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든 여섯 드신 아버지께서는

해마다 여름이 오기 전에 하시는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작년에 잘 간수해 두었던 나팔꽃 씨를 심는 일입니다

정성껏 꽃씨를 심고..

싹이 나면 물을 주고 줄기가 올라오게 대를 세워서

아파트 마당에서 우리집 베란다까지 무성한 나팔꽃 숲을 만듭니다

여름이 오면 아침마다 그 숲에서  수없는 나팔꽃이

떠오르는 새벽 햇살을 향하여 무언가를 외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아침에 출근 할때면 차에 오르기 전에

베란다를 꽉 메운 꽃들을 보는 것이 저에겐 큰 즐거움의 하나이지요

상쾌한 아침의 출발.. 좋은 하루의 느낌이지요

며칠 전 아버지께서 시든 나팔꽃의 줄기를 걷어내고 계셨어요

출근하면서 아버진 왜 여름이 오면 나팔꽃을 심으실까..

나팔꽃을 좋아하시겠지...

무성한 잎과 여름 내내 매일 아침 꽃을 피우는 나팔꽃을..

문득..

북녁에 계신 부모님이 그리워서 일까..

두고 온 자식에게 당신의 소식을 알리고자 함일까..

전 조부모님도 큰누나의 얼굴도 모르지요

뵌 적이 없으니까..

당신이 아직 살아계시다는 걸 알리시는  

유일한 방법으로 선택하신 건 아니실까..

앞으로 몇년이나 더 저 일을 계속하실 수 있을까..

꽃씨를 심지 못하시게 되면 저 일을 내가 이어 받아 해 볼까..

그 날 아침엔,

왠지 아버지의 어깨가 힘없이 처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부모와 자식을 보지 못하고 떠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꽉 메이는 슬픔을 삼켜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