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일 1박 2일로 광양 다압 금천계곡으로 고로쇠 마시려 갔다왔다.

멀리 곡성 동리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산동의 지리산 만복대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나 거대한 섬진강을 이루는 두물머리인 문척 오산(530.8m) 정상에 있는 바위굴 도선굴에서 원효, 연기(일설에는의상이라 하나 사성암의 초창주가 연기인 것으로 봐서 연기가 맞다고 봄), 진각, 도선 등 네명의 성인이 났다고 해서 붙인 사성암자락에도 봄비따라 어느새 봄이 내려 앉았다.

  도선국사가 35년간 주석했던 백계산 옥룡사지에는 춘백이 한창이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가 '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왕이 되었다'는 샘터의 물맛은 예나 지금이 변함이 없지만,

  제왕지지가 있다는 곳을 찾아 올라가니 우거진 풀과 나무속에 퇴락하여 간신히 흔적만 남아 있는 병조판서를 했다는 청주 한씨의 묘만 있는데 조그만 문인석 한쌍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더라.

문득 조선 중기의 명문장가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한탄해서 지리산에서 자살하고자 뛰어 내렸던 백호 임제가 평안감사를 제수 받아 개경을 지날 즈음에 황진이 무덤을 찾아서 읊었다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紅顔은 어데두고 白骨만 누엇는고 잔잡아 권할리 업스니 이를 슬퍼하노라."로 시작하는 시 한 수가 스쳐 지나가더라. 帝王之地 찾아서 어렵게 누웠건만 靑草만 우거졌으니 이를 어쩔꼬?

스치는 바람처럼 눈깜빡하면 스쳐지나가 사라지는 아침 이슬같은 세월에 뭣할게 없어서 다들 그 귀찮고 귀찮은 왕질 할려고

 그리도 안달복달인지... 靑山外別無靑山이요 到處處處是靑山인 것을.....

다압 매화마을에는 봄비를 만난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홍쌍리 아줌씨는 여전히 예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방문자들을 여럿 모아놓고 매실 강의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섬진강물이 직출수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한마디했드니만 놀란 최참판댁 사랑채에 있던 문화해설사가 멋진 선비탕건을 쓰고설랑 맨발로 쫓아나와 툇마루에서 사랑채 주렴을 열심히도 풀이해 준다.

  경주 양동 무첨당 및 안동 임청각과 더불어 조선의 삼대 명당 중 하나라는 조선조 영조 때 삼수부사 유의주가 지었다는 문화 류씨 종택 운조루는 봄 볓에 졸고 있었고,

산동 산수유마을에는 샛노란 산수유꽃이 마을을 덮었더라.

지난 몇일간 날씨가 따뜻한 탓에 고로쇠가 나지를 않아 고로쇠는 옛맛이 아니였지만, 섬진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河東浦口자락에서 잡히는 벚굴은 어찌나 맛있는지 글자 그대로 굴(꿀) 맛이고

금천리 금천농원 곶감은 일품인데 더하여  민박집의 뜨끈뜨끈한 구들방은 온몸이 노곤하게 만들고, 큰 오리만한 산닭 참숯불

숯불닭구이는 술술 잘도 넘어간다.

기왕지사 남도 별미로 내달렸으니 내침김에  저녁까지 남도로 갔는데 역시나 좋은 선택이였다.

  벌교 참꼬막과 어른 손바닥보다 큰 대형 조기 매운탕은 여행의 피로를 단박에 날려준다.

남도의 봄이 무을 익었으니 아마도 다음주쯤이면 동백과 매화는 활짝 피리라.

이래서 눈과 입이 호강하면서 스치는 바람처럼 남도를 한바퀴 휘휘 돌아 온 몸으로 봄을 느끼고 돌아왔다.
                                 

 ㅡ   知   雲   先   生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