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눔이 정말 완주할줄 몰랐다. 아니, 완주하면 안되었기에 혼자(?)두고 갔다.
우리는 뛰면서 약속했다.
지금까지 가장많이 뛰었던 15키로를 넘었어니까 힘들면 언제던지 버스를 타기로....

처음 대하는 마라톤대회가 메이저급인 '중마'라 많은 인파에 이눔은 조금은 흥분이 된것 같다.
애초에는 10키로에 도전하기로 했다가,갑자기 풀코스 배번이 생겨서 엉겁결에 풀코스 주로에 같이 섰다.
어차피 나도 연습량이 부족하던차에 익현이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로 했다.
작년 이맘때, 경수가 나에게 했던것 처럼....
2만5천이 넘는 인파의 뒷쪽 말미에서, 둘은 같이 천천이 꼬리를 물고 나갔다.
잠실역을 지나고, 올림픽 공원을 지나는 동안, 나는 그눔이 힘들어 하지않게 부지런히 떠들었다.
경수가 작년에 했던것 처럼...
10키로가 지났는데도 얼굴만 좀 벌겋게 달아올랐지, 제법 잘 뛴다.
같이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데, 인파에 밀려 쉽지않다.
자꾸내가 앞에 나가고, 뒤를 자꾸 뒤돌아본다.
페이스메이커가 쉽지 않다고 말은 들었지만, 스스로 혼자 알아서 뛰는것 보다 훨씬 성가시다.
작년에 내내 내옆에서 고생한 경수를 생각하니, 그놈한테 또 미안하다.

올림픽 아파트를 지나고, 길동사거리를 꺽어 도는데,'구미마라톤' 아지매가 앞에서 아장아장 뛰고 있다.
"경북 구미에서 왔습니꺼???"
"예, 남편하고 왔는데요. 지난주에는 춘천에도 다녀왔습니다."
헉!!!!!  2주연속 풀코스....
기가질렸지만 , 익현이 얼굴을 뒤돌아 봐가며 자꾸 말을 걸어 본다.
동래고 출신들이라고 하니까, 바로 동래여고 출신이라고 밝힌다. 집은 온천장 이란다.
"익현아!!! 여기 미나리 한분 계시네!!!"
미간이 찌거러들었던 익현이 얼굴이 금새 확 펴지며 달려온다.
"내 첫사랑이 81학번 미나리 출신인데..."
이때부터 익현이의 이빨(?)이 시작 되었다.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수많은 담소(?)을 나누면서, 둘은 잘도 뛴다.
구미 엘지전자 임원생활 9년차의 남편과 수많은 하프코스와 풀코스를 섭렵했다는 미나리 아지매와 자상하고 붙임성 좋은 배뿔래기 익현이는 꼭 한쌍의 부부(?) 같다.
18키로 정도에서 나란히 화장실을 가는걸 보고, 미나리 아지매한테 익현이를 맡기고 혼자 치고 나갔다.
평소, 새벽에 가락시장길로 이용하던 코스라 눈에 익어서인지 모처럼 주위의 모든 풍광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뛰었다.
25키로 반환점을 돌아서 1키로 정도 왔을때
나는 내눈을 의심 했다.
20키로를 넘어면 차를 탈걸로 생각한 익현이가 반환점을 향해 오고 있었고, 조금뒤에 미나리 아지매가 따라오고 있었다.
반갑고, 불안하고...... 큰소리로 서로를 향해 화이팅을 외치고 외로이 달렸다.
가게를 정리하고 새일을 시작하기까지, 6개월동안 훈련을 게을리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30키로가 지나면서 양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새로 시작한 유통사업도 이보단 더 힘들거라 믿고, 이 정도는 참고 견디자며 무거운 다리를 옮겨본다.

운동장 입구에서, 카메라를 든 이재욱 선배가 반기고, 서병재, 김상현선배님의 응원소리가 다리를 가볍게 해 주신다.
4시간42분24초. 완주했다.
작년 처음 도전때 보다 기록은 저조했지만, 포기하지않고 완주한걸 스스로에 감사한다.
텐트에서 먼저 도착하신 선배님들의 격려를 받어면서 막걸리를 한잔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 익현이가 궁금했다.
차를 탔겠지???? 아직 뛰고 있지나 않을까???
다른 선배님들은, 벌써 도착했어야하는 최양경선배 걱정으로 화제집중인데, 나는 익현이 안부가 궁금했다.
29키로를 뛰고 차를타고온 용찬이에 이어, 생애처음 완주한 56회 김영환선배가 들어오고.....
한참후에, 눈을 의심한지 3시간여 후에 나는 또 귀를 의심했다.
"익현이가 완주 했어요!!!"
양경이 선배를 마중나갔던 재욱이 선배의 흥분된 목소리에, 난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이눔이 정말 사고를 쳤구나!!!  마라톤을 시작한지 3개월도 안된, 남산만한 배를 안고(?)있는놈이 풀코스 완주라니..."
벌겋게 상기된 그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놈의 목을 와락 끌아 안아버렸다.
생애 첫완주를 같이 뛰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 무사히(?) 돌아와준 고마움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5시간의 규정시간이 지난 레이스는 더욱 힘들다.
교통통제도 해제되어 신호등을 지켜야 되고, 인도로 뛰어야하고...
오로지 완주하겠다는 일념으로 뛰어온 친구에게 찬사를 보낸다.
못난 동기놈대신 친구를 보필(?)해 주신 56회 최양경선배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화창한 가을날, 높은 하늘만큼 즐거움을 준 친구가 있었기에 그날 대회는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