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아쉬움을 느끼면 그것에 대한 가치를 정말로 느끼게 된다"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던 도구도

막상 그게 고장나서 겨우 며칠 동안만이라도 사용을 못하게 되면~
평소 잘 생각하지 못했던 그것에 대한 진한 존재감과 가치를 비로소 느끼게 된다~~

 

요즘은 또 먹을 것도 정말로 넘쳐난다~

그러다보니 요즘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게 별로 없고 
뭐 음식이니까 당연히 주변에 그냥 있는 거로구나하고 생각한다~

 

내 나이 10살 무렵, 우리나라는 극심한 가뭄 탓에
어느 해에는 봄에 농부들이 논에 벼를 거의 심지를 못했었다~~
아버지를 따라 어느 시골 국민학교 사택으로 이사를 갔던

그 시골 동네의 논이란 논은 가뭄으로 정말로 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말하면 정말 어느 정도로 가뭄이 심했는지를 아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늦은 봄 겨우 벼를 심었지만 여름이 되도록 거의 비라고는 오지 않아
논물은 엄청 귀해지고 그만 논바닥들이 여기저기 그냥 쩍쩍 사정없이 갈라졌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물도 모조리 말랐고 세수도 대야를 기울여 겨우 얼굴을 적시는 정도로 해야했다)

어쩌다 비가 와서 물이라도 조금 논바닥에 괴이는 날에는

그야말로 논 주인들끼리 소위 물꼬전쟁이 일어났다~
물꼬 전쟁이 뭐냐하면~

물꼬를 틀고 막는 쟁탈전을 벌린다고해서 내가 그냥 만들어본 것이다~(그런 말은 실제 있는진 잘 모름)

그런데 가관이...~ 
그런 '물꼬 싸움'은 주로 논 주인들끼리 논 현장에서 하는데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 논 주인이 시비를 걸어 싸움이 대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농촌 사람일 수록 더 과격하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먼저 온 논주인이 자신의 논에 물을 가두기 시작하면서 격하게 시비는 시작되는데
뒤늦게 온 논 주인이 "왜 너만 살려고 물을 가둬?"로 시작하면~
끝내는 심할 경우 논 가래를 서로 겨눠가면서 아주 극심하게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주변이 정말 괭장히 시끄러웠었다)

 

평소에는 아마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을 것인데도 삶의 환경이 그렇게 극도로 척박해지니
내일 서로 못 볼 것처럼 아주 죽기살기로 싸우던 당시 농부들을,

그냥 조용하던 동네에 오랫만에 사람사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편하게 주위에서 싸움 구경이나 하고 있기에는,

싸움하는 당사자인 농부들은 물론 농사를 안 짓는 많은 어른들에게도
당시의 심한 가뭄은 아주 처절하리만큼 무섭게 다가 왔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해 가을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먹을 쌀들이 엄청나게 모자라게 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쌀을 베트남에서 긴급 수입해서
전국적으로 쌀을 무상으로 국민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살던 그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에 어느 날은 보니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서 쌀을 배급받아 다들 큰 푸대나 양철 양동이 같은 곳에 배급받은 쌀을 담아

울러메거나 머리에 얹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쌀을 배급 받으려고

여기 저기서 몰려 오는 사람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헌데,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랜간만에 하얀 쌀밥을 덕분에 마음껏 맛 보았었는데 그때 먹던 쌀 밥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걸 '안남미'라고 했다. 

사실 안남미는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품종과 달라

매우 찰기가 없고 그냥 푸석거리만 하는 쌀임에도 당시에는 모두가 맛있게 먹었었다~~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하며

예전에 맛보던 안남미를 가끔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은 거 같다~

사람들은 숫제 쌀의 가치를 잘 모르는 거 같다~

 

당시는 그 뿐 아니었다~
요즘은 너무 흔해 숫제 발길에 채이는 계란도 당시에는 소위 넉넉한 집만 먹었었고~
찹쌀은 너무 귀해서 명절이나 생일때에만 겨우 팥밥을 해먹는데 쓰곤 하는등
정말 우리나라... (눈물이 날 정도로)옛날에는 너무 너무 못살았다~(아마 요즘의 북한과 실정이 어금버금할지도~)

 

1958년 가을~ 그러니까 내 나이 만 5살 되던 해의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 날 오후에
(그러니까, 그 시골로 이사를 가기 대략 5년 전, 온양 국민학교 사택에서 살던 시절)
운동장에서 운동회 뒷풀이를 잘 구경을 하고 있던 나와 내 동생은

 

나의 아버지는 기록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신 분이셨는데~
내가 첫 돌 무렵부터 사진을 해마다 매년 찍어서 날짜와 함께 일일히 사진마다 적어서

꼼꼼히 보관하시던 분이었다~

덕분에 온갖 장면이 담긴 어릴 적 사진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나의 오랜 앨범속에서

잘 보관되어 있다~~(더러는 누렇게 변색되어가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매우 기록중심주의적인 취향을 가지신 분이라
우리 가족이 살던 방에는 당시 온갖 종류의 서적들이(지금 보면 옛 고서에 가까운 것이지만)
마치 도서관처럼 모든 책마다 각각 분야별로 분류표들이 붙여진 채 커다란 책장 진열대에

거의 방 하나를 가득 메우다시피했고
그 때문에 우리집 식구들은 좁은 방에서 항상 비좁게 지내야 했다~~

 

일본 유학시절(미야자키현)에 학교에 다니고 그 시절 하나씩 구입해서
귀국시 거의 갖고 오셨던 책들 중에는 일본 대중가요 악보전집과 일본지도책과 사전류들도 있었는데
그 책들은 내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가장 즐겨 보시던 걸로 기억한다~~

(이 일본 대중가요들중에서 아버지께서 특별히 뭘 꼼꼼히 표시해 놓은 악보들은

나중에 내가 현대판 풀 오케스트라용으로 모두 편곡해 볼 작정이다)

 

어쨋든, 그 시절에는 정말 모든 게 귀했던 시절이었다~
요즘 아동들은 줘도 안 먹는 흔한 비과캔디는 물론 빵 한조각조차 당시 보통 날에는 다들 먹기 힘들던 때였다~
그런데 그날 소환(?)을 당해 사택 부근으로 가니까
아버지는 벌써 어코디언 주름같은 게 달린 커다란 사진기를 삼발대에 장착해 뭔가를 준비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빵을 하나씩 건네주시면서 당장에 다들 카메라 앞으로 서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 빵은 지금 회상해도 냄새가 정말 기가 막혔었다~(너무 빵 냄새가 좋았다) 
당장 끄집어 내서 마구 먹고 싶었지만 혼 날까봐 가만히 움켜 쥐고
카메라 앞에 나는 내 동생과 얌전하게 한동안 어색하게나마 서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를 조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자
나와 내 동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빵을 끄집어 내서 그만 우적우적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나란히 자세를 취한 채로 뭘 먹는 자체가 나는 매우 부끄럽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아버지는 겨우 30대로 무척 젊으셨기에

어떻게 하든지 어린 자식들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그 열정과 기록에 대한 욕심을 자식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나와 내 동생들은 일요일이나 방학 때만 되면 부모님을 따라 이곳 저곳 명승지 같은 곳에 따라다니며 

저렇듯 비슷한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던 지난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과연 기록이 무엇이길래 어린 자식 놈들의 마음을 그토록 헤아리지 못하셨을까 궁금해진다~

적어도 나로서는, 어디서건 사진을 찍기 위해 한동안 포즈를 취하고 저런식으로 서 있는다는 자체가

언제나 짜증나는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는 가운데 당연히 잘 놀고 있었을 그 운동회 날 늦은 오후에도

난데없이 동생과 억지로 불려가서 카메라 앞에서 또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건

나에게는 적지않은 스트레스였던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어떤 경우는 내가 마치 스스로 제법 큰 아이가 된 거 마냥

옆에 어린 동생과 나란히 서서 그것도 사람들이 여럿 보는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한동안 저렇게 억지로 서 있는다는 것 자체를 상당히 부끄럽고 불쾌한 우리집의 작은 행사로 느끼고

노골적으로 싫다고 부모에게 항거하던 적도 있었다는 점이다~~

 

헌데 지금 이 사진에서 보듯이

나는 겨우 다섯 살에 불과한, 걸핏하면 콧물이나 흘리는 작은 아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저런 어린 나이에 벌써 자아를 어느 정도 터득하기 시작했음인지는 몰라도

당시, 아버지는 물론 가족 어느 누구도 내가 도데체 뭘 느끼고 어떤 기분을 가지고 사는지

이런 사진 촬영하는 날만이 아닌 평소의 다른 날에도 아마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소 부끄러움이 아주 많았던 내가

저렇게 사진을 찍는 그날 당시에 왜 더 많이 수줍어 했느냐 하면,
사진찍는 걸 구경하려고 운동회에 놀러 왔던 그 근방에 있던 사람들이

또 뭐나 하나 싶어서 카메라 옆에 제법 모여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커다란 암실상자가 달린 사진기로 사진 찍는 광경을 본다는 건 읍네의 작은 구경거리였다)

 

이 사진은 내 아버지가 직접 촬영해서 집에서 암실을 만들어 인화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 풍경이 흐릿하거나 지워진 부분도 있다~
오랫만에 힘이 들어간 아버지의 당시 필체를 구경하니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또, 당시의 사택 부근의 모습들이

내가 간직해오던 오랜 기억들을 더듬어 서로 일치시켜 볼 수 있으니 정말 흐뭇하다~~

Feeling like having to do nothing without it deserves to be one of the real deals in life, says this guy~
삼장법사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