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48년 가을
함경남도 함흥 인근,
조그만 기차역의 조역(예를 들면 파출소 차석같은 직책)으로 철도국에 근무하는 면(勉)이는
노동당에 가입하라는 상사의 압력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북녘 땅을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나 세살바기 큰 딸과 이제 갓 태어 난 둘째 딸이 마음어 걸려 선뜻 행동으로 옮기질 못합니다

노동당 간부들의 협박과 회유가 거듭대던 어느날..
노동당에 가입하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두라는 통지를 받고
이 지긋지긋한 공산주의 사회의 탈출울 감행합니다
아랫동생이 일본에서 공부한 후에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연락처를 거기로 하기로 아내와 약속을 하고
두딸을 두고 단신으로 월남을 합니다

북에 홀로 남겨진 정희(면의 아내)는 남으로 간 남편을 찾아 내라는
공안원들의 집요한 추궁에도 자리가 잡히면 연락을 하겠다는
남편의 마지막 한마디를 머리속에 새기면서 견뎌 내고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 남편이 남으로 떠난지 어연 1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날...
정희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남편을 찾아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죽더라도 남편 곁에서 죽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1949년 가을..
큰 아이를 친정에 맡기면서
이제 제법 말을 하고 말도 알아듣는 아이에게
\"이 어마이.. 니레 아바이 만나고 오겠다이..제깍(금방) 와서 델구 갈테니끼니 할무이 말 잘 듣기요~\"
하곤 사탕하나를 입에 물려주곤
이제 돌이 갓 지난 어린 딸을 업고 삼팔선을 넘으러 갑니다

그땐 이미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경 경비가 강화되어 함부로 월경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월경하다가 적발되면 그자리에서 총살하는 험악한 상황입니다
길잡이에게 돈을 주고 몇십명씩 떼로 월남을 해야 합니다

38도선의 경계를 지나려면 한탄강을 건너야 하는데..

달도 없는 칠흑같은 밤에
몇십명이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한탄강을 넘고 있습니다
인민군에게 들키는 날엔 목숨이 날라가는
절박한 긴장으로 침묵이 흐르고 있는 그때...
갑자기 어린아이의 찢어질듯한 울음소리!
정희가 업고 있는 돌박이 혜숙의 울음 소리입니다
가을에 접어들어 차가워진 한탄강 강물은
어른도 충분이 한기가 스며들 지경인데..
하물며 어린 아이에게야 말할 나위가 없지요
놀란 아이의 울음은 그치질 않고...
정희는 어쩔줄 몰라하며 아이를 달래 보나 막무가내로 울기만 합니다

길잡이가 무서운 표정으로 정희에게 명령을 합니다
\"애 하나 때문에 다 죽겠으니..애를 물에 버리시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희는 포대기의 고름을 풀기 시작합니다
다 풀린 고름은 이제 손을 놓기만 하면
허리까지 오는 강물에 아이는 잠겨 버릴 것입니다
아이의 동물적 감각이 위험을 알렸는지..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혜숙은 울음을 그치고..
정희는 고름을 그냥 붙들고 강을 건넙니다
언제 놓아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이는 강을 건널 때까지 숨소리 조차도 아끼고 있습니다

무사히 남녁으로 내려온 정희는
남편 면을 만나 자리를 잡고 난 뒤에
다시 딸을 데리러 북으로 갈려고 하나
그땐 이미 남과 북의 대치가 심해져서
국경을 넘을 수가 없어서 38선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고 말지요

두 부부는 아들 둘을 더 낳고 살았으나...
북녘땅에 두고 온 큰 딸아이는 두번다시 보지 못하고...
가슴이 짓이겨질 만큼의 회한과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는 부끄러움과
바다같은 그리움으로 평생을 살았지요

(잊혀질 수 없는 가족사이기에 현재형으로 썼습니다)
(마지막 과거형은 어머니가 돌아 가셨기 때문...)

내가 한탄강을 즐겨 찾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거기에 가면...
어머니가 누나를 버리려 했던 곳이 어딜까...
어머닌.. 이 강을 건너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머닌.... 지금... 이강을 내려다 보고 계실까... 나처럼....
....
날 보고 계실까...
 (2004.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