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인사드립니다.
 

금번 부친 상사시에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 따뜻하신 위로의 말씀과 후의를 베풀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마땅히 찾아뵙고 인사드림이 도리이오나 황망중이오라 우선 서신으로 갈음하오니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아버님이 떠나신 지 8일째입니다. 아직 떠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책상 달력을 보니, 9월4일 “세브란스 입원“이라는 메모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버님이 재입원 예약이 되어 있던 날입니다.

두 줄로 메모를 지웁니다. 이제 이렇게 아버님은 현실과 이승에서의 일들에서 하나씩 지워지겠지요...

아버지는 항상 따뜻하셨습니다. 겨울에는 저희들 이부자리에 먼저 누워계셨습니다. 그 체온은 겨울밤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얼굴에 손을 대어 보았습니다. 차가웠습니다. 늘 따뜻했던 아버지가 차가웠습니다. 그것이 처음으로 느낀 “실감”이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늘 따뜻한 아버지가 처음으로 차가워진 것을 실감하였던 것입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아버님을 묻고 난 다음날입니다. 무덤을 덮고 있던 잔디가 뿌리를 잘 내릴 것 같습니다. 새파란 잔디가 무덤의 흙을 덮고 새로운 생명의 힘으로 돋아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색함이 있지만, 밥도 먹고, 사람들과 어울려 시시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이 밀려 있습니다. 제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이 뜻을 받드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 곁에 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편안히 아버님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동래고 동문과 동기들의 위로와 도움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고 뜻하시는 일 모두 성취되길 기원합니다.

2008년 9월
孤子 이철규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