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고등학교재경총동창회

제목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원정기(1부)
글쓴이	이윤재(48) [ leopard69@gmail.com ]
작성일	2018-05-04

미스따레, 미스따리…

이번 6박7일의 Anna Purana Base Camp Trekking 여정동안 먹고 잘 때 빼고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특급 화두(話頭)였다.

처음 듣는 네팔어라 처음엔 곧 잊었으나 “천천히”란 뜻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곧 내 이름 “미스터 리”를 연상하며 4,130미터의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이르는 힘든 오름길 뿐만 아니라 내려오는 내내 줄기차게 마음 속으로 이것을 되뇌었던 것은 천혜의 자연과 함께하는 진정한 Slow Life 체험을 향한 내 욕구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란드룩(Landruk)과 간드룩(Ghandruk) 인근지역의 현지 원주민구룽(Gurung)족 마을을 지나면서 맨발 굳은살의 시커먼 그들 유기농 모습을 보며 벌써 난 원래 가이드와포터 없이 혼자 일정을 묶지 않고 내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려 했던 당초 계획을 밀어붙여야 했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요가가 새로운 나의 가족사업이 되면서 자연스레 접하게된 수많은 요가철학의 개념들이 Tardius, Humilis, Mollius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부드럽게) 이세 개의 완전 Le CAF 올림픽 정신(Citius 더 빠르게, Altius 더 높이, Fortius 더 강하게)에 상반하는 소리 없는 외침으로 다가왔을 무렵 난 어느덧 슬로 라이프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건 한때 엄청나게 뜨거웠던 내 가슴 속 용광로의 불을 꺼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게 오래 살리는 방책이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아주 천천히 즐기기 위한 원동력의 꺼지지 않는 불씨로 영원히 남아있기를 기원하면서..

그런데, 헐~~~

정작 천천히란 뜻의 네팔어는 자세히 알아보니 “비스따리” (Bistarai, बिस्तारै) 이다. 이런 덴장.. 그러나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히말라야 롯지나 게스트하우스 곳곳에 붙어있는 간판에 표시된 고도가 제멋대론데미스따레면 어떻고 비스따리면 어떠하리… 그 뜻만은 언제나 내 가슴 속 깊이 남아있을 테니까..

어쨌든 참나(眞我)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나를 찾아 떠난 그간의 일정을 되돌아보고 또 누군가에게 작은 참고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바람으로 지난 2주의 우리 원정대 행적을 되새김해본다. (기실나 스스로 SNS를 통해 많은 값진 정보를 공유했었고 그게 이번 여행에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180416 (월)

아들 녀석이 승용차로 용인 버스터미널까지 태워 줘서 인천공항행 8852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간밤에 설친 잠을 만회하려 눈을 붙여보지만왠지 잠이 들지 않는다. 그 동안 수없이 다녔던 해외출장여행에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분이 전혀 색다른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미지의 세계로 떠나리라는 꿈을 다시 꾸어 본다. (꿈은 언제나 이루어진다..)

박섐 부부 만나서 출국수속 마치고 제시간에 정확히 하늘로날아올랐다. 연경(燕京)맥주한 캔에 가슴이 후련해지고 이어 9,800미터 상공에서 맞이한 따뜻한 기내 음식에 걸친 한잔의 레드와인이 몸과 마음을 한없이 아래로 내려놓는다.

정확히 2시간12분 비행하여 중국 청두공항에 착륙, 곧 이어 에어차이나 카운터에서무료 환승호텔 수속을 해야 하는데 앞에 선 똥차에 길이 막힌다. 울산에서 온 10여명의 교회 신도들이 환승호텔 예약하지 못한 잘못을 생때 어거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진 빠지게 기다려 약 3시간 후 19:50 청두 尙祥호텔 체크인.. 곧바로 저녁 먹으러 나왔으나 여의치 않아 4층에 있는 호텔 식당으로갔다. 오랜 중국 유학 경력의 박섐이 시킨 요리를 보니 어렵사리 좁은 등산배낭에 우겨넣었던 빨간딱지참이슬 한 병 까지 않을 수 없었다.

180417 (화)

05:00 모닝콜에 기상 서둘러 05:30 셔틀버스에 올랐다.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비닐봉지에 넣어주는 빵과 우유다. 정확히 10분 후 청두공항 1터미널 도착. 08:55 카트만두를 향한 에어차이나 CA437 이륙. 또 연경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네팔 현지시각 09:35 카트만두 Tribhuvan 공항에 착륙하니 청두로부터 2시간55분의 비행이다. Tribhuvan은 국제공항이라지만 아주 소박한 시골 비행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도착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우선 자동발급머신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이 시각 도착 승객들이 많아 시간이 꽤 걸린다. 머신에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최대 15일 체류 비자 신청을 하면 25불, 발급된 확인증으로 다른 카운터에서 이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입국수속과 짐을 찾아서 통과의례를 마친 시각이 11:00 였으니 이 모든 과정에 착륙 후 1시간25분이 소요된 셈이다.

네팔에서의 교신은 현지 휴대폰 유심(USIM)을 사용하기로 하였으니 우선 네팔 루피가 필요하다. 공항 내 환전소의 환율을 보니 1달러당 102.45루피다. 이건 내가 예상했던 카트만두 시내 환전명소의 104보다는 턱없이 낮은 환율이다. 통과… 공항을 빠져나오니 바로 앞에 또 다른 환전소가 있는데 환율을 보니 102 정도이다. 아까 거기서 할 걸 했지만 여기엔 돈이 모자라 환전을 못해준단다.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환전소가 있다고 하여 그곳에 갔더니 이번엔 더 나빠져 101.75다.. 구관이 명관 이라더니 ㅉㅉ.. 그러나 네팔 루피 사용이 절박하니 어쩔 수 없이 환전을 해야 했다. 귀국 후 사용 경비 정산을 하며 느낀 점은, 국내에선 아예 네팔 루피 환전이 되지 않아 달러로 환전해 와야 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달러로 루피 환전할 때의 환율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환율이 안 좋은 곳에서는 필요한 금액만큼 소액만 환전하고 환율 좋은 곳에서 큰 금액을 환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체류 동안 써야할 루피에 대한 환차손이 상당히 크게 된다. (루피를 쓰지만 실제 달러를 쓰는 것이다.. 네팔루피 한국에서 원화로 환전 되지 않는다)

환전 후 공항 출구 우측 약 30미터 정도에 있는 Ncell(네팔 국립 이동통신사) shop으로 갔다. 출국 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2.5GB 데이터 사용과 80분 통화30일 유효 조건으로 800루피에 SIM Chip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실제 800루피에 같은 조건으로 데이터는5GB를 준다. 우리 돈 9,000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 치고는 아주 좋은 편이다. 이놈이 잘 터져주기만 한다면 한국과의 카톡 교신과 보이스톡 페이스톡 등은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칩을 교체해 주는 젊은이에게 우리 ABC 가는데 데이터통신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간단히 “Forget it!” 이란다. 뒤에 깨달은 사실은 5기가의 데이터 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200루피 더 주고 3G 대신 4G를 선택했어야 한다는 점… 산 위에 올라가 보면 알게 된다..)

이어서 바로 옆에 인접한 국내선 공항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 산행기점인 Pokhara(포카라)로 가는 예티항공(Yeti Airline) 14:50발 YT683을 타기위해서다. 국내선 청사는 국제선에서 나와 우측으로 돌아 약 5분 정도 직진하면 나타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이른 포카라행 항공권을 예매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선 청사는 우리의 60-70년대 시골 버스 대합실과 비슷한 분위기다. 30도에 육박하는 후텁지근한 열기와 여기저기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배고픔을 느껴 2층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모모(Momo)라는 우리의 만두와 거의 같은 것 한 접시와 볶음밥 3인분에 생수 한 병을 시켰는데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고 값은 우리 돈 12,000원 정도이니 이곳 물가가 아주 저렴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티항공 카운터에서 배낭을 수하물로 부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딩 게이트를 향해 갈 때만해도 가슴은 히말라야를 향한 꿈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곧 전광판에 Delay가 계속 반복되더니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오늘 17:00에 포카라 “놀이터” 사장과 만나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데…

전화를 걸어 이쪽 사정을 설명하였더니 의외로 느긋하다. 두 세 시간 늦어지는 국내선 항공편은 다반사로 흔한 일상사란다. 그리고 포카라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했다.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는 계기착륙이 아니라 순전히 조종사의 육안에 의해 착륙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아예 카트만두에서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침 내 앞에 80리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배낭을 맨 젊은이가 있길래 말을 걸었더니 인도 벵갈로르에서 왔는데 EBC(Everest Basecamp)에 간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Lukla로 가는 경비행기가 지난 이틀 결항이었다가 오늘 드디어 출발한다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드디어 우리의 탑승수속이 시작되었다. 비행기까지 가는 셔틀버스에 승차하긴 했는데 운전기사가 없다. 또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다 성질 급한 한 현지인이 내려서 알아보고 오더니 포카라 기상 악화로 우리 뱅기 결항이라신다. 우리 바로 앞에 이륙했던 포카라행 뱅기는 카트만두로 회항 중이고.. 첫날부터 일이 상당히 꼬이네…

잽싸게 카운트로 가서 내일 첫 비행편 예매를 시도했으나 순서에 밀려 세 번째 편인 08:15 항공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부산의 박원장이 개별적으로 오늘 오후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일단 국제선으로 다시 돌아가 그의 도착을 기다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의 대한항공편 도착이 17:35이라고 스크린에 떴는데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덩치 큰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 무슨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로부터 카톡이 온다. 헐~~~ 벌써 호텔에 도착했단다… 우리가 아직 카트만두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그가 체크인 한 Holy Himalaya Hotel로 간다. Private Taxi 기사가 달라는 대로 800루피 다 주고..

우여곡절 끝에 그를 만나 합이 4명의 원정대 팀 구성을 완성한 우리는 카트만두 Thamel 거리에서 늦은 저녁 식사로 네팔의 첫날밤을 즐겼다. 시원한 Everest Beer와 함께… (원래 계획은 우리 세 명이 오늘 포카라 가서 모든 준비 끝내고 내일 아침 08:30 박원장을 포카라 공항에서 픽업하여 곧바로 산 속으로 직행하는 것이었는데… 어디에나 복병은 있다. 그에 대한 플랜B도 우린 갖고있다..)

180418 (수)

드디어 히말라야를 향한 포카라행 비행기가 하늘로 솟았다. 원래 시간보다 한참 늦은 09:27에 이륙하여 정확히 25분 비행 후 0952에 포카라에 착륙하긴 했지만 날아준 것 만도 천만다행이다. 서둘러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아 300루피에 흥정하여 “놀이터”로 향한다. 기사가 대번에 알아듣는 걸 보니 놀이터가 포카라에 잘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10년째 네팔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합천 출신 권사장은 내가 미리 이메일로 교신한대로 TIMS(Trekker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과 ACAP(Annapurna Conservation Area Project) 두 종류의 소위 보호구역 입장허가서와 가이드 및 포터를 수배해 놓았다. TIMS/ACAP permit이 각각 한 사람 당 20불 + 수수료 5불, 에이스급 가이드가 하루 20불, 그리고 일반 포터가 배낭에 15킬로까지 하루 13불.. 모두 달러로 결제하고 포터용 배낭 및 등산스틱도 여기서 대여할 수 있었다.

우리 일정이 원래 계획보다 2시간 이상 늦어져 서둘러 대기 중인 지프에 짐을 싣고 10:47 놀이터 출발 인도와 아주 유사하게 무질서하고 혼돈스런 도심지를 곡예 하듯 빠져나와 오늘 우리가 트레킹을 시작할 Siwai를 향해 험로를 질주한다. 제도권의 애쓴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도로 인프라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우리나라의 전후(戰後) 시골길을 연상하면 될 듯..

흔들흔들 덜컹덜컹 이러구러 세 시간을 달려 13:50 Siwai에 도착 여기서부터 트레킹 시작이다. 우선 배를 채워야 하니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가 일단 배낭을 내린다.

식사 준비 동안 밖으로 나와 동네를 살펴보니 이곳은 Ghandruk과 Landruk 중간 지점으로 보여지는데 바로 원주민 구룽족의 생생한 삶의 실상이 코앞에 다가온다. 맨발에 거친 피부지만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해맑다.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니 무슨 욕심이 따로 있으리요… 절로 두 손이 모여 조용히 나마스떼를 내뱉는다.

산행 중 처음 맞이하는 식사인데 맛이 의외로 좋다.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던 인도 현지 음식과 달리 백 퍼센트 유기농 재료의 신선함과 담백함이 그대로 혀 끝에서 느껴진다.

한 시간여의 휴식과 식사를 마치고 15:00 실질적인 제1일차 ABC 트레킹이 시작된다. 포카라 도착 당시 외기 온도가 약 27도였는데 이곳은 상대습도가 상당히 양호하게 느껴져 체감온도는 23-4도 정도 되는 것 같다. 산행 들머리부터 히말라야 산군(山群)의 거대한 위용이 바로 감지되어 고개를 들면 어지러울 정도의 위압감을 받는다.

ABC에 이르는 루트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인데, Poonhill을 경유하는 가장 먼 코스, Ghandruk을 통과하는 코스, 그리고 Landruk을 거쳐가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세 갈래의 길이 모두 Chhomrong이란 곳에서 만나 거기서부터는 외길이다. 개인적으로는 푼힐코스가 제일 마음에 들었으나 그러려면 산중 2박을 더 일정에 넣어야 한다. 우리는 빠듯한 일정과 첫날의 출발 지연 때문에 지프로 포카라에서 Nayapool, Birethanti를 거쳐 Siwai까지 올라오는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떤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2시간 반을 더 걸어 17:30 오늘의 숙소인 New Bridge에 도착한다. 공기가 너무 쌈빡하고 음식 또한 그 맛이 일품이다.

제1일 트레킹: 6.5Km, 2시간40분, 최저 1317m 최고 1499m 누적표고차 182m, 평균속도 2.3Km/h (이것은 나의 Suunto Ambit3 Sports 손목시계 GPS 기록에 의한 것임. 이하 동일)

180419 (목)

어제 도착 때는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가 묵었던 롯지 뒤편으로 안나푸르나 남봉(南峰, South Peak)이 흰머리로 그 위용을 드러낸다. 맑은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간밤 2시경 엄청난 폭우 소리에 잠이 깼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가이드가 내게 와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19세의 어린 포터가 지난 밤 열이 나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하산을 해야 한단다. 우짜노… 다행이 그를 대신할 포터가 지금 올라오고 있는데 여자라고 한다. 오잉, 여자?

이런 난감할 데가… 새로 올라온 포터를 보니 가녀린 체구의 조그마한 여자애다. 제 몸집보다 커 보이는 배낭을 메게 하는 것이 못내 애처롭다. 그러나 역시 예상한대로 히말라야의 산길에선 강골이다. 포터는 아아무나하나…

07:30 뉴브릿지를 출발하여 09:50 Jhinudanda에 도착한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어제 여기서 묵었어야 했다. 계속 미스따레를 되뇌며 와서 그런지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히말라야의 푸른 하늘처럼 지붕이 푸른 Jhinu의 게스트하우스를 통과하여 계속 나아간다. 여기까지는 낮 기온이 상당히 높아 마주치는 서양 여인들은 거의 벗은 수준의 옷차림이다. 간간히 보게 되는 엄청난 짐을 머리띠에 중심 잡아 지고 올라오는 진짜 포터들과 너무 상반된 장면이다. 뒤에서 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짐을 지고도 슬리퍼로 험로를 오르내리는 그들 삶의 무게는 분명 짐보다 더 무거워 그 흔한 나마스떼 한마디 내지 않는 것이리라..

11:00 Chhomrong 도착 세 시간여의 힘겨운 등반을 멈추고 휴식과 점심식사를 즐긴다. 그러나 이곳 이후는 상당히 가파른 계단길의 오르내림이 이어져 무척 힘든 코스다. 촘롱에서 바라보면 오늘 우리가 묵을 Upper Sinuwa의 숙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 그 거리와 코스가 결코 만만치 않다. 계단길을 한참 내려가고 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어 있는 헛간 같은 곳에 들어가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레인셔츠를 꺼내 입는다. 다행이 비는 심하게 내리지 않고 얼마 지나 점차 약해진다.

촘롱에서 대책없이 내려와 다시 Lower Sinuwa까지 엄청난 계단을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을 아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하여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현재 높이 200미터 길이 300미터의 출렁다리 건설이 시작되었다. 아마 다음에 여기 오면 이 구간 힘들이지 않고 시누와로 갈 수 있겠다. 하지만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어야지 왜 기를 쓰고 사람의 흔적을 남기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고생이 싫으면 아예 오지 않으면 될 것을… 일본인들이 키타아루푸스 산 그대로 내팽개쳐 두듯이 아무데나 쓰러져 길게 누워 오수를 즐기는 이곳 견공들의 삶 그것이 바로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自然) 아닌가..

14:00 Lower Sinuwa에 도착하여 휴식과 함께 간식을 먹는다. 여기서부터 바로 앞에 보이는 Upper Sinuwa는 실제 거리가 1.2Km였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라 1시간20분이 걸려 15:20에 오늘의 여장을 풀 Heaven View Guest House 숙소에 도착했다. 가이드 말로는 오늘 코스가 제일 힘든 구간이란다.

제2일 트레킹: 10.62Km, 7시간41분, 최저 1456m 최고 2402m 누적표고차 946m, 평균속도 1.4Km/h

180420 (금)

오늘 일정은 이곳 Upper Sinuwa를 출발하여 Bamboo, Dovan, Himalaya를 거쳐 Deurali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드는 우리 팀원의 상태를 봐가며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한다. 하기야 돈을 더 주고 에이스급으로 가이드를 선택했으니 이 친구의 말을 꼭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제 오면서 우연히 만난 인천에 사는 33세 당찬 아가씨는 첫눈에 가이드를 잘못 만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감 호젓하게 엄마와 단 둘이 ABC에 가는 길이었는데 가이드란 애가 보기에도 뺀질이 같더니만 급기야 롯지 식당마다 계산을 하는 총무인 날 유심히 보았다가 내게 물어온다. 숙식비 등을 어떻게 계산하느냐고.. 자기는 가이드를 통해 지불을 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좀 속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고.. 낭패로고 이런 데서 서로 믿음이 깨어지면 안 되는데..

07:55 시누와 출발 비교적 쉬운 걸음으로 09:30 Bamboo에 도착한다. 이름 그대로 곳곳에 대나무가 많다. 여기 저기 산죽(山竹)과 함께 네팔의 국화(國花)인 진달래(Rhododendron)가 참 많이 눈에 띈다. 고산증을 의식하여 모두 마늘 수프를 한 잔씩 마셨는데 그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준비단계에서 고산증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했다. 일반적으로 급성 고산병으로 알려진 AMS(Acute Mountain Sickness), 고소 뇌부종(High Altitude Cerebral Edema, HACE), 그리고 고소 폐부종(High Altitude Pulmonary Edema, HAPE)의 세 가지가 있었다. 이 중 뇌부종과 폐부종은 뇌나 폐에 물이 차는 것이라니 아예 상상하기도 싫고… 어쨌든 내 생각은 너무 지나치게 고산증에 주눅들지 말고 그냥 순간을 즐기며 아주 천천히 틱 낫한 스님 보행선법 하듯이 꽉 찬 마음으로 이 미친듯 아름다운 산덩어리에 빨려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12:00 Dovan에 도착하여 휴식과 점심 식사.

이곳의 해발 고도가2800미터이니 오늘 벌써 500미터 정도 상승한 셈이다. 도반을 지나고 나니 안나푸르나 남봉이 점점 더 가까이 바로 눈 앞에 다가오고 그 오른쪽으로 네팔인들이 신성시하여 출입을 금지하는 Holly Mountain Machhapuchhre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정상의 모양이 다르다는데 내가 본 위치에서는 일명 Fishtail로 알려진 물고기 꼬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길은 계단은 없으나 고도 때문인지 오름길이 상당히 힘들다는 느낌이다. 랜드마크인 동굴 Hinku Cave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힘겨운 발걸음을 위로 향하여 14:00 Himalaya에 당도한다.

이어지는 오늘의 목적지 Deurali로 가는 길에 비를 만난다. 시기적으로 그런 것인지 어김없이 오후 2시가 넘으면 비가 오는데 빗방울의 굵기가 국산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아 LSD running에 애용하였던 초경량 레인셔츠의 얇은 보호막을 뚫고 피부를 강타하는 빗방울의 파괴력이 정말 장난 아니다. 비만 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큰 우박까지 동반.. 이에 금새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작전타임.. 배낭을 벗어 준비해간 비닐우의를 찾았으나 급할 때 항상 그렇듯이 아무리 뒤져도 보이질 않는다. 일행과 너무 처질 수 없어 그냥 고…. 체온을 조금 올려볼 요량으로 걸음을 빨리하니 금새 반응이 온다. 심장 RPM이 높아짐을 느낌과 동시에 순간적인 현기증이 온다. 아서라.. 이러다가 명색이 원정대장인 내가 낙오하겠다 싶어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찾아낸 전략이다.

일찌기 임제(臨濟) 선사는 “隨處作主면 立處皆眞” 이라는 사자후(獅子吼)를 갈파(喝破)하지 않았던가..

어느 곳에 있던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면 그 자리가 바로 진리의 자리 이니라..

지금 내가 나의 주인이 되자. 왜 비와 우박 추위 따위에 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나? 조만간 몸과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이렇게 나름 내 철학 속 몰입으로 시간을 잊다보니 어느새 Deurali 산장이다. 오늘 아침 출발할 때 가이드가 내게 약속한 바로는 데우랄리에서는 6인실을 우리 4명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정작 보여주는 방은 작은 침대가 4개 있는 좁은 방이다. 내가 직접 여기 저기 둘러보니 죄다 2인실이고 제일 안쪽에 침대가 10개 있는 다인실(多人室) 보인다. 여기를 택했다. 온통 젖은 짐인데 일단 공간이 넓어야지.. 우리 4명과 인천 모녀, 그리고 말레이시아 사람 3명이 오늘밤 이 칙칙한 곳에서 합숙한다. 먼저 배낭 속 고정끈을 길게 연결하여 빨랫줄부터 만들어 젖은 옷가지를 널어 말린다. 눅눅한 기분을 저녁 먹으며 고이 소장하고 있는 소주 한 병 까서 말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아직 ABC가 한참인지라 애써 참는다..

제3일 트레킹: 16Km, 7시간40분, 최저 2277m 최고 3175m 누적표고차 898m, 평균속도 2.1Km/h

180421 (토)

아침에 일어나니 눈부시게 새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긴다. 지금까지 늘 밤중에는 천둥치고 폭우가 쏟아져도 아침엔 언제나 쾌청이었다. 할 일 없어 너무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새벽에 잠이 깨어 화장실 찾아 밖으로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래서 여기 들어오면 모든 사람들이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여 비 오기 전에 하루를 마감하나 보다..

가이드는 오늘 일정을 ABC까지 가는 것으로 했으면 하는 눈치였으나 난 MBC까지로 원래 계획을 고수하기를 원했다. 여러 소스를 통해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결정한 일정인데 쉽게 바꿀 수는 없다. 무엇보다 고산증을 고려하여 3700미터인 MBC에서 반드시 1박하여 고소적응(Acclimatization)을 하라는 충고를 꼭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날보다 훨씬 늦은 08:40 Deurali Panorama Hotel을 출발하여 MBC로 향한다. 4킬로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모두들 고산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해발 3000 이상의 위치에서 또 500미터 가량 고도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발걸음이 무거워지니 자연 속도가 떨어진다. 천천히 걷는 것 자체를 즐기려 여기에 왔으니 멈춰서 뒤도 돌아보고 점점 코 앞으로 다가오는 히말 산군의 원초적 생명의 氣를 온몸으로 느끼기로 한다.

11:15 드디어 눈 앞에 새파란 지붕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난다. 전혀 네팔인 얼굴이 아닌 꼭 한국인 같은 가이드 Kamal이 Captain!을 외치며 내게 다가온다. 축하 축하.. 당신들 오늘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일 좋은 방에 묵게 될 것이라고..

정말이었다. 그 6인실 방은 앞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탁 트인 눈 앞의 절경을 침대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특실이었다. 한가롭게 점심을 즐기고 오후엔 산장 주변의 트레일을 따라 좀 걸어볼까 생각했는데 또 어김없이 비가 온다. 이 긴긴 오후의 시간을 어쩌란 말이냐.. 끝없이 만발한 얘기꽃이 거의 시들 무렵 박섐 부부가 갖고 온 하모니카와 대금을 꺼낸다. 첫날 뉴브릿지에서 잘 땐 경상도할배 세 명이 한 방에 모여 너무 크게 떠들었던지 옆방 뉴질랜드 할배가 찾아와 항의하는 수모를 겪었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앞 뒤 좌우에 인접한 방이 없고 위쪽은 식당이니 이웃집과 소음으로 인한 시비는 아예 있을 수가 없다. 3700미터 히말라야 산중에서 비 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즐기는 하모니카와 대금의 앙상블 이건 분명 절대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임이 틀림없다.

제4일 트레킹: 4.66Km, 2시간38분, 최저 3045m 최고 3680m 누적표고차 635m, 평균속도 1.8Km/h

180422 (일)

04:00에 기상하여 우리의 최종 목표지점 ABC로 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바깥 기온이 생각보단 그리 낮지 않다. 오늘 일정은 ABC 가서 소원성취를 한 뒤 아침 먹고 다시 MBC로 내려와 짐 챙겨 Deurali, Dovan 거쳐 Bamboo까지 가는 것이다.

04:40 헤드 랜턴 불 밝히고 ABC를 향한 대망의 진군을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걸었다. 사위의 어둠 속에서 오직 세 마디만 마음 속으로 되뇌며;

Ø 미스따레.. 비스따리

Ø 隨處作主立處皆眞

Ø This too shall pass..

이는 내가 왜 지금 여기 와서 이렇게 걷고 있나에 대한 답변이 된다.

눈 앞의 안나푸르나 남봉 꼭대기와 그 왼쪽의 히운출리 첨탑과 오른쪽의 안나푸르나 Pang의 머리가 황금빛으로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