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 김선우 -



러시아를 가까이 하더니 1895. 4. 미우라놈이 불살랐다,

재가 되어 홍릉에 사라진다, 너를 보낸 그 각혈의 형지에

2000. 3. 버리고 또 버려 먼지처럼 골방에 처박힌다,

신세기 벽두를 선연하게 떨었다, 위험하게 흔들려

‘사랑하였으므로 사랑은 부스러지고 말았느니’ 울게 하소서,



Eloi, Eloi, lama sabachthani,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jesus의 십자목상에서의 일갈, 오도가도 못하는 낭떠러지,

무원의 절해고도에서의 찰나의 절규는 불가사의하다,

범인이 도달할 수 없는 추상같은 득도, 심각한 문학이다,


허나 혼절한 3월은 122-499에 스러져가고, 그 해 봄은 격렬한 미움,

응축된 좌절,


별안간 여흥 민씨 치록의 딸, 8세에 부모를 여의고

대원군 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민비가 된 여인의 한을 마주한다,

돌개바람같은 돌판만이 덩그러니, 이미 그 곳에는 없다,

그 설움에 숨죽이고 세월의 불길을 다독였다,

해묵은 판타지가 된다,


82년 처음 안암을 밟기 시작한 뒤로 길 건너 제기동을

번갈아 오가기를 20년, 지금 이 유배지, 몹시 버림받은 땅을 뜬다,

지독히도 운이 없는 형세다, 궁합이 맞지 않다,

무저갱의 나날들이여,


수려한 고향 좌동, 청사포, 송정으로 잇는 유장한 구불거림,

아찔한 자유, 그 아득한 수평선의 공허,

눈부신 유년의 여울목 장산 기슭에서 허위적거린 풍수와는

거리가 멀다, 결과론이다, 무얼 대단한 거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한 시절이 침통하였노라,


잘 있거라, 미세한 민초들의 황량한 땅, 민중이 싫다,

헤어날 길 없는 못 배우고 없는 민초가 싫다,

못난 애미, 애비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청량리 길바닥 한 데 바람을 맞아내는 과일상 풍만한 누이,

종암대교 위 사시장철 회 치는 건달같은 엉아,

찌든 일상에 손님 홀대하는 구멍가게 갑남을녀,

삶의 고단한 길목에 서성이는 영혼들이여 비해피...


가는 마지막 일요일, 전인미답의 눈길에 어느 한 사내

디아스포라의 주단을 깐다,

지난 가을 활엽수원, 머루알 같은 딸년에 낙엽 쥐어 주는 애비의

개운한 사랑이 지나간 자리다,


‘상처를 지니고서야 그대에게 이르는 길 알았느니’

지금은 돌아 가야할 때,

청운계와 백운동을 쪽바리들이 쭈그린 청운동으로,


타워팰리스는 아니다, 타워페니스는 더더욱 아니다,

허름한 갈보와 고급 창녀의 차이인가,

이즘에 페미니스트는 취향이 독특하다, 길고 얇은 밋밋한

물건에 동하나 보다, 조ㅅ선일보는 살아 남아야 한다,

한괴레의 독선, 이에 편승하는 진보운운하는 자들의

미친년 널뛰듯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당근과 채찍만 적절히 구사하자,

진지가 기동에 비하여 농밀하다면,


암튼 모세가 건너지 못한 요단강을 넘어,

이제 새하늘 새땅, 내 유랑의 간이역으로 고잉온,

젖이야, 꿀이야 흘러라...,


앞창을 여니 북악이요, 뒤를 보니 인왕이라,

출퇴근길에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니 권력의 핵심이라,

얼씨구...


격렬한 외상을 뒤로 하고 구만리장천 거들먹거리자,

썩자...


한신아파트 동 사이로 2002 늦가을 빌로우 제로의

싸한 동녘이 노을처럼 튼다, 흐득 동창이 밝았느냐,


세컨드 왈츠가 석탄회관 10층 서편 마이룸에 흘러,


불혹 원년 저편에 참 여러 가지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여 이제 포기하겠다

- 마종기 -