서상으로 그렇게는 못하겠다. 법이 뭔지 몰라도, 사람나고 차났으니 사람을 보호하고 사람의 편의를 도와주는 것이 시민의 지팡이 아닌가? 요즘은 경찰이 스스로 시민의 지팡이란 말을 쓰지 않는가? 데모대에 얻어 맞으니 그 말은 쓰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네. 내가 참 고약한 시기에 달리는 것 같구나. 잠간 동안 온갖 상념에 빠져든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니 어쩌랴. 좀더 씹어야지. 요즘 경찰청장이 날라 가고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그런가? 그런데 권위는 누가 세워 주는가? 대통령인가? 글쎄. 혹시 국민들이 아닐까. 나는 힘이 없지만 내가 경찰이 하는 일에 고마워하고 내 옆에 사람도 경찰이 하는 일에 고마워하고 그 옆에 사람도, 그리고 그옆에 사람도. 안 그럴까?

법은 몰라도 사리로 따져 보자, 휴일인 일요일 편도3~4차선에 다니는 차량의 대수는 몇 대되지 않는 아침과 오전에 어린 전경들을 신호등이 있는 곳마다 한명씩 배치해 둔 강서경찰서장님께서 법에 따라 사람은 인도로, 차는 차도로, 아니면 법을 지키기 위해 순찰차로 돌면서 마이크로 고함을 질러 교통법규를 지키게 지시하는 것이 유능한 서장의 책무일까?

달리 생각해 보자. 강서구 신호대로는 부산의 공단으로 국가경제의 동력이 되는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다. 모든 서민이 경제에 목을 메는 이 시기에 전국에서 모인 달리미들에게 신호공단의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것은 지역발전에도 좋은 일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건 경찰서장의 일이 아닌데요. 그렇네요. 그런건 구청장이나 구의원들이나 따질 일이고 경찰하고는 관계가 없지. 맞네요. 어느 서부 영화에 보니 보안관이 담당구역의 보안을 책임지는데 보안관을 선거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네. 우리는 경찰서장이 명에 따라 이 지역에 근무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면 가야 되니, 임지에서는 법만 집행하면 되는 것이지. 그러니 힘 있는 위만 보면 권위도 뭐도 생기지. 바보같은 서민들아, 너희가 경찰의 권위를 아는가? 어흠..

생각이 복잡하니 속도도 나지 않고 쓸데없는 머리를 굴리지 에너지 소모도 많아서 그런지 95km정도의 지점에 오니 발걸음이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다. 배낭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고 다시 움직인다. 하구언 다리까지의 인도는 정말 죽여준다. 도대체 이놈의 인도는 이렇게 해 두어도 되는 건가? 고관대작들이 차타고 가면서 보이지만 않으면 괜찮은 건가? 또 열이 오른다. 시간을 보니 열을 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번에 잘 하면 13시간 이내로 들어갈 수 있겠는데. 하구언 차도 뒷길이 생각보다 길다. 아마 힘이 소진되어 그렇겠지. 드디어 도착한다. 결승점이 보이고 앞사람이 50여m앞에서 들어간다. 나도 여유를 가지고 테이프를 끊었다. 김병호 대회장님, 강상중 동기, 집사람, 안영국선배님, 이성우후배, 모두 축하해 준다. 강상중동기가 60대에서 등수에 든다고 상품권을 한 장 받아다 준다. 육십이라고? 병술생이니, 구정이 지나야 60이지. 상품권은 챙기고, 혼자 속으로 투털 댄다. 몇 학년이냐고? 지금까지 4학년 19반이었고 이제 20반될라 한다. 와?

달리는 이유는 꼭 지금 정리하고 알아야 하나? 모른다고 못 달리라는 사람 없제? 그러면, 우선 좀 쉬고 다음에 생각하자. 오늘은 어떻든 기분만은 좋았으니 됐지 않는가. 응원해 주신 모든 분, 주로에 함께 달렸던 모든 분, 그리고 밤새워 자봉으로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