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 김상연 
| 제목 | 동물의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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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준태(53) [ jatochoi@hotmail.com ] |
| 작성일 | 2016-04-27 |
눈이 침침하다는 핑계로 점점 책보다는 TV를 끼고 살게 되는 요즘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단연 '동물의 왕국'이다. 그 중에서도 사자나 호랑이 같은 무시무시한 맹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몇 번을 다시 봐도 항상 좋다. 새끼를 양육하는 시기의 암컷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단독생활을 하는 호랑이의 세계도 참 신비롭지만,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 달리 공동생활을 하는 사자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사자 무리를 Pride 라고 부르는데, 한 Pride는 대개 3-4마리의 숫사자와 10여 마리의 암사자, 그리고 어린 새끼들로 이루어 진다. 사냥을 하고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모든 일은 모두 암사자들 공동의 몫이다. 반면 숫사자는 하루 종일 나무그늘에서 빈둥거리다가 암컷들이 사냥을 하면 짠~ 하고 나타나 으르릉 대며 먼저 배를 채우는 데, 이때는 마누라도 새끼도 없다. 배가 찼다 싶으면 다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나무그늘로 사라진다. 오직 먹고 자고 고스톱 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우리 남자들의 명절 연휴가 곧 그들의 일상이다.
하루 종일 먹고 자고 하는 숫사자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영역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과 짝짓기다. 일부일처제가 아닌 Winner takes it all 방식의 사자의 세계에서, 무리의 내부 또는 외부에서 나타난 젊은 숫사자로 부터 자신의 영역과 암컷들을 지키려는 우두머리 숫사자의 싸움은 일순간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권력투쟁이다.
언젠가 충격적인 장면을 본적이 있다. 한 무리의 권력을 잡고 있던 늙은 숫사자에게 젊은 숫사자가 도전을 한 것이다. 도전자와 방어자가 혹 부자관계일지도 모를 그들의 싸움은 처절했다. 결국 피 튀기는 투쟁 끝에 패한 늙은 숫사자는 상처 난 몸을 끌며 쓸쓸히 뒷산으로 사라지고, 새로 우두머리가 된 젊은 숫사자는 늙은 숫사자의 새끼들을 찾아 다니며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잔인하게 물어 죽이는 장면이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자존심이나 자비심을 논할 건 아니지만, 그 장면을 통해 접하게 된 숫사자들의 냉혹함에 전율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화/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요즘의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문득문득 그날의 충격적 화면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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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에 비해서 인간은 새끼가 어른이 되어 독립하는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20-30년에 걸쳐 유치원-학교-직장이라는 긴 과정을 열심히 경쟁하며 힘들게 뚫고 나와야 겨우 독립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된다. 우리세대가 독립을 시작했던 1980년대 중반에 비해 삼포세대니 구포세대니 하는 요즘은 젊은이들의 독립의 길이 더 팍팍해지고 어려워진 듯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1985년, 가진 것도 아는 것도 하나 없던 나도 착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 딸 하나씩을 낳아 알콩달콩 살아온 세월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작지만 행복한 터전의 우리 가족에 변화가 찾아온 건, 작년 말 아직 새끼사자로만 알았던 아들녀석이 제법 거뭇거뭇 자란 갈기를 부르르 털며 덜컥 독립선언을 하면서 부터다.
일부다처제인 사자 무리에는 대개 장성한 숫사자 한마리 밖에 없다. 어린 숫사자들은 1-2년이 지나면 무리를 벗어나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를 거쳐 무리를 이끌 수 있을 정도의 숫사자로 장성하는 건 고작 30%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언제까지나 나의 울타리를 떠나지 않고 생사고락을 함께할 것 같던 우리집 새끼사자도 자신의 Pride를 구축하기 위한 험난한 장정의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언젠가부터 독립을 꿈꾸는 숫사자의 냄새를 진하게 풍겼던 것 같다. 주말 아침 해장국 먹으러 잘도 따라다니더니 서서히 부모와의 여행에도 시큰둥하고 집에서는 말수가 눈에 띠게 줄었다. 최근 수년간은 내가 일주일 해외출장을 갔다 와도 딸은 반가이 맞아주는 반면 아들녀석은 아비가 일주일 만에 집에 온 줄도 모르는 경우도 있어 섭섭할 때도 종종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들에서 다양한 소통의 방법을 명시했다. 소통의 1차 도구는 언어다. 즉 가장 좋은 소통의 방법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에 많은 말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소통이 잘 되고 있지 않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불통의 벽에 다다르게 된다.
소통의 다른 방법은 침묵 속의 교감이다. 아무런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바라보고 깊게 교감하여 소통하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서 주인공 피에르는 이런 교감을 통해 적군 사령관과 깊은 소통을 하게 된다. 아들과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무언의 응시와 교감을 통해 묻고 답하고 소통해 온 것 같다. 마치 이게 숫사자끼리의 전통적 소통 방식임을 서로 알고 있었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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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젊은 숫사자는 왕성한 혈기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이루기 위해, 지난 30년간 아비가 걸어온 그 고독하고 숨찬 길을 걷게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